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문화 기적(中)]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전국 지자체 '후끈'...도시경쟁력 '문화 기부 확산' 기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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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문화 기적(中)]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전국 지자체 '후끈'...도시경쟁력 '문화 기부 확산' 기폭제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1.05.07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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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대구, 수원, 의령, 진주 등 미술관 유치전...지역 관광 및 경제 활성화 기대
- 미술계,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주비위 결성...서울 송현동 부지 등 활용 주장
- 유치전 과열에 우려 목소리도 나와..."이미 기증한 미술품 모두 회수는 부적절"
- '문화 기부' 확산 계기로 삼아 도시 경쟁력 높여야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문화 기부는 ‘세기의 기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기증을 결정한 국보급 문화재와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 규모는 무려 2만3000여점에 이른다. 특히 이번 기부는 지방 출신 유명 작가 연고지 미술관도 알뜰히 챙겼다는 점이다. 지방의 문화 자부심 확산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썩인다. <녹색경제신문>은 ‘이건희 문화 기부’가 나비효과가 되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드는 현상을 심층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과열 양상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미술품을 기증한 정신을 잘 살려서 국민이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후 지방자치단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전국 지차체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이 가열되자 이미 기증받은 국공립미술관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컬렉션' 일부를 기증받은 대구미술관과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은 6일 "삼성가의 기증 취지에 맞게 우리 미술관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생전의 삼성 창업주 이병철(왼쪽)과 이건희 삼성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은 서울은 물론 지방 작가들의 연고지 미술관을 선택해 기증했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전남 일대에서 활동한 동양화가 허백련, 대구미술관에는 대구 대표 화가 이인성, 제주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에는 박수근의 작품을 기부하는 식으로 각 지역별 특성까지 고려했다.

유족의 기증 취지와 달리 전국 지자체들이 ‘이건희 미술관’을 짓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대통령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자체들이 ‘이건희 미술관’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기증된 미술품만 2만 3000여 점으로 감정가만 3조원대에 육박한다. 특히 ‘이건희 미술관’이 유치된다면 관광객 급증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 결정적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한 마디에 전국 지자체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가세...연고지, 인연 등 내세워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는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수원, 세종, 창원, 경남 의령, 경남 진주 등 전국 지자체가 앞다퉈 뛰어든 형국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건희 미술관,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된다“며 ”대한민국 문화 발전을 위한 고인의 유지를 살리려면 수도권이 아닌 남부권에 짓는 것이 온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은 국제관광도시로 지정돼 있고 북항 등 새로운 문화 메카 지역에 세계적인 미술관을 유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유족 의견을 중시해 공간특성, 건축, 전시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연고지인 대구도 적극적이다. 대구시는 오늘(7일) (가칭)국립 '이건희 미술관' 대구유치추진위 구성 및 추진전략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나선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38년 고(故)이병철 회장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창업했고, 4년 뒤 이건희 회장이 대구에서 태어났다“며 ”대구는 서울­평양과 더불어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점으로 기능해왔다. 만약 이건희 컬렉션이 한곳에 모여 국민들께 선보인다면 그 장소는 당연히 대구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 근대미술의 기반을 다져온 대구의 문화적 저력을 바탕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아오는 대한민국 문화명소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모습

수원시도 삼성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수원시에는 삼성전자 본사와 이건희 회장의 묘소가 위치해 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수원 갑) 의원은 수원시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수원시는 지난 4일 염태영 수원시장 주재로 비공개 회의를 열고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논의했다.

수원 장안구에서 3선을 지낸 이찬열 전 의원과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 등을 지낸 이기우 전 의원 등도 "이건희 미술관은 수원시에 건립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남 의령군도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출생지를 강조하며 유치에 나섰다. 오태완 의령군수는 지난 3일 “기증의 의미를 잘 살려 많은 국민들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건희 미술관’을 이 회장의 선대 고향인 의령에 유치하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주 지수초등학교

경남 진주시도 연고를 내세워 유치전에 가세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6일 "진주가 지리적으로 영호남의 중간에 있고 부산, 울산, 대구, 광주, 전주 등 남부권 대도시권에서 1∼2시간 만에 올 수 있어 이건희 미술관이 자리 잡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주시 지수면은 기증자인 이건희 회장의 선친이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유년 시절 다녔던 지수초등학교가 있어 이 회장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라며 "진주는 지역 출신 삼성 이병철 회장, LG 구인회 회장, GS 허만정 선생, 효성 조홍제 회장 등이 기업을 창업해 기업가 정신이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창원시도 가세했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위원장과 김경수 도지사 등 경남도내 7개 시장·군수가 참석한 경남지역 현안 간담회에서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대해 “마산해양신도시에 이미 부지가 확보돼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창원관 건립과 연계하는 것이 미술관 콘셉트에도 맞고 추진 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도 나섰다. 최민호 국민의힘 세종시갑 당협위원장은 6일 "'이건희 미술관'을 행정수도인 세종시에 유치하자"고 제안했다. 최 위원장은 "세종시는 미국의 워싱턴D.C.처럼 한국의 행정수도로서 국내외적으로 도시의 대표성과 상징성이 널리 알려졌고,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2시간 내 도달할 수 있는 접근성이 가장 우수한 도시"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받은 광주시, 대전시 등도 미술관 유치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미술계는 가장 먼저 움직였다. 미술계는 지난달 29일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비위원회를 결성하고 30일 “삼성가에서 국가에 기증한 근대미술품(10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근대미술품(2000여점) 등 각 기관에 흩어져 있는 근대미술품을 한곳에 모아 국립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주비위에는 김종규 국민문화유산 신탁 이사장, 신현웅 전 문화관광부 차관,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윤철규 전 서울옥션 대표, 최열 전 문화재전문위원,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 1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주비위는 미술관 위치로 서울시 소유로 전환한 송현동 문화공원 부지와 세종시로 이전한 행정부가 자리했던 정부서울청사를 꼽는다. 송현동 부지는 삼성생명이 미술관을 지으려다 대한항공에 판 곳이다. 정부서울청사는 근대화·산업화를 견인한 장소이자 역사적 의미를 지닌 세종로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부장은 “‘이건희 컬렉션이 어느 지자체의 소유가 되기 보다는 기증의 상징적 의미를 빛나게 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미술품이 국가의 공공재인 만큼 국립기관이 관리 책임을 맡고 지자체에 대여 전시 등도 가능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증의 의미를 빛나는 하는 합의 있어야"...“가치있고 의미있는 곳에 기증이 된 것”

서울 송현동 부지

하지만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에서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지자체의 유치전은 지역경제 발전은 물론 문화의 도시로서 자부심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는 “관광객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역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등 여러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전세계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것처럼 ‘이건희 미술관’ 유치는 곧 지역의 자랑이 될 수 있다. 지자체 단체장이나 정치인에게는 치적으로 남기에 유치전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에서 정작 유족의 뜻은 빠져 있다. 삼성가(家)는 오랜 준비 끝에 ‘이건희 컬렉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골라 서울과 지방에 각각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각각 문화재와 고미술품 9797건(2만1600여점), 한국·서양 근현대미술품 226건(1488점)을 기증했다. 지방에는 5곳 미술관에 각각 기증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술품에 조예가 깊은 홍라희 여사(전 리움미술관장) 등 유족들은 조건 없는 기증을 했다”며 “그런데 이미 기증한 미술품을 모두 회수해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장은 “고인의 뜻에 따라 가치있고 의미있는 곳에 기증이 된 것”이라며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과열은) 지자체가 정치적으로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 지시 대로 이건희 회장 기증품 관련 특별관을 비롯해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1990년대 논의 시작 후 2013년 개관까지 10여년이 걸렸다는점에서 국립근대미술관의 건립은 미지수다.

전국 지자체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도 결국 ‘이건희 컬렉션’ 문화 기부가 만든 현상이다. 대통령이 언급하고 지자체장이 응답한 모양새다. 정부는 지역간 갈등과 혼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정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이건희 컬렉션’ 기부가 문화 경쟁력 제고 등 순기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승익 대구문화재단 대표는 최근 칼럼에서 “문화예술이 곧 국가와 도시 경쟁력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이건희 컬렉션’ 사회 환원이 시민들의 예술사랑과 문화기부 확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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