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책銀, 대한항공 CB전환은 거위 배를 가르는 우(愚)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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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책銀, 대한항공 CB전환은 거위 배를 가르는 우(愚)가 될 수 있다
  • 김의철 기자
  • 승인 2022.05.24 09:55
  •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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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가 명확한 판단 기준 제시했는데도 여전히 CB전환에 '배임론' 잣대질
- 산은·해진공, HMM CB전환으로 단기 이익 누렸지만, 공공성 훼손으로 결국은 모두 손해

다음달 22일,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최대현 수석부행장)과 한국수출입은행(행장 방문규)이 3000억원 규모의 대한항공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할 지를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큰 이익이 있어 이를 포기하면 배임'이라는 논리와, '당초 투자가 아닌 지원이 목적이었다'는 논리가 상충하고 있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은 '배임'이라고 주장했고,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배임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 "CB 시장, 불법·불건전"...작년 10월 법규 개정

고승범 금융위원장.[출처=금융위원회]
고승범 금융위원장.[출처=금융위원회]

정부의 금융부문 최고 기관인 금융위원회(위원장 고승범)는 ‘증권시장 불법·불건전행위 근절 종합대책’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지난해 전환사채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배포한 금융위 보도자료 일부 [자료=금융위]

금융위가 지적한 CB전환이 불건전한 이유는 두가지다. 최대주주 등에 의한 CB전환으로 인해 기존 지분가치가 지나치게 희석된다는 점과, 전환가액이 낮으면 CB보유자에게 유리해 불공정한 거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불건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콜업션 한도를 정하고, 전환가액을 상향조정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결정을 했다. 

금융위는 이같은 법 개정을 통해 'CB가 최대주주의 편법적 지분확대에  이용되거나, 각종 불공정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억제되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보호가 강화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금융위의 명확한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CB전환과 관련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이동걸 전 산은회장의 '배임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일 가진 퇴임 기자회견에서 HMM(사장 김경배) CB 전환을 통해 얻은 주식 평가차액과 그에 따른 세금과 정부배당금을 '성과'라고 주장했다. 

이날 이 전 회장이 언급한 '금호타이어, 한국지엠,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의 경영정상화'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성과였다.

금호타이어와 한국지엠은 취임 초기에 마무리된 일이고, 대우건설은 중흥건설에 매각한 후 잡음이 많았다. 두산중공업은 수출입은행 등과 함께 1년간 자금을 지원해 정상화했지만, 정부의 탈원전정책 피해와 관련한 논란이 여전하다.

결과적으로 4년8개월 재임기간 동안 15억원이 넘는 최고 공공기관장 임금을 받은 이 전 회장이 내세울 만한 성과는 HMM 경영정상화인 셈이다. 

그런데,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과연 자랑할 만한 성과인지 의심스럽다. 

HMM의 경영실적은 경이적이다. 9년간 이어진 적자 행진을 멈추고 2020년 9818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7조 377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도 1분기에만 3조1486억원의 영업이익 올렸다. 이는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은 영업이익이다. 영업이익률은 64%로 단연 1위다. 전체 임직원을 모두 합쳐도 1700여명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면, HMM의 주가는 지극히 저조하다. 프랑스 해운전문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이달 HMM의 선복량 순위는 약 82만TEU로 세계 8위다. 5위인 독일 하파크로이트(173만TEU), 6위 에버그린(153만 TEU), 9위 양밍해운(약 67만 TEU), 11위 완하이라인(41만 TEU) 순이다. 

오션얼라이언스동맹인 에버그린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회사는 HMM과 같은 디얼라이언스 동맹이다. 

HMM과 주요 경쟁 해운사들의 5년간 주가 상승률 [자료=구글 금융]

완하이라인은 선복량이 HMM의 절반에 불과한데도 23일 종가기준 시가총액은 약 17조원으로, 15조4800억원 정도의 HMM에 비해 오히려 더 많다. 에버그린마린은 이날 시가총액이 약 33조원으로 HMM보다 2배 이상 많다. 하파크로이트는 100조원이 넘는다. 

주가 상승률은 이들 회사의 5년 평균 상승률이 1000%를 넘는 것에 비해 3분의1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 이 전 회장이 '배임론'을 내세워 CB 전환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지난해 4월까지만 하더라도 HMM의 주가 상승률은 이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 

결국, CB전환으로 인해 주식 가치가 지나치게 희석됐고, 이는 금융위가 우려한 내용 그대로다. 

이 전 회장이 우려한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업무상의 임무를 위배함으로써 자신(산은)에게 손해를 입혀야' 한다. 업무상의 임무가 무엇이냐와 수단의 불법성이 배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산은의 임무가 '투자를 통한 수익'인지,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인지와, CB 상환이 불법인지 아닌지를 살피면 '배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방문규 행장 "국책銀, 수익률 목적으로 기업 구조조정 안해",,,HMM 타산지석 삼아야

이 전 회장과는 달리 제28회 행시를 거쳐 정통 경제관료로 기재부의 핵심인 예산실장까지 지낸 바 있는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대한항공 CB전환과 관련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질의에 “국책은행은 수익률을 목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전 회장은 시장형정책기관임을 내세워 '재무구조와 수익성'을 강조했지만, 국책은행인 산은의 신용도는 다른 은행과는 달리 '국가신용도'가 적용된다. 이는 재무구조나 수익성과는 상관없이 다른 은행에 비해 훨씬 유리한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대단한 특권이다. 이같은 특권을 국민이 허락한 이유는 '한국산업은행법'에 명시된대로 '국민경제와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 때문이다. 공권력과 함께 이같은 특권을 가진 정책기관이 시장에서 다른 기업과 수익성을 목적으로 경쟁에 참여하면 시장의 질서가 망가진다. 

가령, 한국은행이 수익을 낼 요량이면 기준 금리를 올리거나 외환수급을 조정해 환율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면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성이 사라진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다. 

물론, 국책은행인 한은이 수익을 목적으로 일을 하지는 않는다. 국책은행은 스스로의 이익이 아닌 국민경제 전체를 보고 일한다. 그 결과 이자수익이 생기거나 환차익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성과라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산은 직원 3300여명이 받는 연간 4000여억원의 급여의 원천은 바로 국민경제와 납세자들이다. 지난 5년 동안 산은 직원들이 받은 급여 2조원만큼의 가치를 포괄적으로 국민경제에 돌려줬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CB전환...우선 이익인 듯 보여도 결국은 모두의 손해

산은은 HMM CB전환을 통해 실제 얼마나 이익을 봤을까? 산은은 지난해 전환한 3000억원의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약 2조원의 이익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이렇게 획득한 주식 6000만주는 지난 1월 말 2만1900원대까지 떨어져 1조원의 이익이 날아가기도 했다. 

만일 CB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해상운임 상승에 따라 다른 해운사들처럼 3배 이상 주가가 상승했을 수도 있고, 지난 5년 동안 다른 경쟁 해운사들에 비해 산은과 해진공이 뭐라도 잘한 것이 있다면 더 올랐을 수도 있었다. 

산은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도 포기했다. 

또한 산은이 이익으로 취한 약 2조원은 고스란히 HMM의 '파생금융상품 손실'로 잡혔다. 연간 판관비가 약 4000억원에 불과한 HMM은 지난해 이보다 많은 외환차익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7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순이익은 5조3000여억원에 불과했다. 

산은과 해진공의 CB 전환으로 국민연금공단과 신용보증기금 등을 포함한 나머지 주주들도 모두 손해를 봤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시총이 증발하면서 '제로(0)섬'도 아닌 '마이너스(-)섬' 게임으로 만든 셈이다. 

산은의 진짜 손해는 국책은행으로서의 공공성과 신뢰를 잃게 됐다는 것이고, 게다가 금융부문의 최고 기관인 금융위는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산은이 HMM CB전환으로 취한 이익과 평과와 성과급이 공정하고 상식적인가?

산은이 획득한 HMM 지분은 정상적으로 시장에서 매입한 적이 없다. 지난 2017년 세계 최대 투자회사인 블랙록의 투자를 막고, 감자와 유상증자를 통해 다른 주주들에 비해 월등히 낮은 가격으로 지분을 획득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은 막대한 손해를 감수했다. 이들 소액주주들은 국민이자 유권자이며, 납세자다. 

지난해 5월 HMM이 MSCI에 편입되면서 하루에 1000만주 이상을 매입한 외국인 투자자도 큰 손해를 봤다. 당시 매입가격은 주당 5만600원으로 지난 1년 동안 상당한 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시장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하지 않았던 산은은 모든 주식을 시장가격으로 판다고 가정해 이익으로 취하고 최고 등급의 성과급을 받았다. 실제로 이 전 회장은 HMM 지분을 분할 매각하겠다고 여러차례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산은의 '불공정한'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산은이 보유한 1조3400억원 규모의 CB에 대해서도 이 전 회장은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겠다고 고집해왔다. 심지어 해진공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쳐 2조6800억원의 CB를 모두 지분으로 전환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 부산이전에는 '국책은행'임을 내세워 반대했다. 

공권력과 특권을 이용해 시장에서 폭리를 취하고 이를 성과로 포장하고, 이에 대해 실제 보상이 이뤄지면 공공기관은 공공성을 상실하기 쉽다. 공공성을 상실한 공공기관은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면 그 기관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국책은행은 국가 전체 이익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산은은 재정을 벌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경제와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산은이 재무구조나 수익성을 염려했다면, 지난 5년간 한국전력공사(사장 정승일)부터 챙겼어야 한다. 한전은 올해 약 30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시장은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5조8000여억원의 적자를 냈다. 산은은 한전 지분 32.9%를 가진 최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지난 정부에서 한전 적자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국책은행에 대해 '이익의 기회가 있는데 취하지 않으면 배임'이라는 협박은 온당치 않다. 결론적으로 대한항공 CB의 주식전환은 산은과 해진공의 HMM CB전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민경제와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는 새정부의 정책비전인 '공정과 상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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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 2022-06-22 06:33:23
포탈 1면에 지속적으로 띄워주세요~

김명진 2022-06-17 00:06:10
구구절절 옳은말씀 감사합니다

신샘 2022-06-16 21:45:07
산업은행의 뻘짓으로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네요. 다른해운사들은 제때 투자하고 올바른 곳에 자본을 투입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데 hmm이 산은손에 있다보니 투자도 제대로 못하고 자본을 산은에 저금리로 예치만 하고있으니 어마어마한 손실이 아닐 수 없네요. 산은 이동걸은 꼭 주식으로 전환했어야 했나요.. 결과론적으로 봤을때 아무 실익도 없고 오히려 매각실패만 불러왔네요.

서무홍 2022-06-16 20:17:16
응원합니다
지당하신 말씀만 적어놓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이상국 2022-06-16 17:33:52
늘 응원합니다. 우리 시대의 표상이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