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의 유럽 이야기] 2022년을 장식한 ‘올해의 단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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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유럽 이야기] 2022년을 장식한 ‘올해의 단어’는?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 승인 2022.12.28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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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테이터로 본 유럽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말말
- 코로나19 후 대세 분위기는 불안, 가스라이팅, 불확실성

영미권에서 출판되는 세계적 권위의 영어 사전들 — 옥스퍼드 잉글리시 딕셔너리(Oxford English Dictionary), 콜린스 잉글리시 딕셔너리(Collins English Dictionary), 케임브리지 잉글리시 딕셔너리(Cambridge English Dictionary) 등 — 은 매년 연말 한 해를 마감하며 그 해 가장 많이 대중매체에 오르내린 유행어(buzzword), 즉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 이하 WOTY)’를 발표한다.

언어는 세상사, 문화, 트렌드의 변화와 함께 변천한다. 이들 영어사전 편찬 학자들은 매년에 한 번 인터넷 사용자들이 온라인 사전에 검색한 단어들의 빈도수를 종합 분석하고 추가 여론 조사를 거친 후 톱10 WOTY를 선정한다.

콜린스 영어 사전이 선정한 '2022년 올해의 단어' 10선 중. 2022년을 집약한 단어 '퍼마크라이시스(Permacrisis)'는 한 가지 위기가 지나가면 다른 위기가 오는 끊이지 않는 영원한 불안정과 위기 상태를 뜻한다. '스플루팅(splutting)'은 사지를 퍼뜨리고 배를 깔고 지쳐 눕는 자세로 퍼마크라이시스 상태에 지쳐버린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반영한다. Image: Collins 2022.
콜린스 영어 사전이 선정한 '2022년 올해의 단어' 10선 중. 2022년을 집약한 단어 '퍼마크라이시스(Permacrisis)'는 한 가지 위기가 지나가면 다른 위기가 오는 끊이지 않는 영원한 불안정과 위기 상태를 뜻한다. '스플루팅(splooting)'은 사지를 퍼뜨리고 배를 깔고 지쳐 눕는 자세로 퍼마크라이시스 상태에 지쳐버린 현대인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일축한 단어다. Image: Collins 2022.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 온 2021년 작년 한 해,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은 ‘백신(vaccine)’을, 옥스포드 영어 사전은 백신의 축약어인 ‘백스(vax)’를 그해의 단어로 선정했었다.

그런가 하면, 콜린스 영어 사전은 ‘메타버스’와 ‘NFT’를 선정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창궐을 계기로 봉쇄 조치와 재택근무의 보편화로 되돌이킬 수 없이 광속화된 세상만사의 디지털화를 시사하며 이제까지 컨셉 시험(PoC) 단계에 머물러있던 블록체인 기술 기반 디지털 가상 세계는 예상 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과 전쟁으로 시작된 유럽발(發) 어두운 경제 분위기가 올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까지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영어사전 사이트들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들도 가시지 않는 대중의 좌불안석 불안감, 현재에 대한 불만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심리가 드러나 있다.

콜린스 영어사전은 ‘러시아 침공(Russia’s Invasion)’,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Kyiv)’를 탑2 버즈워드로, 그리고 영국 정치 뉴스를 장악했던 보리스 존슨 전 영국총리의 ‘파티게이트’ 스캔들*과 사퇴 사건을 세 번째 버즈워드로 꼽아 2022년의 시사적 이벤트를 총정리했다.

*파티게이트 스캔들: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총리공관과 정부청사에서 수 십명에서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이는 다수의 파티를 열어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 지침을 어긴 사건.

세계 정상들이 모범적 태도 대신 부패와 전쟁을 부추기는 가운데, 대중들도 열심히 뛰며 일하고픈 의욕이 시들해졌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 등 영국 주요 언론들이 주목해 보도 분석한 바 있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트렌드를 이 사전에 새 단어로 등재시켰다. 

조용한 사직은 엄밀한 의미에서 퇴직은 아니지만 계약 내용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업무 만을 하는 일종의 태업 트렌드로, 직장 내 승진이나 상위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거나 조직에 대한 존중감이 사라진 직원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새로운 일문화다.

인터넷 문화 덕택에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 사이 언어문화적 간격도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은 영국 섬에서 한층 영역을 넓혀 미국의 영어와 문화 진화에도 주목한다. 예컨대, 캠브리지 사전은 2022년 한 해의 단어로 미국 영어에서 유래한 일상어 ‘호머(homer)’를 선정했다. 호머란 미국 야구계에서 홈런을 뜻하는 인싸 구어다. 2022년 봄철에 워들(Wordle)이라는 온라인 낱말맞추기 퍼즐이 미국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동안 사용자들이 이 게임을 하면서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을 많이 이용했음을 입증한 통계적 입증이다.

미국 최고 권위의 영어사전인 메리엄-웹스터는 형용사 ‘지각력 있는(sentient)’을 톱으로 선정해 인공지능 기술의 놀라운 진보 추세를 반영했다. 그 외에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산 후 등장한 ‘오미크론’ 변이종, 러시아 경제 지배층인 ‘올리가르히(oligarch) 과두 집권층’, 영국의 새 국왕 찰스 3세의 아내 카밀라의 칭호인 ‘왕비(queen consort)’를 주목할 만한 단어로 선정됐다.

1944년 개봉 영화 '가스라이팅'의 포스터. Image: PublicDomain
1944년 개봉 영화 '가스라이팅'의 포스터. Image: PublicDomain

또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단어가 2022년 한 해 미국에서 예년 대비 무려 1,740% 많이 검색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이 ‘오정보’ ‘가짜 뉴스’ ‘음모이론’ ‘딥 페이크’ 등 현대 수많은 미디어 채널과 테크놀러지의 홍수 속에서 느끼는 혼란감을 조작적 세뇌와 정서적 학대를 의미하는 가스라이팅이란 단어와 연관시킨 것이라고 메리엄-웹스터 측은 분석했다.

지난 3년간 전 인류를 괴롭힌 코로나19는 신체적 안위 외에도 건전한 자아상과 정신 건강까지 위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란셋(The Lance) 의학저널 등이 보고하듯 지난 3년 간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일반 정신질환 사례 급증은 전세계적인 보건 문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꼽은 ‘고블린 모드(Goblin mode)’도 코로나19 사태와 디지털 시대 사이 혼란과 당황을 금치 못하는 일상 대중의 불안감을 표현한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풀어보면 ‘고블린’은 게으르고 용모 추한 도깨비, ‘모드’는 상태를 뜻한다.

SNS 인플루언서들이 인스타그램과 틱톡 플랫폼을 통해 한껏 멋부리며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사이, 고블린 모드는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나 실직으로 긴 실내 생활을 견디며 ’백신’ 접종 후 ‘정상적 일상’ 복귀를 기다리는 일반 대중들의 나태하고 흉측한 초상을 코믹하게 자조(自嘲)한 표현이다.

‘자기 자신을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한 21세기 인류는 2022년을 정리한 올해의 단어들을 역사의 서랍 속에 가지런힌 넣고 다가올 2023년 새해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Photo: Ellie Burgin=Pexels
Photo: Ellie Burgin=Pexels

필자 박진아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주. 녹색경제신문 유럽주재기자. 월간미술 비엔나 통신원. 미술평론가・디자인칼럼니스트. 경제와 테크 분야 최신 소식과 유럽 동향과 문화를 시사와 인문학적 관점을 엮어 관조해 보겠습니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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