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의 유럽 이야기] 공영주택을 박물관으로 변신시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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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유럽 이야기] 공영주택을 박물관으로 변신시키는 법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 승인 2022.10.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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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공간을 값진 문화재 공간으로 전환
- 약탈적 부동산업으로부터 기념비 건축 보호 기능

지난 9월 21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마가레테 슈테-리호츠키 첸트룸(Margarete Schütte-Lihotzy Zentrum, 축약 MSL Zentrum)이 개관했다. MSL Zentrum은 슈테-리호츠키라는 20세기 건축가가 살았던 아파트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옛 모습 그대로 재현시키고 일반 방문객에게 전시하는 현장 박물관이다.

Photo © Bettina Frenzel
Photo © Bettina Frenzel

슈테-리호츠키(1987~2000)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건축학도와 디자인 애호가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의미있는 근대 건축가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거리 제국 시절 비엔나서 태어난 그녀는 빈 응용미술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한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건축가라는 점 외에도, 오늘날 모든 가정마다 있는 일체형 붙박이식 주방, 일명 ‘프랑크푸르트 키친’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비엔나 도심 5구역 나슈마르크트(Naschmarkt)라는 재래시장 건너편 프란첸가쎄라는 골목에 자리한 한 작은 아파트에서 여류 건축가 마가레테 슈테-리호츠키는 여생 30년 동안 살았다. 면적 55평방미터, 우리 식으로 하면 고작 15평 남짓한 작은 이 시립 공영 주택에서 그녀는 러시아, 중국, 쿠바 등 공산권 국가와 터키를 오가며  건축 고문, 강의, 집필, 사회운동을 하다 향년 103세로 세상을 떠났다.

슈테-리호츠키가 주방 설계를 맡게 된 때는 건축 공부을 마친 직후 서른살 되던 1926년. 당시 유럽은 거품 경제로 도시인구 증가와 경제호황으로 대도시 건설붐이 한창이던 때. 그녀는 주택부족 해소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립공공주택공사가 추진한 서민용 복지임대아파트 단지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참여 건축가 중 유일하게 여자라는 이유로 부엌 디자인을 담당했지만 부유한 중상층 유복한 가정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적셔본 적 없이 곱게 큰 그녀는 요리의 요 자도 모르던 가사일 문외한이었다. 노년에 한 오스트리아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주부가 아닌 순수한 건축가의 시점에서 프랑크푸르트 주방을 설계했다고 고백하면서 ‘나는 부엌(만)이 아니다((Ich bin keine Küche)’라며 주방 디자이너 만으로 역사에 길이 남기 싫다는 듯 불평 아닌 불평도 남겼다.

‘나는 부엌이 아니다’ -  과거 ‘여자의 자리’ 또는 ‘여자의 작업실’로 불리던 부엌. 정작 근대식 주방을 디자인한 슈테-리호츠키는 요리를 할 줄 모르던 신식 도시직업여성이었다. Photo: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나는 부엌이 아니다’ - 과거 ‘여자의 자리’ 또는 ‘여자의 작업실’로 불리던 부엌. 정작 근대식 주방을 디자인한 슈테-리호츠키는 요리를 할 줄 모르던 신식 도시직업여성이었다. Photo: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이념적으로 그녀는 한 번도 굴한적 없는 경골의 공산주의자였다. 그런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반(反) 나치주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게슈타포에 체포돼 1945년 종전 때까지 약 4년 동안 독일에서 교도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교도소 수감 시절 면회 온 언니에게 양파와 보드카를 가져달라 부탁했다 하는데, 험한 감옥살이 속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을 놓지 않았던 정치운동가로서의 면모도 깊이 인상적이다.

제2차 대전 종전 후 냉전기 시대, 비엔나로 돌아온 슈테-리호츠키는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공식 건축 프로젝트 수주에서 밀렸지만, 그 대신 바우하우스 건축을 해외로 알리는 일로 바쁘게 지냈다. 불가리아, 터어키, 중국, 쿠바 등 공산권 국가를 여행하며 공공 건축 프로젝트 고문 및 강사로 활동하는 동안 동지나라들서 느낀 애정은 그녀가 오피스와 침실 겸용으로 쓰던 방의 녹색 가구와 오리엔탈풍 카펫에 어려있다.

정의와 노동자에 대한 애정으로 피 끓던 젊은 건축가 시절부터 원로 건축가가 될 때까지 오로지 서민용 임대주택, 미니 주말 정원, 유치원, 학생기숙사 같은 공공 건축을 디자인하는 일로 인도적인 대중의 삶 개선에 헌신했던 실천가 슈테-리호츠키에게도 의외의 반전의 일면이 숨어 있었다.

100세 생일을 맞던 해인 1997년, 건축가의 사회적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비엔나 시장이 마련한 축하행사에 참가한 그녀는 미하일 호이플 당시 비엔나 시장과 월츠를 추면서 시장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 “...그런데 말이죠, 나도 때때로는  부자를 위한 집을 설계해보고 싶었어요. ...”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리쳐드 노이트라,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헤 같은 혜성 같은 동시대 근대 건축가들처럼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도 자본주의 갑부나 사업가를 위한 대자연 속 호화 저택과 주말 별장을 지어보고 싶었던 게다.

공간 창조를 향한 건축가의 창의적 동기와 욕망이란 그 얼마나 복잡 미묘한 것일까? 나방이 불에 이끌리듯 건축가는 돈 많은 클라이언트를 위해 디자인하고 싶어한다. 풍족한 예산은 곧 비싸고 오래지속될 작품과 미적 자유를 뜻하기 때문일 테다.

슈테-리호츠키가 살았던 이 작은 시립임대아파트는 건축가의 사후 새 임차인의 입주로 내부 구조가 개조되고 부동산 시장의 매물로 들어가 영영 잊힐 수 있었다. 그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을 국가기념비적 건축으로 보전하는 작업’은 오늘날 현대 건축가가 해야할 의무중 하나라고 슈테-리호츠키 아파트 복원을 담당한 건축가 레나테 알마이어-벡(Renate Allmayer-Beck)은 당부한다.

건축가는 꼭 클라이언트를 위해 지은 물리적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고 있했던 겸손한 공간을 통해서도 훌륭한 정신적 유산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여성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했다. 슈테-리호츠키의 자기만의 방에는 별도의 침실 없이 업무용 책상, 취침 겸용 소파, 수많은 책이 있는 단순한 공간이었다. 현재 연방기념물관리청 지정 건축 및 디자인 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19세기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여성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했다. 슈테-리호츠키의 자기만의 방은 별도의 침실 없이 업무용 책상, 취침 겸용 소파, 책꽂이와 수납장이 있는 단순한 공간이었다. 현재 연방기념물관리청 지정 건축 및 디자인 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주. 녹색경제신문 유럽주재기자. 월간미술 비엔나 통신원. 미술평론가・디자인칼럼니스트. 경제와 테크 분야 최신 소식과 유럽 동향과 문화를 시사와 인문학적 관점을 엮어 관조해 보겠습니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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