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혼돈 속 유한양행…두 번째 우연은, 우연을 가장한 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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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혼돈 속 유한양행…두 번째 우연은, 우연을 가장한 고의
  • 강성기 기자
  • 승인 2024.03.18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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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임기 마친 이정희 유한양한 전 사장…정관개정,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지난 15일 정관개정 회장직 신설…이사회서 회장은 대표이사만 할수 있도록 명문화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 필요” vs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 고쳐쓰지 말아야"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두 번 일어난 일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슬람 격언으로 우연이 두 번 겹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다. 

즉 한번은 우연이겠지만 두 번은 우연을 가장한 고의라는 뜻이다. 같은 일이 두 번 반복되면 그 반복되는 사건 이면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유한양행은 2021년 정관개정을 통해 당시 임기를 마친 이정희 사장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했다.

이 전 사장은 2015년 21대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된 뒤 2021년까지 6년 동안 유한양행을 지휘했다. 유한양행은 대표이사 사장이 이사회 의장직을 겸해왔으며 대표에서 퇴임하면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물러난 게 관례였다.

그렇지만 이정희 의장은 2021년 대표에서 퇴임한 뒤에도 이사회 멤버로 남았으며 이후 이사회 의장을 별도 선출하는 규정이 생기면서 이사회 의장까지 맡았다. 이사회는 대표를 견제하기 위한 조직이다. 따라서 기타비상무이사 이자 직전 대표가 의장을 맡는 것은 견제와 균형을 중요시한 유한양행의 창립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15일 열린 주총에서 회장, 부회장 직제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관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 창업주 고 유일한 초대회장, 연만희 회장에 이어 약 30년 만에 회장직을 부활시킨 것이다.

오랫동안 회장직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렸었다. 때문에 이번 회장직 신설을 놓고 업계 일각에서는 “창업주 정신이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더구나 이 의장이 회장으로 거론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향후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가 필요하고, 외부 인재 영입 시 현재 직급보다 높은 직급을 요구하는 때를 대비해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욱제 대표도 의안 통과 전에 “제약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며 “회장직 신설에 다른 사심이나 목적이 있지 않음을 명예를 걸고 말하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런 논란을 막기 위해 주총 이후 열린 이사회에서 회장과 부회장은 대표이사만 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이 의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는 길은 원천 봉쇄된 셈이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옛말이 있다.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쓸데없이 오해받을 일은 하지 말라는 옛 성인의 충고를 다시 한번 새기게 한다. 

강성기 기자  re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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