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 순풍과 역풍, 그 현장을 가다 ②] 삼척, 주민은 풍력 원하는데 정부가 가로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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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 순풍과 역풍, 그 현장을 가다 ②] 삼척, 주민은 풍력 원하는데 정부가 가로막아
  • 서창완 기자
  • 승인 2019.11.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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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주민은 찬성하는데 정작 환경부와 산림청이 가로막고 있어

풍력발전을 두고 말들이 많다. 소음, 저주파, 훼손된 산림. 풍력발전을 둘러싼 대표적 우려들이다. 청정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만큼 발전소가 지어지는 과정까지 모두 깨끗해야 한다는 신념은 풍력발전에도 적용된다.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풍력은 산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진짜 재생에너지가 맞냐는 질문에도 시달린다. 강원도 횡성과 삼척 풍력단지를 다녀왔다. 횡성은 환경적으로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반면 삼척 단지는 주민들이 찬성함에도 산림청이 반대하면서 불협화음이 많다. 풍력발전, 순풍과 역풍이 불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 주]

“우리가 가진 게 산과 바람 말고 더 있나. 정부가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계속 미루다 보니 이제는 사업자가 지쳐서 떠나 버릴까 봐 무섭다. 사업자는 어쨌든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이익이 없는 삼척에 계속해서 붙어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강원 삼척 황조리 주민 나인록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간절히 바랐다. 원자력발전소 백지화 기념비가 두 개나 설립된 도시인만큼 눈여겨 봐야 할 점이다. 삼척의 한 식당에서 1시간 동안 이어진 주민간담회에서 주민들은 풍력이 지역 경제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터줄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에너지 전환’이라는 기조를 내세우고도 일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드러냈다.

지난 8일 육백산 풍력발전단지 예정지로 들어가기 위해 산림청이 만들어 놓은 임도(林道)를 이용했다. [사진=서창완 기자]
지난 8일 육백산 풍력발전단지 예정지로 들어가기 위해 산림청이 만들어 놓은 임도(林道)를 이용했다. [사진=서창완 기자]

지난 8일 강원 삼척 육백산풍력발전 예정지를 찾았다. 앞서 방문한 횡성 태기산풍력발전단지가 11년 동안 운영되며 안정화한 지역이라면, 이곳은 추진 8년 동안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날 삼척 방문은 에너지전환포럼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국 에너지전환 아카데미 2기’와 육백산 풍력단지 사업자인 풍력전문기업 유니슨이 함께했다.

2011년부터 추진된 육백산 풍력발전 사업은 인허가 진행 중 잠정 중단됐다. 사업 용지가 학술적 연구 가치가 높은 고위평탄면 인데다 경제적으로 육성하는 인공조림지 등에 포함된다는 이유였다. 육백산 단지가 다시 추진된 건 지난 8월 당정 협의 이후였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환경과 공존하는 육상풍력 활성화방안’을 내놓았다. 주민 수용성이 높은 삼척 육백산 풍력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육상풍력을 어떻게 활성화하겠냐는 계산이었다.

이곳 주민 수용성이 높게 나타난 비결은 소통이었다. 소음, 저주파 등 환경훼손 문제는 삼척 주민들에게도 초반 거부감의 주요인이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유니슨은 주민들을 직접 이해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국내의 다른 풍력단지 견학을 자주 추진했다. 환경 영향에 큰 피해가 없다는 걸 직접 보고 느끼게 도왔다. 주민간담회에 모인 마을 주민 3명은 “거의 모든 주민들이 풍력발전단지 건설에 찬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풍력 예정 단지를 가는 차 안에서 찍은 육백산에 단풍이 찾아와 있는 모습. [사진=서창완 기자]
풍력 예정 단지를 가는 차 안에서 찍은 육백산에 단풍이 물들어 있다. [사진=서창완 기자]

주민 반대라는 어려운 문제를 푼 사업자인 유니슨은 정작 환경부와 산림청의 반대에 부닥쳤다. 지난 8월 당정 협의에 거는 기대도 높지 않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업을 거절당하며 8년이나 착공도 못한 채 사업을 끌어온 탓이다. 삼척 주민들은 유니슨이 삼척 풍력 사업에서 발을 빼 버릴까봐 두렵다고 했다.

삼척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두 번 저지한 곳이다. 1981년 고시된 원전 건설 예정지 선정을 1998년 12월 해제시켰다. 2012년 이뤄진 원전 예정구역 고시도 지난 5월 막아냈다. 그런 삼척이 풍력 찬성을 넘어 무산될까 두렵다는 이유는 뭘까. 주민과 수익을 나누겠다는 유니슨의 약속이 주는 기대감이 컸다. 유니슨은 마을에 일정 부분의 지분을 주고, 해당 발전 사업으로 나는 수익을 그만큼 환원할 계획이다. 이 또한 주민과 소통을 통해 이룬 성과다.

산림청의 산림 사업으로 나무들이 잘려 나가 밑동만 남아 있는 모습. [사진=서창완 기자]
산림청의 산림 사업으로 나무들이 잘려 나가 밑동만 남아 있는 모습. [사진=서창완 기자]
산림청의 산림 사업으로 나무들이 잘려 나가 밑동만 남아 있는 모습. [사진=서창완 기자]
산림청의 산림 사업으로 나무들이 잘려 나가 밑동만 남아 있는 모습. [사진=서창완 기자]

수익까지 나누겠다는 유니슨과 달리 산림청은 주민들에게 친숙했던 산을 빼앗아 가 버린 존재로 남아 있다. 삼척 대표로 모였다는 주민 3명은 이야기 내내 산림청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드러냈다. 도계읍 황조리·노곡면 상마읍리 등 3개 마을은 육백산 풍력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환경부 등에 협조 요청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산림청이 우리 주민들의 산이던 육백산을 어느 순간부터 막아 놓고 올라가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 유니슨을 따라 산에 올라가 보고 깜짝 놀랐다. 보호한다던 산이 민둥산이 돼 있더라. 말을 안 해줬더라면 풍력단지 조성 때문인 줄 알았을 거다. 간벌(나무 솎아내기)까지는 인정하는데 이건 완전 밀어 버린 거다. 그래놓고 풍력발전단지는 안 된다고 한다.”

주민간담회를 하기 전 실제 육백산에 들러 보고 느낀 감정도 비슷했다. 나무들이 잘려나가 밑동만 남은 육백산에는 벌목을 위해 만들어진 임도(林道)도 곳곳에 나 있었다. 풍력터빈이 들어설 예정지 한 곳에 도착하기까지 가기도 쉽지 않았다. 아직 풍력발전 단지 건설을 위한 길은 만들어지지도 않아 산림청의 길을 이용했다.

벌목된 나무들을 모아 놓은 모습이 이동하는 곳곳에 놓여 있었다. [사진=서창완 기자]
벌목된 나무들을 모아 놓은 모습이 이동하는 곳곳에 놓여 있었다. [사진=서창완 기자]

차를 몰고 들어간 지 30여 분 만에 벌목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 일부분이 통째로 깎여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산림사업을 위해 베어진 나무’라는 설명 없이 장소를 지나왔다면 영락없이 풍력발전 탓으로 보일 법한 광경이었다.

산길을 운전하는데 도가 튼 우재철 유니슨 과장은 “산림청이 임도와 운재로를 어마어마하게 내놓기 때문에 이곳 길은 몇 번을 와도 헷갈린다”고 말했다. 실제 우 과장은 풍력터빈 건설 예정지에 미처 못 가 차량을 정차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산림청 경제림 지역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벌목이 진행된 풍력단지 예정지를 보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경제림 지역의 대규모 벌목 작업은 생태등급에 상관없이 진행된다. 식물·식생, 지형·지질 등 하나만 해당되면 생태자연도 1등급에 들어가 사업이 불가능한 민간사업자에게는 억울할 수 있는 지점이다.

특히 육상풍력은 정부가 ‘에너지 전환’ 기조에 따라 설치를 장려한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확보하기로 한 풍력발전 목표만 16.5기가와트(GW)다. 한국남부발전과 유니슨이 추진하고 있는 육백산 풍력단지의 발전량이 30.2메가와트(MW) 정도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로 따져봐도 주민 대부분이 찬성한다는 이 사업마저 2년 넘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상태다. 주민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환경부와 산림청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육백산 풍력단지가 세워지면 지역 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는 길이 통로가 돼 약초단지도 하고, 관광객도 불러모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다. 우리는 산 말고 가진 게 없다. 재생에너지 단지를 육성하겠다는 계획까지 내세운 정부가 주민들이 찬성하는 풍력단지 건설을 왜 막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서창완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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