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좋은 기업 디자이너는 훌륭한 리더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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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eets DESIGN] 좋은 기업 디자이너는 훌륭한 리더가 만든다.
  • 박진아
  • 승인 2019.07.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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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산업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의 새 출발

지난 6월 28일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조니’ 아이브(Jonathan Ive, 1967년生)는 올 연말 애플을 떠날 것이라 발표했다. 故스티브 잡스(Steve Jobs, ✝56세) 애플 창업자와 함께 그 아이콘적 ‘애플룩(Apple Look)’을 구축하고 현대 산업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이렇게 지난 30년 가까이 쌓아온 애플 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1990년대 대부분을 매출 부진, 스티브 잡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의 축출, PC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에 밀려 컴퓨터계의 아웃사이더로 머물러 있던 애플은 1998년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후 연이은 상업적 성공을 거듭해 21세기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황금시대’를 선도하며 오늘날 기업 가치(주가 총액 기준) 1조 달러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뒤에는 기업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있었다. 아이브의 애플 퇴사 발표 직후 애플 주가는 즉시 약 1%가 빠졌다. 아주 미미한 수준의 낙폭이지만 애플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80억 달러 손실을 입었다.

실리콘 밸리 테크업계와 비즈니스 언론은 앞다퉈 아이브가 애플을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가 뭘까를 두고 수근대고 추측과 분석을 내놨다. 절친한 보스 겸 동료였던 스티브 잡스의 타계 후 최고경영자 직을 인계한 팀 쿡(Tim Cook)이 디자인에 덜 치중해서? 최근 몇 년 애플의 매출 부진과 혁신적 한계에 좌절을 느꼈나? 아니면 여느 기업이 그렇하듯 애플도 이젠 제품 수명주기 성숙과 혁신의 한계에 다달은건 아닐까?

애플은 플라스틱 소재를 이용한 아이북의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표면과 감성적 형태미는 테크 제품에 최초로 소개했고 곧 타 기업들이 모방하는 도미넌트 디자인이 됐다.
1998년 출시된 아이맥(iMac) 데스크톱 컴퓨터. 애플은 투명 플라스틱 소재를 이용해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표면감과 1980년대 이탈리아풍(예컨대, 알레시) 감성주의 미학을 테크 제품에 최초로 소개해 파격을 불러왔고 곧 타 기업들이 모방하는 도미넌트 디자인이 됐다. 욕실 용품 디자이너로 일한 조니 아이브의 감각이 엿보인다.

월터 아이작슨이 스티브 잡스 전기에 썼듯이 조니 아이브와 스티브 잡스의 협력은 현대 기업의 역사상 최고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영국에서 건너와 1990년대 초에 애플에 조인한 조너선 아이브는 이윤극대화와 엔지니어 위주로 운영되던 당시 실리콘밸리 테크기업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중 잡스는 1998년 주주들의 동의로 애플 최고경영자직에 극적으로 복귀했다. 목표는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아니라 훌륭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선언한 잡스의 사업 철학은 가업이던 금속세공을 보고 배우며 자란 아이브에게 내적 동기를 고무했다고 한다.

독일 가전사 브라운과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미학을 담은 아이폿(iPod).
'Less, but Better' - 독일 가전사 브라운과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제품 철학을 담은 아이폿(iPod)은 미니멀한 브라운 사의 가전용품과 매우 흡사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에는 '취향'이 없다."고 지적했던 잡스는 컴퓨터도 깨물고 싶게 예쁠 수 있음을 보여줬다. 1998년, 우중충한 회색 장방형 박스 모양의 PC가 주를 이루던 당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애플은 아이맥(iMac) 데스크탑과 아이북(iBook) 랩탑을 전격 소개하고 컴퓨터 디자인의 표준을 새로 정립했다. 아이브는 초년병 시절 영국 디자인 회사 탠저린(Tangerine)에서 욕실 액세서리 용품을 디자인했던 경험을 되살려 컴퓨터에 감성적 미감을 입혔다. 잡스는 컴퓨터 외장에서 OS X  유저인터페이스에 이르기까지 "버튼까지 핥고싶을 만큼 예쁘게 디자인했다"며 <포춘>지 2000년 1월 4월호 인터뷰에서 한껏 뽐냈다.

애플 디자인 20년을 기념해 애플이 출간한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중에서 제1세대 아이폰 디자인. Courtesy: Apple.
애플 디자인 20주년을 기념해 2018년 애플이 출간한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중에서 제1세대 아이폰 디자인. Courtesy: Apple.

새 아이맥과 아이북 디자인으로 애플에 폭발적 매출 성공을 선사하며 그제까지 컬트 브랜드에 불과하던 애플은 단숨에 디자인 주도적 컴퓨터 기업이 됐다. 그로부터 잡스가 세상을 뜬 2011년까지 애플에게 약 10여 년간은 카리즈마적 경영과 혁신적 디자인이 폭죽처럼 연발한 애플의 전성기였다. 애플은 아이팟(2001년), 아이폰(2007년), 아이패드(2010년)를 차례로 선보이며 오디오-컴퓨터-전화-모바일 기기가 한데 융합된 멀티미디어 컴퓨팅 제품 디자인 카테고리를 재편했다.

아이브는 모든 기업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에도 그린다는 상사복 많은 행운아였다. 탁월한 비즈니스적 혜안과 카리즈마의 소유자 잡스를 보스로 뒀던 때문이다. 제품의 성공 여부는 디자인이 결정함을 잘 알고 있던 잡스는 디자인 부서를 가장 소중하고 비밀스럽게 대우했고, 두 사람은 거의 매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하고 상의했을 만큼 절친했던 영혼의 동지였다.

애플 에어포트(AirPort) 무선공유기 디자인.
외형이 아름다운 만큼 숨어 있는 안쪽까지도 아름답게 디자인돼야 한다. 애플 에어포트(AirPort) 무선공유기 디자인.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중에서. Courtesy: Apple.

사실 조너선 아이브는 이전에 없던 획기적인 새 양식을 개척한 독창적 디자이너는 아니다. 아이브가 구축한 ‘애플룩’은 20세기 독일 가전제품의 대명사 브라운(Braun) 사의 수석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의 기능주의 미학의 현대적 계승이다. 그리고 아이브는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을 21세기 테크와 결합하여 세련화시킨 독일 기능주의 디자인의 충실한 후계자다. 『스티브의 머릿속』의 저자 리앤더 카니도 서술했듯, 잡스 또한 가족들과 독일제 대 미제 가전의 기능성과 디자인을 놓고 진지한 토론했을 정도로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 팬이었다.

‘Less is More’라는 20세기 독일 디자인 철학에서 ‘Less is More’를 주창한 디터 람스의 기업 디자인 철학은 애플 제품 디자인에 그대로 살아있다. Courtesy: Braun Produktpalette © Rams Archiv.
‘Less is More’라는 20세기 독일 디자인 철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Less, but More’와  'Less is Better'를 제품으로 표현한 디터 람스의 디자인 미학은 애플 제품 디자인의 핵심 영감이 됐다. Courtesy: Braun Produktpalette © Rams Archiv.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기업 조직의 존재 이유는 혁신마케팅'이라고 했다. 애플은 지난 근 30년 디자인과 기술 혁신,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광고와 마케팅 전략, 주도면밀한 비즈니스 실무 집행에 이르기까지 여타 사업체들이 우수 선례로 배우고 싶어하는 혁신과 실적의 모범이자 고전적 비즈니스 사례다.

헌데 최근 그런 애플에 지금까지 거듭된 눈부신 매출성공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발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고가 전략을 내세웠던 아이폰X 후속 제품군의 매출 부진, 애플 워치 대중화 지연, 고정 애플 팬들의 제품 피로감 대비 신규 애플 소비자 확보 어려움이 주요 원인들로 꼽힌다. 실제로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애플 디자인은 점진적인 개선을 거듭해왔지만 전성기 같은 획기적인 디자인 혁신은 보여주지 못했다.

2018년 9월 아이폰 Xr 출시 행사에 참가한 조니 아이브와 팀 쿡 최고경영자. Courtesy: Apple.
2018년 9월 아이폰 Xr 출시 행사에 참가한 조니 아이브와 팀 쿡 최고경영자. Courtesy: Apple.

아이브의 애플 퇴사는 디자인계 은퇴를 뜻하지 않는다. 그는 러브프롬(LoveFrom)이라는 디자인 에이전시를 개업하고 첫 클라이언트가 될 애플에 디자인을 제공할 것이라 한다. 러브프롬이란 잡스와 아이브가 깊이 믿어마지 않던 디자인 철학을 응집한 것으로, 제품이란 사랑과 배려를 담아서 인류에 대한 감사와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잡스의 생전 디자인 철학을 담은 이름이라고 아이브는 설명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훌륭한 리더 밑에서 높이 성취하고 최고 디자인 책임자의 책임을 완수한 행운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이제 그는 앞으로도 애플의 디자인 혁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유능한 디자인 팀과 조직문화를 구축해 놓고 애플을 떠난다. 그가 새로 설립할 러브프롬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그는 디자이너로 매니저로 혹은 그 둘을 결합한 디자인 매니저로 직업인생 제2막을 펼칠 것이다.

박진아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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