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의 유럽 이야기] 요즘 환경운동가들은 왜 미술품을 공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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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유럽 이야기] 요즘 환경운동가들은 왜 미술품을 공격할까?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 승인 2022.11.1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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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미술작품 업고 대중과 언론 이목 끌기
- 시위 효과와 공감은 글쎄

11월 15일 화요일(오스트리아 빈=현지 시간), ‘마지막 세대(Last Generation)’라는 학생 환경운동 단체 소속 운동가들이 레오폴트 미술관(Leopold Museum) 회화 전시실에 걸린 ‘죽음과 삶(Tod und Leben)’이라는 클림트의 그림에 기름 성분의 검정색 액체를 끼얻은 해프닝 장면이 벌어졌다.

Courtesy: Last Generation=Twitter
Courtesy: Last Generation=Twitter

오스트리아에서 11월 15일은  성 레오폴트의 탄생을 기념하는 가톨릭 기념일이다. 당일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레오폴트 미술관은 성 레오폴트의 날을 기념해 관객 무료입장을 실시하고 있었다.

통상 미술관에 입장하는 관객은 작품 안전을 들어 외투와 가방 등 소지품을 가드로브에 맡기도록 되어있지만, 마지막 세대 환경운동가들은 용케 보온병에 뜨거운 검정색 액체를 담아 셔츠 밑에 숨겨 전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시위자가 클림트의 ‘ 죽음과 삶’ 캔버스를 향해서 검정색 액체를 뿌리고 “석유와 가스 채취는 인류에 대한 죽음의 선고다. 이 사실을 지난 50년 동안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전시장 경비원이 황급히 달려와 이 시위자를 저지한 사이, 그와 동행한 또 다른 시위자는 접착제 바른 손을 그림 표면에 접착시키고 시위 구호를 외쳤다. 미술관 이 모든 광경은 동영상으로 기록돼 곧바로 트위터로 공유됐다.

올 가을 들어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환경 운동가들이 일반 관객 행세를 하고 미술관에 입장해 미술작품을 공격하는 시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환경 운동가들이 펼치는 환경 시위는 미술관에 소장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그림에 음식물이나 오물 등을 뿌리는 이른바 ‘공공 기물 파손(vandalism)’ 전술을 활용한다.

왜 유럽의 환경 시위자들은 손을 접착제로 바르고 미술작품 액자나 전시장 벽에 접착시키는 자해적 시위를 할까? 시위자들은 전시장 경비에 붙잡혀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시위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공공기물 파손 죄로 즉각 체포 후 감금된다. Courtesy: FuturoVegetal
왜 유럽의 환경 시위자들은 손에 접착제를 바르고 미술작품 액자나 전시장 벽에 붙이는 신체자해적 시위를 할까? 전시장 경비에 붙잡혀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시위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공공기물 파손 혐의로 체포 후 감금된다. Courtesy: FuturoVegetal

타임라인 — 2022년 가을철 유럽 젊은이들의 환경 시위

10월 14일, 영국의 환경 시위단체인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의 회원들이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London)에 전시중이던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s)’ 그림 위에 토마토 수프를 뿌리고 손에 접착제를 발라 벽에 붙이고 정부가 환경 문제와 시민들의 생활고를 방만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10월 23일, 마지막 세대의 독일 지부 소속의 학생 운동가들은 포츠담 바르베리니 미술관(Barberini Museum Potsdam)에 전시 중이던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Les Meules)’라는 작품 위에 매시드포테이토를 뿌리고 그림 아래 벽에 시위자의 손을 접착제로 붙이는 시위를 벌였다.

10월 27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시위자들이 미술관에 들어가 그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에 머리를 접착제로 붙이는 일이 발생했다.

11월 5일에는 스페인에서 익스팅션 리벨리온(Extinction Rebellion) 소속 환경 시위자들이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에 들어가 프란체스코 고야의 ‘옷 입은 마야’와 ‘나체의 마야’ 두 작품 액자에 손을 접착제로 붙인채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환경단체들의 시위 전술 전환 — 단식 투쟁에서 공공 기물 훼손으로

작년까지만 해도 마지막 세대 독일 지부 시위자들은 환경문제의 절박성 촉구를 위해 번화가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한층 강도 높은 방법으로 대중과 언론의 이목을 사로잡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환경 시위자들은 유명 미술작품을 매개로 해 격분된 절규와 애절한 간청을 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전환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공공 기물 파손에 의존하는 시위 태도의 변화를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보기도 하지만, 영국의 박물관학 학자인 스테이시 볼드릭(Stacy Boldrick) 교수는 미술품이나 문화유산을 공격하고 손상시키는 행위는 오래전부터 인류 역사 속에서 늘 있어왔던 우상파괴(iconoclasm) 행위 — 특히 종교 갈등, 군사적 점령, 전쟁 시 뒤따르는 현상이라 분석한다.

유럽인들, 미술작품을 볼모로 한 시위 방식을 둘러싼 찬반 논쟁 무성

소셜미디어와 관람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이미지의 위력을 잘 안다. — 하지만 미술품을 훼손하는 게릴라적 전술이 정말 효과 있을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일부 신세대들은 환경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놀라움과 충격을 자아내는 강력 시위 밖에 없다며 이러한 시위 방식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11월 15일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발생한 시위 사건 이후, 국제 100여 화랑 및 미술관들은 합동 성명을 발표하고 미술관을 볼모로 해 문화유산을 위협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을 전 세계 환경 시위단체에 호소했다.

유럽의 정치가 및 문화 분야 전문가들 또한 환경 시위단체들이 미술관 공간을 시위 장소로 이용하늘 것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한다. 미술관 측들은 입장 관객 통제 규제를 강화해야 해 미술관 문턱을 불필요하게 높히고 대중 관객들의 편안한 관람 권리를 침범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까지 환경 시위의 공격 대상이 됐던 미술품들이 직접적인 물리적 훼손을 입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물론 미술품 보존과학자들에 따르면, 미술품은 유리 액자에 보관돼 있어도 간접적으로 화학적 피해를 입는다). 이들 시위자들이 기물 파손 대상으로 선택한 미술관 내 작품들은 모두 유리나 플렉시글라스 속에 보존돼 있던 때문이다.

이 모든 동요와 스캔들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올 가을 유럽의 유명 미술관들을 괴롭히는 환경 시위자들 덕분에 조용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회사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시위자들이 시위용 공격 무기로 선택한 캠벨 수프(Campbell Soup)다.

Courtesy: Just Stop Oil
영국의 저스트 스톱 오일 시위를 계기로 미디어를 통해 캠벨 토마토 수프가 뜻밖의 광고 효과를 얻었다. Courtesy: Just Stop Oil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주. 녹색경제신문 유럽주재기자. 월간미술 비엔나 통신원. 미술평론가・디자인칼럼니스트. 경제와 테크 분야 최신 소식과 유럽 동향과 문화를 시사와 인문학적 관점을 엮어 관조해 보겠습니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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