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저해(沮害)하는 상법개정안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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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저해(沮害)하는 상법개정안 유감
  • 편집부
  • 승인 2013.08.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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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영산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미국 변호사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소위 ‘경제민주화’의 경제정책이 발표되면서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중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를 반영하는 법안들이 국회에서 이미 개별적으로 발의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이를 통합하는 정부주도하의 상법개정안 준비가 별도로 이루어지면서 법무부는 지난 2013년 7월 17일 개정안 입법을 예고하였다.

이번 상법개정안에서 정부는 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의 선임절차를 개선하고 이사회의 감독과 집행기능을 정비하는 한편 경영진의 위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구제수단을 확대하며 주주총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 집행임원제의 의무화,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전자투표제의 의무화, 감사위원회 위원의 분리선출로 요약된다. 이번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며 특히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업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내용에 대하여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입법취지만 앞세우고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부족

첫째, 상법개정안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 취지는 자회사 이사의 위법행위로 자회사뿐만 아니라 모회사 역시 손해를 입는 경우 특히 모회사의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모자회사라도 모회사의 주주가 별개의 법인격인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것은 회사법의 근간인 법인격의 본질을 훼손시킨다.

우리 상법상 법인격을 부인하는 법인격부인론은 판례로 인정되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서 요건도 엄격하다. 그런데 이와 동등한 다중대표소송제를 상법상 명문으로 도입하는 것은 비록 기업오너의 사익추구를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법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또한 펀드의 투기적 수단으로 악용되어 기업이 일방적으로 희생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둘째,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회 설치회사의 경우 이미 도입된 집행임원제를 의무화하여 업무집행을 전담하게 하고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집행임원제는 경영효율의 극대화라는 취지로 도입되었고 궁극적으로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이사총수 과반수이상이 사외이사이므로 만일 집행임원제가 의무화되면 기업경영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비상근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중심이 되어 정책결정을 하고 집행임원을 감독하게 되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현실이 무시될 뿐만 아니라 의무화 취지와는 달리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저해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회사의 사정에 따라서 그 도입 여부는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현재의 입법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상법개정안은 일정 자산규모 이상 상장회사는 소수주주권으로 집중투표를 청구할 경우 정관의 배제규정과 관계없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대부분 회사가 이미 도입된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한 이유는 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주주들간의 극심한 경영권 확보경쟁으로 인한 혼란 때문이다.

이미 SK의 경우 지난 수 년 간 소버린의 집중투표제 실시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므로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들이 집중투표를 허용하는 경우에는 외국계 투기자본에 의한 경영권위협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안정적인 경영활동이 위협받을 수 있다. 또한 이사의 시차임기제와 같은 편법이 동원되면 1인 이사만 선임하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의무화의 효과가 무력화될 수도 있으므로 오히려 현재와 같이 개별회사의 사정에 따라 도입여부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회 위원을 맡을 이사를 다른 이사와 분리하여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선임 단계에서부터 3%의 의결권 제한규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감사 선임시 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되지만 감사에 갈음하는 감사위원회 위원은 선임된 이사 중에서 선임되므로 사실상 의결권 제한규정이 배제되어 감사선임과 비교하여 독립성이 저해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을 의무화하면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 특히 국내외 투자펀드들이 연합하여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등 이를 악용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대상기업인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대부분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데도 이러한 악용에 대한 경영 방어권이 전혀 없는 상법개정안은 문제가 있다.

다섯째, 상법개정안은 주주총회의 활성화를 위하여 일정 주주 수 이상의 상장회사에 대하여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실제로 주총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기업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달리 주주의 경영참여 인식 부족과 책임의식 부족에도 원인이 있다. 전자투표를 의무화해도 주주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주총 활성화의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의무화를 하면 해킹과 같은 문제도 심화되고 현장주주총회와 병행되는 전자투표관련 비용과 업무도 기업에게는 이중부담이 된다.

따라서 의무화의 효과가 크지 않다면 오히려 회사의 사정에 맞추어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현재의 입법태도가 바람직하다.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섀도우보팅이 2015년부터 폐지됨에 따라 전자투표제가 보다 활성화될 것이므로 당장 이를 의무화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이 상법개정안은 소액주주의 보호와 주주총회의 활성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라는 입법취지만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뿐 그 결과와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외국 입법례에서도 드문 의무화라는 강제적 수단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기업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자율성을 침해한다.

또한 대주주의 의결권은 제한하면서 국내외 펀드와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기 때문에 적대적 M&A에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 특히 개정안 일부는 이미 우리 기업들이 경험한 악성적인 투기자본이 유용하기 좋은 제도들이기 때문에 소액주주를 가장한 일부 공격적 펀드의 소위 먹튀 수단이 될 수 있다.

집행임원과 집중투표 및 전자투표는 상법상 시행된 지도 몇 년 안된 상황인데 이들을 급하게 의무화시키는 이번 상법개정 움직임은 정답에 대한 확신도 없이 자칫 시행착오로 남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번 상법개정안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창업과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지원과 보호장치를 강조하지만 일정 수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많은 규제와 불이익을 주어 더 이상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장벽을 조성하는 것 같다.

일부 지배주주의 전횡과 사익추구는 견제되어야 하지만 그 방법으로 기업 전체에 저해되는 상법개정은 지양되어야 한다.
 

편집부  gno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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