'사고→사과→망각→또 사고'…대산공단 ‘대기업 사고’ 근본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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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사과→망각→또 사고'…대산공단 ‘대기업 사고’ 근본대책이 없다
  • 서창완 기자
  • 승인 2020.06.0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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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리기’ 대산공단 사고, 오너 ‘고개 숙이기’ 반복 막으려면
한화토탈-롯데케미칼-현대오일뱅크-LG화학 번갈아 사고
기업 처벌 약해… 안전 소홀해도 손해 보지 않는 구조 바뀌어야

충남 서산 대산공단에서 사고가 잇따르면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시민단체와 공단 노동자들은 사고 뒤 책임자가 고개를 숙이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하는 것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올해 대산공단에서 발생한 사고만 3건으로 입주 대기업들이 번갈아 사고를 냈다. 기업 선의에만 기대는 구조적 문제와 솜방망이 처벌로는 사고를 막지 못하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산공단에는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 대기업 4곳이 있다. 올해 사고를 낸 기업은 차례로 롯데케미칼, 현대오일뱅크, LG화학이다. 지난해 5월 유증기 유출 사고를 낸 한화토탈을 포함하면 1년 동안 4개 대기업이 한 곳도 빠짐없이 사고를 냈다. 어느 한 대기업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산공단 전체 시설이나 사고를 대하는 국내 기업들의 근본적 사고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이 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우선 입법 촉구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민주노총이 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우선 입법 촉구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4개 대기업 사고는 피해 규모만 다를 뿐 전개 양상이 똑같다. 첫 단계는 책임자의 재빠른 사과다. 송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다음 단계는 재발 방지 대책 약속이다. 무거운 책임 통감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이 잇따른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이런 식으로 기업 선의에만 기대야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재발방지를 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백윤 서산시민사회환경협의회 운영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벌금이 너무 싸고, 사고가 나더라도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적어 손실을 줄이려고 공장 가동을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 근본 처벌이 강화돼야 기업에서도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이윤만 생각해 안전을 도외시하는 걸 지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 산업재해 사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과 이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고 원인을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 결과가 아닌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 안전불감 조직 문화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해당 법은 노동자 산재 사망을 초래한 기업을 형사처벌하는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태로 고 노회찬 의원이 2017년 발의했다.

이윤수 한화토탈노동조합 수석 부위원장은 “아무리 큰 사고가 나더라도 사업주가 처벌된 적도 없고, 임원이 형사처벌 된 적도 없다”며 “관련해서 법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재발방지라는 말만 메아리칠 것”이라고 언급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위반시 양형기준상 권고 형량이 여전히 낮은 게 문제점을 꼽힌다. 개정 산안법은 안전조치 의무 소홀 등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양형기준상 산안법 위반 사건은 ‘과실치사상범죄군’으로 분류돼 권고 형량이 ‘6월~1년6월’에 불과하다.

이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과 만나 산안법 양형기준 상향을 요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장관은 "대형 인명 사고나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돼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가 난 경우 등에는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제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은 대산공단이 노후화 장비를 보수·정비하는 걸 넘어 근본 교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벌써 30년이 가까워오는 시설의 노후화를 해결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사고가 계속될 거라는 우려다.

지난해 한화토탈 유증기 사고 이후 마련된 4개 기업 안전·환경 분야 8070억원 투자 계획에도 의구심이 계속된다. 4개 대기업이 예산을 마련하고 충남도·서산시, 시민사회단체까지 참여하는 민관합동점검반까지 꾸렸는데, 계획 이행이 더디다는 지적이다. 민관합동점검반 관계자는 5일을 포함해 지금까지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8070억 원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미 예정된 정기·보수 예산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노동자들은 매년 예·정비 예산에 들어가는 돈, 즉 이미 쓰기로 한 돈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신현웅 LG화학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기존에 잡혀 있던 예산이 상당 부분 말만 바뀌어 포함됐다”며 “설비는 연한이라는 게 있어서 노후 설비 교체를 새로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윤수 부위원장은 노사 간에 제대로 된 심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위원장은 “노사 간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있어도 심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될 때가 많다”며 “공정안전보고서(PSM) 심사를 할 때 노사 간에 합의 과정만 잘 이행되도 안전 조치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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