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한일 간 외교와 무역 갈등이 불거지자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브랜드와 상품 구매 반대 운동에 동참했다. ‘보이콧 재팬’ 운동 끝에 일제 상품 매출이 하락하고 대형 유통매장 폐점과 한국 시장 퇴출이 이어졌다. 정치가 주도된 소비자 운동에서 발동된 이 집단적 ‘의식적인 소비’ 행위는 유통과 소매 비즈니스 매출을 가를 만큼 위력이 막강할 수 있음을 보여준 비즈니스 사례다.
요즘 소비자들은 정열적이다. 소비가 사회 개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며 선한 의도에서 발로한 소비행위가 인류를 구하고 악당을 처벌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노 재팬 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현대인들은 개인의 생각과 정치적 의사를 피력하는 표현 수단, 더 나아가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 겸 무기로써 구매 파워를 활용한다. 역으로 정부나 기업은 목적과 동기에 따라 소비자들의 집단 무의식과 욕망을 의도된 소비 행위로 유도하고 조장할 수도 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소비란 자원을 사용하고 취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지난 반 여 세기 지속된 후기 산업사회 자본주의는 인간의 세상만사를 상품화(commodify)시켜 돈만 주면 편리하게 취할 수 있는 소비주의(consumerism) 체제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지나친 믈적 풍요와 편의도 후유증은 있다. 현대인은 풍요 속에서도 웬지모를 영혼의 공허, 목적상실, 권태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한동안 장려되던 사회적 기업 창업과 기부 문화에 대한 열기도 최근 몇 년 사이 시들해졌다.
소비자들은 다시 상품 및 서비스 시장으로 눈을 돌려 보다 더 만족스럽고 충만을 주는 쇼핑과 소비 경험을 찾는다. 그리고 이윤 추구에만 눈독들일 것이 아니라 선의롭고 생에 의미를 듬뿍 안겨줄 수 있는 대안적 상품과 서비스를 기업들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최근 마켓에는 진열대 앞에 선채 제품 포장 뒷면 원료 및 성분표시를 확인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기초 청결용품이나 화장품을 구입하기 전 성분표를 꼼꼼히 살피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제품 원료가 어디서 왔는지, 친환경 원료인지, 무공해 안전 제조공정과 노동자 복지를 고려했는지, 생태계 동식물에 피해를 주는지 같은 제품 배경 스토리(background story)를 따진 후 구매 결정을 하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이른바 ‘의식적 소비자’들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무수한 분량의 기업 및 제품 정보를 손 가락 끝에서 모두 접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소비자들은 자기가 직접 제품을 사냥하고 배경 정보를 이해하고 구매 결정을 내려 구입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의식적 소비’로 여긴다.
소비자는 이 구매 여정(purchase journey)을 통해서 자기정체성을 재학인하고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 글로벌 마케팅 연구소 DAC가 2018년 연말 발표한 2019년 트렌드 예측 리포트에 따르면, 2019년은 그같은 ‘컨셔스 소비자(Conscious Consumer)’ 또는 깨어있는 소비자가 급부상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달리 보면 그같은 새 소비 행동주의는 선택에 못지 않게 제약도 많은 현실 속의 대중이 행사할 수 있는 저항과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예컨대, 현재 북미 최대 소비자 연령대인 밀레니얼 세대는 나날이 환경과 보건 수준이 악화돼가고 범죄와 폭력이 증가한다고 생각하며 척박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기력을 느낀다고 대답했다(자료: CCSIndex, 2017년). 미국 소비자중 60% 이상은 기업이 정치사회적 쟁점이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길 기대하며 공감하는 ‘착하고 투명한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응답했다(자료: 셸튼그룹, 2018년).
소비자들은 저성장 경제, 고용악화, 환경오염, 범죄 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사회문제를 기업이 해소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최근 전세계 마케팅 조사업체나 시장분석 연구소들은 대체로 ‘친환경 제품, 재활용됐거나 자원절약형 제품, 이색적인 고급 프리미엄 제품, 동물보호와 복지를 고려한 비건주의나 플렉시테리언주의가 중장기적으로 주류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 내다본다.
소비자 세대 구성이 비즈니스 매출로 직결되는 만큼 기업들은 밀레니얼과 Z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심리 세계를 연구하는데 한창이다. 모바일 인터넷 기기와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이 두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테크를 통한 솔루션을 모색한다. 예를 들어 독일 소비자 연구소 SYZYGY의 2019년 소비자 심리 리포트에 따르면 독일시장 소비심리는 매년 5%씩 위축되는 추세며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 인구의 25%가 불안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법을 테크에 기반한 한결 세련된 디지털 서비스에서 찾는다.
유로모니터 마케팅 연구소의 진단에 의하면,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소비자들은 1) 보다 강화된 온라인 보안과 프라이버시, 2) 녹색 및 친환경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브랜드, 그리고 3) 헬스, 정신 건강, 수면, 약물과 금연 관리, 연애와 사교, 자가건강진단에 이르는 웰빙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관리해주는 커넥티트 디지털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같은 소비자 요구에 맞춰 비즈니스는 테크와 손잡고 AR/VR 기술, 보안 기술, AI 개인음성비서, 빅데이터 기술과 심리학이 융합된 ‘오토메이션 사회’로의 행진은 더 빨라질 것이다.
박진아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