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회장님' 호칭을 거부하면서 앞으로 재계 총수들의 호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MZ세대(20~30대 밀레니얼+Z세대)가 사회 중심으로 다가서면서 과거 권위주의 상징으로 불리던 '회장님' 호칭이 점차 변화의 기로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회장 대신 이사회 의장이 좋은 대안이 되기도 한다"며 "각종 경영 리스크 등에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 1일 경영진과 임원에 대한 호칭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이재용 회장의 경우 공식 호칭은 'Jay(영어이름)' 또는 'JY님' '재용님' 등으로 불리게 됐다. 

삼성전자는 기존과 같은 직책과 직급을 이용한 호칭은 금지한 것. 임직원들은 경영진이 참석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임원회의, 간담회, 메일·메신저 등에서 수평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6월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좋은 사람 모셔오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을 예고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해 소통행사에서 "조직문화는 수평적 문화가 기본 근간이고, 수평적 문화의 근간에는 상호존중이 있다"며 "부회장님, 대표님 하지 말고 저를 'JH'라고 불러달라"고 당부했다.

구광모 대표은 지난 2018년 6월 회장직에 오른 직후 임직원들엑 "대표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구광모 대표는 지주사 LG 대표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기 위해 직급(회장)이 아닌 직책(대표)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40대 초반에 회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평소 겸손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특히 재계에서 호칭 변화의 시작은 CJ그룹이다. CJ는 2000년 1월 '님'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공식 석상에서 이재현 회장을 부를 때도 '이재현 님'이라고 부른다.

이사회 의장, GIO,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등 호칭 다양화

변화의 바람은 IT업계에서 빨랐다. 

안철수 안랩 창업자(현 국민의힘 의원)는 지난 2005년 대표이사에 물러나면서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당시 직원에 따르면 사내에선 회장을 맡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안철수 창업자는 아무 직책도 맡지 않고 전문경영인(CEO)에 맡기고 미국 와튼스쿨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안랩 임원진은 선진적 지배구조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당시로는 획기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안철수 창업자에게 의장을 맡도록 설득했다는 것.

이후 방준혁 넷마블 이사회 의장,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현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등이 회장 대신 의장을 맡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밖에도 회장 대신 다른 직책을 맡는 경우도 다양화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GIO(글로벌투자책임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HD현대 최대주주) 등이 대표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직급 없는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 차원에서 영어이름에 ‘OO님’ 등으로 호칭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회장님'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재계 총수들의 '회장님' 호칭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관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