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meets DESIGN] 하이테크로 알뜰한 소비자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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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eets DESIGN] 하이테크로 알뜰한 소비자되기
  • 박진아 IT디자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0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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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MIT공대 연구진이 개발한 무마찰 리퀴글라이드 (LiquiGlide) 기술
점성 액상 내용물을 용기 표면에 빨리 흐르게 유도해 위생용품, 식료품, 화장품 절약 유도
재활용 가능한 PET 소재에 '연잎 효과' 원리 응용

짜쓰는 튜브포장 치약과 화장품은 사용하기 편하고 위생적이지만 내용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압착해 내려면 손과 팔에 적잖은 피로감을 준다. 대체 포장방식인 펌프식 포장법은 내용물 보존력이 좋고 고급스러워 보여 화장품과 위생용품에 많이 사용되지만 제조가격이 더 비싸고 내용물의 약 20% 가량이 다 쓰이지 못하고 용기 속에 남은채로 버려지기 때문에 돈낭비와 높은 폐기율이 문제점으로 꼽혀왔다.

Photo: Jung Ho Park. Source: Unsplash
Photo: Jung Ho Park. Image: Unsplash

병용기에 포장된 가공식료품류도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양념소스 3총사 - 케첩, 겨자, 마요네즈 - 는 완전소비되지 못하고 내용물의 50%가 버려지는 폐기율 높기로 악명높은 품목들이다. 하인츠(H.J. Heinz) 사에 따르면, 이 회사에서 매년 생산되는 케첩 110억 통 가운데 한해 평균 2~3억 통 분량에 준하는 내용물이 고스란히 버려진다고 한다(자료: Heinz.com). 우리나라 식사상에서 흔히 오르는 고추장이나 양념장 같은 장(醬)류나 겨자, 와사비, 샐러드 소스처럼 점성있는 소스와 조미료류도 사정은 유사할 것으로 짐작된다.

목병에 막힌 유리병 속 케첩을 따르기 위해 세게 흔들거나 밑바닥을 때리다가, 혹은 공기로 가득찬 플라스틱 겨자 튜브를 눌러짜다가 폭발하듯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내용물로 옷과 식탁이 더럽혀져 당황했던 경험들은 누구나 있다. 그런가하면 병 용기 보다 사용이 편한 튜브 용기에도 문제는 있다. 특히 금속 알루미늄 튜브는 내용물을 짜내다가 용기 파열로 내용물이 한데로 삐져나와 불편할 수 있고, 플라스틱제 튜브 용기는 견고하고 사용감이 부드럽지만 폐기되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미국 생활소비용품 제조업체 콜게이트 팜올리브(Colgate-Palmolive, CL) 사는 4월 말부터 '엘릭시어(Elixir)'라는 신제품 치약 브랜드를 유럽(영국) 시장에 출시하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하게 치약을 짜쓴 후 버릴 수 있는 재활용가능한 치약 용기를 소개했다. 미 MIT공대 소속 바라나시 연구소가 개발한 리퀴글라이드 공법을 제공하고 스위스의 산업디자이너 이브 베하르(Yves Béhar)가 패키징 디자인을 맡았다.

리퀴글라이드(LiquiGlide) 기술은 이미 10년 전인 2012년, MIT대 연구진이 잔여물 한 방울 남김 없이 내용물을 배출할 수 있는 케첩 용기로 제작해 공개한 바 있다. 그 후로 크리파 바라나시와 데이브 스미스 교수가 이끄는 바라나시 연구소는 1,350만 달러를 펀딩받아 상용화 연구개발을 해왔다.

리퀴글라이드 코팅 기술. © Copyright, LiquiGlide Inc.
리퀴글라이드 코팅 기술.
© LiquiGlide Inc.

명칭이 시사하듯 리퀴글라이드 기술은 표면화학(surface chemistry)분자간력을 결합한 혁신적 코팅 기법이다. 1) 용기 내면에 스폰지처럼 구멍이 숭숭난 초미세 균일패턴을 코팅한 후 2) 그 위에 액체저항 방수액을 스프레이로 분사・마감해 표면 상 균열이나 틈을 메꾼다. 이렇게 제로 마찰 처리된 매끈한 표면 위를 흐르는 끈적한 내용물(위 이미지 예시: 케첩, 치약, 로션 등)은 마치 이파리 위로 또르르 흐르는 물방울처럼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내리게 된다. 실제로 리퀴글라이드 코팅 기술은 연잎 위로 떨어진 물방울이 공모양을 유지하며 이파리를 타고 굴러내리는 원리에서 착상됐다고 한다.

콜게이트 팜올리브 사의 엘릭시어 치약의 미끌미끌한 용기는 특히 쓰레기 재활용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은 유럽 시장 소비자들에게 호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까지 시판되는 기존 튜브형 치약제품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포장 속에 잔류하는 내용물 을 완전제거할 수 없어 재활용이 어려웠다. 또 치약 튜브는 겉 플라스틱 라미네이트 포장 안쪽에 알루미늄 박막을 밀접착시킨 혼합재여서 분리배출과 재활용이 불가능해 일반쓰레기로 분류되어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에서 처리돼왔다. 반면 리퀴글라이드 기술 치약 튜브는 재활용가능한 무색 PET 플라스틱(생수병과 동일한 소재)을 사용한다.

Photo: Charisse Kenion. Source: Unsplash
20세기 물적 풍요와 대량소비 문화의 심볼인 소스병 패키징 디자인은 기억 속 노스탤지어가 되어 자취를 감춰갈 것인가? Photo: Charisse Kenion. Source: Unsplash

4월 말 영국 시장에서 첫 출시된 엘릭시어 치약의 소비자 가격은 영국화 11.99 파운드(우리돈 약 1만 9천 원, 용량 80ml)으로 기존 치약제품들 보다 비싸다. 과연 소비자들이 환경과 쓰레기 재활용을 위해 리퀴글라이드 포장재에 담긴 생활소비재에 웃돈을 지불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기존 포장재에 담긴 내용물의 서서히 움직이는 모양과 습성에 시각적으로 익숙해 있는 소비자들에게 투명 용기 속에서 내용물이 마찰없이 미끌려 나오는 비주얼은 낯설고 기괴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화장품업체, 가공식음료 기업, 바이오메디컬 부문은 장기적으로 이 기술이 생산공정의 친환경성, 자원효율성, 비용절감 등 문제를 해결해줄 경영 솔루션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차 있다.
 

박진아 IT디자인 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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