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의 유럽이야기] 이유 있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초저 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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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유럽이야기] 이유 있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초저 출산율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 승인 2023.11.0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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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집에 얹혀사는 성인 자녀 내쫓을 수 있는 권리 확인
- 젊은 세대 고용 불안정·고가 생활비로 위축

최근 이탈리아의 한 엄마가 한 집에 동거하는 두 아들을 내쫓아달라며 지방 법원에 항소해 승소했다는 소식이 유럽 여러 나라 언론들의 사회면을 장식하며 화재를 모으고 있다.

북부 이탈리아 도시 파비아에 사는 75세의 여성은 부모의 집에 눌러사는 장성한 두 아들(각각 42세와 40세)이 독립하도록 해달라며 파비아 지방 법원에 법적 호소했다.

어머니의 진술에 따르면, 두 아들은 직장생활을 통해 각자 수입을 벌지만 요리, 청소, 옷 세탁 등 어머니가 해 주는 가사 서비스를 받아 살면서도 가사 비용을 보태거거나 가사일 거들기도 안하는 ‘기생충’ 생활을 했다고 한다. 지친 엄마는 여러차례 두 아들이 독립해주길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자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한다.

이 소송건을 담당한 시모나 카테르비 판사는 노모의 애로에 공감하고 40대의 두 아들에게 오는 12월 18일까지 노모의 집에서 나가라는 퇴거명령을 내렸다. 경제적 독립 가능 여부를 불문하고 부모는 성년 자녀의 거처와 경제적 지원을 떠맡아야할 의무가 없다는 친권법에 따른 판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이탈리아에서 18~34세 미혼 젊은이들이 부모님 집에서 동거하는 일은 매우 흔하다. 특히, 이탈리아의 경우, 젊은이들은 통상 결혼을 계기로 새 가정을 꾸려 독립하면 성인 통과의례로써 부모가 살던 집을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가족 유대가 끈끈한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부모세대 고령인구의 장수, 고지가와 고물가로 인한 비싼 생활비, 청년 실업자 증가 등 팍팍한 경제 환경의 장기화로 한 지붕 아래서 3~4세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은 더 많아졌다.

2007년, 한 이탈리아 정치가는 독립하지 않고 부모 집에 머물며 공짜로 숙식을 해결하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젊은이들을 가리켜서 다 큰 어른 애들이라는 뜻의 ‘밤보쵸니(bamboccioni)’라는 신조어를 처음 썼다.

이듬해 2008년, 밤보쵸니 발언에 대한 반박으로써 『천 유로 세대(Generazione mille euro)』라는 소설이 코미디 영화(2009년 개봉)로 만들어지며 일명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신드롬’을 일으켰다. 고등교육을 받고 대도시 밀라노에서 투잡을 뛰며 살지만 월 수입 940 유로(우리 돈 130만 원 가량)로 룸메이트와 숙소를 공유하며 불안정한 생계와 연애 사이를 저글링하며 살아가는 30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의 경제적 사정은 더 악화됐다. 

2019년 통계에서 이탈리아 대학생 절반과 직장인들의 40%가 독립할 집 찾기를 아예 포기한 채 부모 집에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 수치에 따르면, 18~34세 성인의 66.4%가 부모님과 동거한다고 해 독립 못한 젊은이들은 더 많아졌다(자료: Eurostat).

남성(72.6%)이 여성(66%) 보다 더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유독 성인 젊은 남성들이 독립하지 않고 일명 ‘엄마 호텔(호텔 마마, Hotel Mama)’에서 공짜로 먹고 자는 편을 택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타 유럽 남성들에 비해 이탈리아 남성들은 경제적 독립을 확보해야 결혼, 출산 및 자녀 양육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의무감이 더 많다. 이탈리아 남녀의 결혼관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기혼 남성들이 누릴 수 있는 편의와 내조 — 가령, 요리, 가사 정리, 세탁·다림질된 옷, 가족의 정서적 지원 등 — 가 필요한 젊은 남성들은 혼인할 때까지 부모님(특히 모친)과 사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최근인 9월 25일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의 인구통계학자 겸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Applied Systems Analysis, 축약 IIASA) 소장인 볼프강 루츠 교수(Dr. Wolfgang Lutz)는 현재 세계 최저 신생아 출생율(0.78)을 기록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한국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출산률의 원인으로 1) 전통적 가족 제도와 역할에 대한 부담이 큰 문화권이라는 점과 2) 여성의 교육수준과 사회활동 증가로 결혼·육아와 커리어 사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여성들이 후자를 선택하도록 내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고질적 지가 상승, 고물가, 고용시장 불안, 저임금이라는 현대적 경제 악조건 - 제도적 환경 - 과 전통에 뿌리 둔 결혼과 출산에 대한 구시대식 의무감과 역할 분담 - 개인과 사회의 사고방식 개혁 - 에 대한 고정관념이 재편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와 한국의 젊은이들은 앞으로도 결혼과 출산을 꿈꾸기 어려울 것이다.

법원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녀를 집에서 내쫓은 야박한 이 이탈리아 노모의 바램은 결국 두 아들이 지금이라도 노모를 대신해 줄 아내를 만나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것이지 않았을까?

Photo: Dakota Corbin=Unsplash
Photo: Dakota Corbin=Unsplash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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