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후] 은행권 채용비리 3년, 용두사미와 지지부진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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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후] 은행권 채용비리 3년, 용두사미와 지지부진의 결정판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0.1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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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 시중은행 연루된 고위층 전방위적 청탁···채용담당자가 "애쓴다 애써"
- 전국민적 공분 사태에도 3년간 조치는 지지부진···판결 기다리며 흐지부지

 

"대한민국이 이래가지고 청년들에게 '희망 가져라' '꿈 가져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얘기할 자격 있습니까?"

3년 전, 그동안 쉬쉬 감춰왔던 '현대판 음서제', 은행권 채용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중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금융감독원에 2016년 우리은행 신입 행원 공채 과정에서 벌어진 채용비리 상황을 질타하고 수사의뢰를 촉구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는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이후에도 특혜 당사자들은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하급심 재판이 진행 중인 곳도 있다. 


◆ 그날

"일단 서류 통과는 해드려야..."

2017년 10월. 검찰은 1년여 수사 끝에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부산은행, 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밝혀내고 12명을 구속기소, 26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후속 관련 제보가 이어지며 뒤늦게 이름을 올렸다. 2017년 말 금융감독원은 두 차례에 걸쳐 채용비리와 관련한 은행권 전수조사를 벌였는데, 여기선 혐의가 포착되지 않았다. 이듬해 2월부터 운영한 채용비리 신고센터에 관련 제보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뀐 것.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지속된 경기불황으로 청년 실업은 증가하고 있으며, 정권은 일자리 창출을 국정과제의 맨 앞에 가져다 놓았던 즈음이다. 그동안 막연히 짐작만 하던 '그들만의 리그' 참여자들이 벌인 천태만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민심은 들끓었다.

은행들은 ▲서류전형에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합격시키거나 ▲필기·면접전형에서 점수를 조작하거나 ▲특혜 대상자의 감점사유를 삭제하거나 ▲이들의 합격을 위해 공지되지 않았던 전형 조건을 신설하거나 조건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이같은 청탁은 한국 사회의 유력인사나 고위층들을 통해 이뤄졌다. 은행의 인사담당자들은 청탁이 들어온 대상자들을 별도 리스트로 관리하며 채용 과정의 상황을 수시로 윗선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청탁이 들어오면 최소한 서류 통과는 보장한다는 게 '룰'이었다는 후문.

채용비리 문제가 가장 먼저 터진 우리은행은 백창훈 전 국정원 처장의 딸, 이상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의 조카 등에게 '편의'를 봐줬다. 이 사건으로 우리은행은 이광구 전 행장을 포함해 6명이 기소됐다. 이 전 행장은 논란이 증폭되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 전 행장은 2019년 1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기소된 이가 가장 많은 부산은행의 경우 지방은행의 특성을 살려 지역중심의 청탁을 골고루 처리했다. 부산시금고 유치와 밀접한 송모 전 부산시 세정담당관의 아들, 경남발전연구원장이었던 조문환 전 새누리당 의원의 딸 등이 부정채용자로 지목됐다. 이로 인해 성세환 전 행장 등 7명이 불구속 기소, 3명이 구속 기소됐다.

대구은행도 만만치 않다. 박인규 전 DGB금융회장 겸 대구은행장은 업무방해(채용비리), 증거인멸 교사, 횡령·배임(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박 전 행장은 금감원이 전수조사에 나서자 인사부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교체하고 관련 서류를 파기하라고 지시한 혐의까지 나와 충격을 안겼다.

하나은행은 함영주 은행장을 비롯해 7명이 기소됐다. 하나금융 2인자로 꼽히던 함 행장에게는 부담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검찰의 칼날을 피하며 다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KB국민은행은 하나은행과 함께 신입행원 채용 과정에서 남성 합격자 비율을 높이는 조작을 한 혐의가 드러나며 '남녀차별' 은행이란 불명예를 떠안았다. 광주은행도 부행장이 신입 채용에 지원한 본인의 딸 면접에 직접 들어가 고득점을 부여하는 등의 추태를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 그후

일자리 양극화 고착···전근대성까지 소혼

한국사회 곳곳에서 '방귀 깨나 뀌는' 유력인사들은 왜 하필 은행권에 집중적으로 채용 청탁을 추진한 걸까? 삼척동자도 아는 것처럼 은행이 선망 받는 일자리가 됐기 때문이다. 

경계를 나누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임금수준이다. 임금을 '불평등 지표'로 볼 때 한국의 노동시장은 양극화가 심하다. 한국은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 역시 마찬가지 순위.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간 격차 모두 상태가 안 좋다.  

현재 은행이란 직장은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의 3박자를 갖춘 곳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위해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용역보고서에선 은행처럼 3박자 조건을 갖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고용 인원의 6.7%다. 이들과 반대편 3박자인 '중소기업·비정규직·무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평균임금이 3배 차이가 난다.

특히 은행은 가장 대표적인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 사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은행권은 국내 다양한 업종 중 가장 유서 깊은,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노조가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은행 노조들은 산별노조인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에 소속돼 있다. 산별노조의 성격과 기능의 다양한 요소 중 산업단위 사용자단체와 '교섭' 기능이 가장 활성화돼 있고,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선망 받는 일자리엔 인재가 몰리는 법. 은행권의 채용에는 매년 창사 이래 최고 스펙을 자랑하는 이들이 바늘 구멍을 뚫기 위해 앞다퉈 몰리고 있다. 각 은행이 구체적 수치는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100:1 수준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를 두고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사실 이런 수식어는 이제 구태의연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그만큼 한국사회 곳곳에서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의 '뒷배 봐주기' 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 사진 왼쪽부터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 사진 왼쪽부터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 그리고, 앞으로

드러내면 뭐하나, 상태는 지지부진

3년 전 불거졌던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법처리와 관련해선 상당수가 여전히 하급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났지만 청탁 특혜 대상자들은 지금도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국민적인 공분을 사게 만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자의 처벌이나 재발방지, 사후 조치 등에 관한 내용은 미진하기 그지 없다.

애당초 '관련자'가 누구인지조차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다음은 2018년 6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금융노조가 발표한 입장문의 일부다.

 “한 기업의 인사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신규채용 문제다. 남녀 성비를 미리 결정해놓고 점수를 조작해가며 성차별 채용을 했는데도 은행장과 지주회장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실제 업무를 수행한 실무자들만을 향했을 뿐 최종 책임자인 CEO들에게는 눈을 감았다. 특히 이번 수사 결과에 대해 1심 재판 결과를 보고 징계를 결정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금융당국은 고객과 국민의 신뢰를 허문 자들에 대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은행들이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정채용자들 중 상당 수가 여전히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냈다.

우리은행은 29명 중 19명이, 대구은행은 24명 중 17명이, 광주은행은 5명 전원이 여전히 은행에 다니고 있다. 하급심 재판 중인 신한은행에선 26명 중 18명이 근무 중이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의원실의 요구에도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재차 논란이 되자 우리은행은 부랴부랴 채용비리 부정입사자들의 채용취소와 관련한 법률적 검토 절차에 착수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던 2018년 6월 은행연합회는 은행권 공동 TF를 구성해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6월 18일 이사회에서 의결돼 즉시 시행된 바 있다.

이 규준의 제5장 '부정한 채용청탁의 방지' 중 제31조 '부정합격자의 처리 규정'에 따르면, "지원자가 부정한 채용청탁을 통해 합격한 사실이 확인된 경우 은행은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채용 취소 법률 검토'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이들 부정입사자들의 채용취소가 가능하려면 우리은행의 인사규정에 이와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들 당사자가 그동안 수년에 걸쳐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은행의 업무지시에 따라 근로해 왔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왔던 점 등을 들어 '해고'로 주장하며 우리은행측의 '부당해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가능성도 있다"며 "확실한 것은 우리은행 내 인사규정이 어떤지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정합격자의 처리와 관련한 내용을 포함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안이 마련된 게 2018년 6월인데, 어째서 우리은행은 아직까지 법률검토를 하고 있는 것일까? 또 채용비리에 연루됐던 대구은행의 반응 역시 미진하기 그지없다. 지난 10월 15일에서야 법적검토에 착수해 외부 법무법인의 법률의견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음서'는 고려와 조선시대 집안 배경으로 관직에 나가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 때에 와선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이른바 청요직(淸要職)에는 음서 출신들이 오를 수 없게 하는 등 나름의 제약을 가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런 제도 자체가 전근대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와 산업은 그동안 놀라운 압축 성장을 보이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중세에도 지적되던 폐단이 지금까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더욱이 정보 전달의 양과 질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벽한 세상에서 그 해악을 가늠할 수 없는 '그들만을 위한' 일이 벌어졌다면? 은행권 채용 비리를 착잡하게 바라보는 말 없는 백성들의 절망 가득한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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