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文대통령과 재벌, 그리고 '비언어적 메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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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文대통령과 재벌, 그리고 '비언어적 메시지'들
  • 백성요 기자
  • 승인 2017.07.29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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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상징 담은 메뉴로 메세지 전달, 소탈하지만 빈틈 없어

청와대가 준비한 재계 총수들과의 간담회 메뉴가 화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계와의 격식없는 대화를 강조하며 일명 '호프 미팅'을 주선했다. 재킷을 벗고 맥주를 마시며 기탄없이 의견을 나눠 보자는 취지다. 

대화는 기탄없을지 몰라도 회사로 복귀한 총수들은 대책 마련에 머리가 아플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들에게 던진 '비언어적 상징'은 상당히 무거웠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왕회장'이 공개적으로 내 준 '숙제'가 상당히 어렵다. 

'숙제'의 의미도 알고 '답'도 감이 오지만 막상 하려니 부담스럽다. 

이 날 맥주를 따른 것은 임종석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서빙에 나섰다. 대한민국 경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네 명이 재계 총수들을 접대했다.  

재계 대표들에게 접대된 맥주는 국내 최초의 수제맥주 기업 세븐브로이의 '강서'와 '달서'였다. 세븐브로이는 수제맥주 제조업체 중 처음으로 일반 맥주 제조면허를 취득했다. 

안주는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가 준비했다. 임지호 셰프는 40여년간 전국 각지를 떠돌며 식재료를 연구한 세계적인 요리연구가로 유명하다. 

그가 27일 내놓은 안주는 무 카나페, 얇게 썬 소고기 요리, 시금치와 치즈를 이용한 요리였다.  오늘(28일)은 황태절임과 견과류, 수박과 치즈 메뉴를 준비한다. 

청와대는 재계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면서도 강력한 상징을 기획했다. 비정규직이 없는 중소기업의 수제 맥주, 사회의 갈등과 폐단을 씻어내는 것을 상징하는 무 카나페, 힘들어도 기운을 잃지 말자는 소고기,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도 조화가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의미의 수박과 치즈까지. 

또 황태절임을 메뉴로 선택한 것은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만들어 진다는 황태처럼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하나의 결과를 내자는 뜻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재계 순위에서는 한참 밀리지만 이번 간담회에 특별초청된 '착한기업' 오뚜기의 함영준 회장과 잔을 부딪히는 14대 대기업들의 총수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을 터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소탈해 보이면서도 빈틈이 없다. 지난 수석회의에는 청주지역의 낙과를 구입해 만든 화채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외유를 떠난 도의원들은 해당 뉴스를 보고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걸로 보인다. 

지난 5월 가진 여야 5당 원내 회동 메뉴는 비빕밥이었다. 의석수 과반을 넘긴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화합과 협치를 상징한다. 

재벌들의 입장에서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런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상징적 메세지가 진심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잘 기획된 쇼라면 오히려 부담이 덜할텐데, 문 대통령과 현재 청와대의 인사들에게는 이런 일이 매우 익숙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전 정권에서도 만찬 메뉴나 자리를 통한 메세지 전달은 늘 있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농촌에서 막걸리를 마셨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점심 메뉴로 칼국수를 선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청와대 인근의 삼계탕집을 단골집으로 삼았다. 

하지만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는 느낌만 줬을 뿐, 문 대통령처럼 상징성 있는 메세지를 의미있게 전달하진 못했다. 업체부터 메뉴 선정에 들인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문 정부 출범과 함께 이어진 이런 행보는 자연스레 이전 정부와 비교된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의 주요 정치 행사 중 하나인 만찬 회동이 자체가 극히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이 여러명과 하는 식사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총수들과의 만남 자리도 독대를 선호했다. 

그나마 가장 화제가 됐던 만찬 행사는 초호화 메뉴로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이정현 전 청와대 대변인과의 만찬 메뉴는 송로버섯, 캐비어, 샥스핀 등이었다. 이런 만찬이 주는 메세지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고위 공직자의 행태를 상징적으로 대변할 뿐이다. 

이런 차이는 대통령과 만나는 총수들의 대화 주제를 바꿨다. 

박 전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 간 대화 주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원', '아쉬운 면세점 사업자 탈락, '측근이 추진하는 재단의 자금 지원' 등이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어 실제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수첩의 메모와 증언을 토대로 재판정에서 유무죄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 유일한 해명 방법이다. 

문 대통령과 맥주를 함께한 총수들 역시 기업의 애로를 전달했다. 중국의 무역 보복으로 인한 기업 경영의 어려움, 4차 산업 시대를 맞아 점차 중요해 지고 있는 2차전지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입지 등이 간담회 주제로 다뤄졌다. 그리고 대화의 내용이 공개됐다. 

여러가지 상징을 통해 문 대통령이 기업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여태까지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후보시절부터 지금까지 강조해 온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소홀치 말자는 것과, 이를 위해 정부는 얼마든지 기업과 상의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국내 굴지 기업의 대표 경영인들은 그 메세지를 온전히 전달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왕회장'이 내준 '숙제'도 잘 풀었으니 말이다. 

 

 

 

백성요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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