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전자의 평생보증과 OEM…소비자가 건너 뛰는 ‘불편한 진실’, 누구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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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삼성전자의 평생보증과 OEM…소비자가 건너 뛰는 ‘불편한 진실’, 누구 탓일까?
  • 우연주 기자
  • 승인 2023.06.22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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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사람들은 단어를 볼 때 제일 앞 글자와 제일 뒤 글자만 보고 단어를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 글자를 조금 바꿔놓아도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한다고. 외국어이거나 처음 보는 단어일 경우 더욱 그렇다.

문제는 '인식의 오류'가 '돈'의 문제로 이어질 때 생긴다. 며칠 전 삼성전자의 평생 무상보증도 소비자가 광고 문구를 '인식'할 때 엄밀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삼성전자의 제품들에는 분명히 적혀있다. "평생보증, 컴프레서와 모터에만 적용"이라고 또렷이 적혀있어도 소비자가 냉장고 구조나 부품에 익숙하지 않다면 아는 단어인 '평생보증'만 기억에 남게 된다.

순전히 남 탓을 할 수 있으면 오히려 편하다. "엄마가 오늘 비 안 온다고 했잖아!"라고 화를 내거나 "사장님이 이상한 물건 파신 거잖아요"라고 주장할 수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놈의 냉장고, 다시 보면 옆에 '부품만'이라고 적혀 있으니 내 탓이네. 나를 탓하고, 나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아주 친한 관계이거나 공감해 줄 것이라 믿는 집단에서만 조심스레 이를 밝힐 수 있는 것도 이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본인의 착각을 깨달은 소비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줍게 글을 쓴다. "알고 보니 그렇더라구요. 님들도 조심하세요"라는 당부를 덧붙이며 글의 당위를 찾는다.

하지만 오늘도 소비자는 무관심해 보인다. 삼성전자 가전 OEM 및 ODM 이슈가 있었다. 작년, 언론은 삼성전자가 중국산 제품을 '택갈이' 수준으로 판매하고 있다며 두들겨 팼고, 삼성전자는 올 초 "태국 현지 법인으로 제조사를 변경했다"고 밝힌 사건이다. 시간이 좀 지난 일이라 팔로업을 해보려고 개인 온라인 판매자, 삼성스토어 직원들에게 고객들의 OEM, OEM 반응을 물어봤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조사가 삼성 현지 법인이건 중국 회사건 고객님들 관심 없던데요." 모 판매처에서는 문제의 ODM 에어컨에 이번 주에만도 수 개의 ‘만족’ 리뷰가 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ODM 제품이 나오고, 팔릴 수 있는 배경은 뭘까? 관건은 '브랜드'다. 같은 성능에 더 비싼 삼성전자의 창문형 에어컨이 세상에 나오고 팔릴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브랜드'가 주는 신뢰다. 삼성전자는 알고 있었을까? 똑같은 제품이라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입힌다면 잘 팔릴 거라고? 설령 그렇게 생각했다 한들, 떡하니 '중국산'이라고 적혀있고 ODM이라고 인정한 제품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잘 팔리는 것은 삼성전자의 잘못인가?

장사하는 입장에서 '팔릴 문구'를 쓰고 싶지 안 좋은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을 리가 없다. 물건을 많이 팔고 싶은 욕구는 죄가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 즉 세계 경제의 발판이며(feat. 아담 스미스) 기업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법이 개입해 소비자를 보호하려 애쓴다. 소비자보호법은 물론이요,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 하나 만들려 해도 구구절절한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아니, 제품 팔고도 부품을 9년 동안 보유하라는 것이 말이 되나. 이쯤 했으면 국가도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소비자의 몫이다. 물건을 구매할 때 꼼꼼히 '예외 조항'들을 읽어야 한다. '보이는' 특징들뿐만 아니라 '봐야 하는' 것들을 두 눈 부릅뜨고 찾아야 한다. 이건 기업이 못되어서도 아니고 국가가 의무를 소홀히 해서도 아니다. 내 돈 주고 돈값 제대로 받고 싶은 소비자라면, 내 권리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노력이다.

쇼핑이 취미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다. 내가 쓰는 돈에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면, 조금은 생각해봐야 할지도.

우연주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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