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요즘 우리는 왜 옷을 이렇게 입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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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eets DESIGN] 요즘 우리는 왜 옷을 이렇게 입을까?
  • 박진아 IT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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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현대인은 실리콘밸리 스타일을 입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사업가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의 창업자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쫏겨났다가 경영에 복귀하던 해인 1998년, 검정색 터틀넥 상의를 입기 시작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공식 자서전 <스티브 잡스>에 보면 잡스는 애플 사원들에게 입힐 유니폼을 제안했지만 직원들의 야유와 반대에 부딛히자 혼자 직장 유니폼을 입고다니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잡스의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의 검정색 터틀넥 상의, 리바이스 501 청바지, 그리고 회색 뉴밸런스 990(오리지널 1982년 모델) 운동화 차림은 패션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탁월한 신의 한 수(神手)였다고 미국 패션디자이너 랄프 루치(Ralph Rucci)는 평가하기도 했다.

공식 자서전 『스티브 잡스(STEVE JOBS: THE MAN IN THE MACHINE)』 에 실린 1980년대 젊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모습. 그는 이미 애플 컴퓨터 초기 시절부터 청바지와 검정색 우의 차림을 했다. Photo courtesy of Magnolia Pictures.

구글(Google)이 야후, 알타비스타, 넷스케이프 등 경쟁 검색엔진을 제치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인터넷 검색엔진 시장을 재평정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엽, 구글의 두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나 아저씨 바지 차림의 전형적인 촌스러운 컴퓨터 괴짜 패션을 구가했다. 곧이어 2004년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미 동부에서 실리콘밸리로 전격 이주해와 페이스북을 설립한 마크 주커버그는 초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청바지에 회색 티셔츠나 검정색 후디을 입은 지극히 평범하고 캐쥬얼한 옷을 고집한다. 지금은 비싼 명품옷을 입는힙스터 패셔니스타가 된 잭 도르시 트위터 창업자도 초기 시절엔 수수하고 헐렁한 카키색 카고 바지와 검정색 후디 차림을 즐겼다. 구글의 최고경영자 선다 피차이는 운동선수용 트레이너 자켓과 운동화를 신고 기조연설을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니클로’격으로 대중의류의 기능주의를 내세우는 에버레인(Everlane) 의류 브랜드는 티셔츠-청바지-스커트 등 베이직 패션 아이템을 위주로 가급적 폭넓은 소비자 대상을 겨냥하고 제품 제조가, 제조원, 윤리적 관리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품철학은 유니클로 유사하지만 가격대는 아이템별 100달러 안팎으로 책정해 대중브랜드와 고가 브랜드 사이에 포지셔닝 했다. 사진: 홈페이지 유튜브 캡쳐.

디지털 시대=패션의 민주화?

이 모두다 오늘날 전세계인들이 평상복으로 또 자유시간과 휴가철에 두루 걸치는 최신유행 패션이다. 어디 그 뿐인가? 실리콘밸리 캐쥬얼 스타일은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의 한 서브 쟝르가 되어 주류 패션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패션일간지 『WWD(우먼스 웨어 데일리)』 조차도 21세기에 접어든 이래 현 디지털 시대의 가장 아이콘적 패션 스타일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 룩(Bay Area look)’ 즉, 팔로알토 실리콘밸리의 인터넷과 컴퓨터 분야 창업자 문화에서 비롯된 티셔츠-후디-청바지-운동화를 콤보시킨 극도로 캐쥬얼한 스타일임을 인정한다.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문화는 협업(collaboration)을 좋아한다. 2016년 명품 브랜드 구치가 전통적 명품과 거리 낙서화가 트레버 앤드류(Trevor Andrew)를 초대해 시도한 구치 코스트(Gucci Ghost) 프로젝트중 구찌X앤드류 트레버 스웨트셔트 디자인. Courtesy: Gucci, S.p.A.

집에서 입던 옷인지 외출 복장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극도로 편안하고 간편한 복장은 언제어디서든 시공을 불문하고 일에 뛰어들 채비가 돼있는 실리콘밸리 비즈니스 문화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젊음지향주의 심리가 버무려져 패션으로 소화된 결과라는 것이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일하는 실리콘밸리의 젊은세대 창업자와 사업가들은 기성 대기업 조직과 임직원들의 숨막히는 격식과 경직된 양복차림을 거부하는 제스쳐를 통해 ‘디스럽트(disrupt)’, 기존질서의 파괴, 자유와 독창성을 선언한다.

2017년 개장한 올버즈 뉴욕 매장. 애플스토어의 제니어스 바를 연상시키는 매장, 모 소재의 착용이 편안한 신발, 손쉬운 세탁가능성의 실용주의와 만인지향적 신발의 민주주의를 스타일로 승화했다. Image courtesy: Allbirds, Inc.

디지털 시대엔 패션도 유니버설 디자인 시대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패션 트렌드 또한 상의하달식 유행과정을 통해서 변두리 스타일이 주류 유행으로 포섭된다. 티셔츠는 실리콘밸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누구나 입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민주적인 패션 아이템이다. 거리의 부랑아와 해커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후디(모자 달린 웃옷)는 애송이 컴퓨터 개발자부터 거물IT기업 창업자들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 가리지 않고 입는 전천후 패션 아이템이 됐다. 예를 들어 ‘만인을 위한 운동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올버즈(Allbirds) 브랜드는 직물과 고무를 소재로 한 미니멀한 룩과 경제적・윤리적 제품공정으로 생산한 운동화로 누구에게나 맞는 범표준형 스타일을 추구한다. 수요확장성, 서비스의 균질성, 은근한 고급성으로 가장 많은 유저를 확보해야 하는 실리콘밸리 테크업계의 에토스와 기업 생리가 패션으로 표현됐다고 전형적 실리콘밸리 스타일이다.

‘패션계의 애플’ 스타일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온오프라인 매장을 연출하는 엔타이어월드(Entireworld)는 실리콘밸리 미니멀리즘과 막연한 디지털 유토피아를 지향하며 밀레니얼 세대 젊은이 소비자에게 특히 어필하는 패션 브랜드다. Image: Entireworld landing page capture.

구두와 액세서리 분야도 편안함과 캐쥬얼성이 우세다. 본래 1960년대 캘리포니아 해변 스케이트보드광들이 즐겨 신던 밴스(Vans) 운동화는 오늘날 예복용 구두와 캐쥬얼 스니커 사이 경계를 허무는 디자이너 운동화 쟝르의 원류가 되어 요즘 새로 등장한 패션 스타트업 기업들이 21세기풍으로 리바이벌하는 영감이 됐다. 최근에는 작고 착용이 간편한 크로스바디 백, 풍이 큰 풍진한 스타일, 편안한 고무줄 허리가 유행하고 있는데 이 모두 일과 삶, 시간과 공간, 업무시간과 여가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고 바쁜 실리콘밸리식 일 문화의 반영이다.

테크 업계 용어로 브랜드란 곧 플랫폼이고 제품은 쉽게 확장가능(scalable)하고 광범위하고 수익성을 거둘수 있도록 가장 많은 소비자를 겨냥해야 한다. 여태까지 기성 의류 제조업체들은 독자적 고급스러움을 지향해 의류를 디자인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모든이에게 균일하고 균등한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 원리가 담긴 실리콘밸리 스타일 패션을 포용하고 있다. 그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태세라면 가까운 미래 패션 시장은 고급스러움과 보편성을 결합한 스타일과 실용성이 결합된 의류를 합리적인 가격과 독특한 구매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 주도할 것이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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