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문화 기적(上)] 홍라희-박수근미술관 인연 재조명...'이건희 컬렉션' 귀향 "강원도 자부심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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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문화 기적(上)] 홍라희-박수근미술관 인연 재조명...'이건희 컬렉션' 귀향 "강원도 자부심 바꿨다"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1.05.06 0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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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컬렉션' 지역 미술관 기부...지역 문화 및 경제 활성화 선순환
- 박수근미술관, 18점 기증 받아...6일부터 특별전, 지역 중 처음 개최
- 홍라희 여사, 박수근미술관 건립 고문 참여 및 자작나무 숲 직접 조성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문화 기부는 ‘세기의 기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기증을 결정한 국보급 문화재와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 규모는 무려 2만3000여점에 이른다. 특히 이번 기부는 지방 출신 유명 작가 연고지 미술관도 알뜰히 챙겼다는 점이다. 지방의 문화 자부심 확산은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썩인다. <녹색경제신문>은 ‘이건희 문화 기부’가 나비효과가 되어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드는 현상을 심층 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자작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인데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고향 양구에 돌아왔습니다.”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 측은 ‘이건희 컬렉션’ 중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 다시 돌아오자 감격했다.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 여사(전 리움미술관장)가 미술관 건립 당시 기증한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룬 모습을 바라보며 오랜 인연이 오버랩됐던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기부에서 놀라운 점은 유족들이 서울은 물론 지방 작가들의 연고지 미술관까지 챙겼다는 사실이다.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전남 일대에서 활동한 동양화가 허백련, 대구미술관에는 대구 대표 화가 이인성, 제주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에는 박수근의 작품을 기부하는 식으로 각 지역별 특성까지 감안했다.

2003년 당시 신경영 20주년 행사에 함께 한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

그 중 최북단 강원 양구군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이 가장 발빠른 모습이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 18점이 귀향한 것을 기념하는 아카이브 특별전을 오늘(6일)부터 연다. 앞서 1일부터 5일까지 열린 사전 오픈 기간 동안 평소 2배 이상의 관람객이 몰려 특별전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를 주제로 한 이번 특별전에서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가(家)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은 박수근 화백의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 등 총 18점이 공개된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장은 “지난 12년간 근무했는데 가장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미술관 내에는 박수근-김복순 부부의 묘지도 있는데 고인이 계신 곳에 작품이 돌아와 뜻깊다. 더 많은 작품이 수집될 수 있도록 노력해 가치를 더 드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내년 박수근미술관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정말로 귀한 작품들을 기증받았다”며 “이를 통해 박수근미술관이 국제적 미술관으로 위상을 높일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박수근미술관 전경

박수근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의 박수근 화백의 작품 80여점 중 18점을 기증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근미술관은 기증 발표 전인 지난 4월 14일 미술관에 도착한 박 화백 작품을 모두 수장고에 입고했고, 그동안 작품 점검 및 액자구비와 촬영 등을 병행하며 전시를 준비했다.

박수근미술관이 기증받은 작품 중 유화는 △1962년작 ‘아기 업은 소녀’△1963년작,‘마을풍경’ △1964년작 ‘농악’△1950년대작 ‘한일(閑日·한가한 날)’이다. 드로잉으로는 ‘나무와 여인’, ‘마을 풍경’, ‘지게꾼’, ‘아기와 아낙들’, ‘초가집 풍경’ 등 6.25전쟁 전후 고단한 서민들의 일상을 노상에서 그린 스케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됐다.

박수근 화백의 1962년 작품 '아기업은 소녀'.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이었고 유족에 의해 박수근미술관에 기증됐다 [출처 박수근미술관]
이건희 회장이 수집했고 유족이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한 박수근 화백의 1950년대 작품 '한일' [출처 박수근미술관]

특히 박수근미술관의 박 화백 유화들은 그간 소장처 확인이 안 됐거나 해외로 반출됐다가 돌아온 작품 등 희귀하고 감회가 남다른 것들이어서 미술계는 환호성을 질렀다. ‘농악’(20.8x29.3cm, 하드보드에 유채, 1964) 작품은 1965년 10월 6일~10월 10일에 서울 중앙공보관에서 개최된 ‘박수근 유작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1965년 이후 소장처가 확인이 안 되었던 작품 중 하나다. 그간 박수근 화백의 장남 박성남 화백이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한 유작전 슬라이드를 통해서만 알려져 왔다. 

박 화백의 또다른 작품 ‘절구질 하는 여인’ 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할 예정이다.

홍라희 여사, 박수근미술관 자작나무 숲 아이디어 및 직접 기부 참여

무엇보다, 삼성가(家)와 박수근미술관의 인연이 재조명되고 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는 박수근 화백 작품의 최대 콜렉터로 알려져 있었다. 홍 여사는 박수근미술관 건물 뒤쪽 입구에 있는 자작나무 숲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홍 여사는 박수근 화백의 얼을 선양하고 예술혼을 기리기 위한 박수근미술관 건립에 뜻을 같이 했다. 홍 여사는 박수근미술관 선양사업추진위원회에 고문으로 참여했다. 당시 홍여사는 호암미술관장을 맡고 있었다.

홍 여사는 2004년 10월 열린 박수근미술관 개관 2주년 기념식에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으로 참석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을 때다. 이 때, 홍 여사는 “(박수근 화백) 동상 옆 빨래터 주변 사유지를 매입해 자작나무를 심고 휴게시설을 갖춘 광장을 조성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미술관 뒤편에 군인아파트 등이 보였는데 경관을 개선하자는 차원에서 홍 여사는 자작나무 숲 조성 아이디어를 냈고 직접 기부도 했던 것.

박수근미술관 자작나무 숲

그리고 홍 여사가 조성한 자작나무는 이제 숲을 이뤄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이 사랑하는 명소가 됐다. 박수근미술관 측은 “자작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인데 당시 인연이 박수근 화백 작품의 귀향으로 이어졌다”며 “이건희 회장의 뜻과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 작품을 기증했다”고 전했다.

박수근미술관은 박 화백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터에 마련됐다. 고 이종호 건축가가 설계한 박수근미술관은 미감이 살아있는 건축물로 국민화가의 가치를 오롯이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간 어려움이 많았다. 유화는 물론 드로잉이나 판화 등 원화가 단 1점도 없이 개관했기 때문, 그러나 민관이 힘을 합쳐 작품 수집 노력과 기증 등으로 소장품과 전시콘텐츠를 점차 늘려왔다.

이제 박수근미술관은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 기증으로 총 129점의 원화를 보유(유화 17점·드로잉 112점)하게 됐다. 관련 자료까지 포함하면 1000여점의 소장품을 갖고 있다. 지난 해 어린이미술관을 개관했다. 실감형 콘텐츠를 활용한 ‘라키비움’도 오는 6월 개관한다.

박수근미술관은 2002년 개관 당시 박수근 화백의 원화가 없어 ‘박수근미술관에 박수근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개관 20주년을 1년 앞두고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수준의 개인 화가 전문 미술관으로 우뚝 서게 된 셈이다.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  “세계적 예술가 작품의 귀향, 아이들에게 꿈과 자부심"

‘이건희 컬렉션’의 귀향은 관광객은 증가와 함께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도 양구군은 6.25 전쟁 중 격전지였던 펀치볼, 북한 제4땅굴 등 군사지역과 곰치, 시레기 등으로 유명했는데 이제 박수근미술관이 지역 대표 관광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수근미술관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는 “이건희 문화 기부로 시작된 문화 미술품은 관광객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세계적 예술가 작품의 귀향은 명실공히 박수근미술관에 걸맞게 위상을 갖게 돼 지역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등 여러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박수근미술관은 이번 기증을 계기로 강원도 대표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 데 이어 리움미술관 재개관 이후 협력 사업도 추진 중이다. 삼성가와 박수근미술관의 인연은 계속 되는 셈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부는 대한민국 문화 기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작과 함께 지역 문화 및 경제 발전이라는 새로운 기적으로 승화되고 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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