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경 칼럼] 정용진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를 허(許)하라
상태바
[녹경 칼럼] 정용진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를 허(許)하라
  • 양현석 기자
  • 승인 2021.06.09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NS 스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미안하고 고맙다’ 표현으로 큰 구설수
소통에 열광하면서도 정치적 해석에 예민하면 제2의 ‘용진이 형’은 없다
반려견 실비 추모 게시글(왼쪽)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이 문제가 되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안경을 올리는 손가락’의 예를 들며 오해받을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게시글(오른쪽)을 올렸다. [사진=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반려견 실비 추모 게시글(왼쪽)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이 문제가 되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안경을 올리는 손가락’의 예를 들며 오해받을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게시글(오른쪽)을 올렸다. [사진=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다른 재벌 3세와는 물론, 대외소통이 드문 삼성가 오너들과도 늘 결이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인스타그램 스타다. 정용진 부회장은 9일 기준 66만명이 넘는 팔로워가 있는 인플루언서이자, 온라인 공간에서 신세계그룹과 이마트, SSG 랜더스 야구단을 홍보하고 있는 최고의 ‘바이럴 마케터’이기도 하다.

정 부회장의 준거집단은 다른 삼성가의 일가친척보다는 IT 기업 창업가들에 더 가까이 있다. ‘택진이 형’으로 통하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처럼 ‘용진이 형’이라 불리길 원한다. 은둔형 오너가 익숙했던 한국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임은 분명하다.

그의 SNS는 올해 들어 계속 논쟁거리였다. 프로야구단을 인수한 이후 라이벌 기업인 롯데와 신동빈 롯데 회장을 지속적으로 도발했다. 이때만 해도 젊은 오너의 치기 또는 라이벌 구도를 통한 ‘붐업’ 정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재계를 넘어 정용진 부회장의 SNS는 최근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여러 상황에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언급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지지자들을 소환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팽목항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적어 극우 커뮤니티 등에서 비판이 된 바 있다. ‘아이들의 죽음이 왜 고마움의 대상이냐’는 문제제기였다.

정 부회장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이 문 대통령의 방명록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전혀 관계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정 부회장은 평소에 자주 쓰는 말임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반복적 사용에 일부 여권 지지자들이 불편해 했고, 극우 커뮤니티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였나 보다. 심지어 정 부회장의 반려견 실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글에 달린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도 문제로 삼았다.

SNS 활동에 대해서는 고집을 꺾은 적이 없던 정 부회장도 이번 정치적인 논란은 부담이 된 것 같다. 지난 8일 밤 정 부회장은 안경을 쓸어올리는 손가락을 바꾸겠다는 게시글을 올리며, 오해받을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마 더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 부회장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이 문제가 된 이유가 뭘까? 누구나 평소 자주 쓰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이 가진 함의가 무엇이기에, 라이벌 기업을 향해 대놓고 도발을 즐기던 그가 후퇴를 결심하게 됐을까?

사실 우리는 대기업 오너의 소통 행보에 열광하면서도, 그 소통이 발화자의 본의와 상관없이 정치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는 불편해지는 이율배반적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정 부회장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현이 정치적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정치적 표현으로 읽힌다고 해서 정 부회장을 두고 ‘일베’니 하는 낙인찍기는 차원을 달리하는 위험한 발언이다.

소통하는 기업인을 바란다면, 우리 마음속에 너무 많은 ‘금기’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도덕책 같은 SNS가 무슨 재미인가? 정 부회장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아무 문제 없이 허용해야 우리는 더욱 많은 ‘택진이 형’과 ‘용진이 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