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환경·안전은 비용 아닌 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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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환경·안전은 비용 아닌 투자이다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6.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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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산공단 내 LG화학 촉매센터에서 불이나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19일 오후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산공단 내 LG화학 촉매센터에서 불이나 소방 관계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원: “사장님, 오늘 공사하는 곳에 안전펜스 설치, 2인조 작업, 안전장비 착용 등으로 400만 원 정도 더 들어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사장: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

직원: “사고가 나지 않으면 다행인데 혹시 모르는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사장: “안전펜스 없이도 그동안 작업 잘해 왔잖아. 뭐가 문제야? 둘이 붙여놓으면 설렁설렁 이야기나 하면서 일은 안 할 거야. 혼자서도 일 잘하는 사람 많잖아, 안전장비는 뭐하러? 위험한 작업도 아닌데. 400만 원이 적은 돈이야!”

직원의 주문은 철저히 무시됐다. 사장에게는 안전에 들어가는 400만 원이 비용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업은 안전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채 시작됐다. 오후에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안전펜스가 설치되지 않고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혼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경찰 등 관련 기관에서 해당 업체를 조사했다. 불법 작업 지시, 안전조치 미이행 등 불법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사장은 불구속으로 기소됐다. 회사는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수억 원을 지불해야 했다.

400만 원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봤다면 이 회사는 몇억 원이 남는 장사를 했을 것이다. 400만 원을 비용으로 봤기 때문에 해당 회사는 수 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비단 이런 예는 우리나라 조그마한 기업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환경과 안전에 투자하는 것을 철저하게 비용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비용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해당 항목은 항상 ‘패싱(Passing)’되기 일쑤다. ‘우리 회사에 사고는 나지 않는다’는 미신적 고집만 내세운다.

충남 서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VLSFO 공정 전경. [사진 현대오일뱅크]<br>
지난 4월 7일 대산공단 현대오일뱅크에서 불완전 연소로 인한 가스와 심한 악취가 발생해 근처 마을 주민 100여 명이 고통을 호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충남 서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VLSFO 공정 전경.

지난해 5월 서산시 대산공단에서 한화토탈 유증기 유출 사고 이후 롯데케미칼, LG화학, 현대오일뱅크 등에서 폭발, 화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국내 4개 정유·화학 대기업은 사고 이후 안전, 환경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해당 항목을 분석해 본 결과 안전·환경 대책이 사실상 '맹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4개사가 안전·환경 등 분야에 투입하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8500여억 원을 녹색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낡은 시설 개선과 교체, 시설 점검 등 석유화학 공정 특성상 주기적으로 실행해야만 하는 사항이 대부분이었다. 새로울 게 없다는 거다.

사고 이후 환경과 안전분야에 신규로 투자하는 게 아니라 포장만 바꾼 환경·안전 투자라는 지적이 나왔다. ‘꼼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산공단에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문제는 또 있다. 녹색경제신문이 입수한 ‘대산 4사 안전·환경 투자 합동검증위원회 검증자료’는 전문가 분석이 필요한 자료가 많았다. 합동검증위원회에서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할 만한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살펴볼 대목이다.

실제 해당 내역을 검토하는 합동검증위원회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포함돼 있지 않다 보니 이런 사실을 분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위원회에 속한 위원 A 씨는 “이번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새롭게 더 투자하는 내용이 약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며 “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상식이다. 사전에 사고에 대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사후약방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처방으론 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 한화토탈, 롯데케미칼, LG화학, 현대오일뱅크에 되묻고 싶다. 환경·안전 분야는 비용 아닌 투자라는 것을.

지난 4일 새벽 3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4일 새벽 3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했다. [사진=연합뉴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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