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용 ARM 칩을 PC 제품군으로 확장
前 애플 디바이스/운영체제/앱 스토어가 일괄통합된 에코시스템 구축될 것
지난 월요일 (2020년 6월 22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다국적 IT 기업이 매년 주관하는 애플 WWDC(Apple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 1987년 창설) 행사가 팀 쿡 최고경영자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현지 시간 오후 1시에 개막했다. 올해로 33년째를 맞는 이 행사가 열리는 매년 이맘때면 산호세 소재 애플 본사 컨퍼런스 행사장은 전세계 수 십개 국에서 모여든 수 천명의 엔지니어와 디벨로퍼들로 북적댔지만 올해는 코로나(Covid-19) 확산 우려로 전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기조연설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이 날을 ‘맥을 위한 역사적인 날’로 묘사하며 향후 2년 내로 애플의 파워맥 데스크탑과 맥북 랩탑 시리즈의 프로세서를 ARM 칩으로 교체할 것이란 계획을 공식화했다. 또 애플이 올 연말 또는 내년 초 즈음 출시할 일명 ‘빅 서(Big Sur)’ 새 맥OS 운영체제는 애플이 자체 개발한 ARM 칩을 탑재한 모바일 디바이스부터 맥PC 제품군에 이르는 모든 애플 기기에서 통용될 애플 통합 운영체제의 인터페이스가 어떤 모습이 될지 미리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올 행사 오프닝에 앞서 수 개월 전부터 IT 전문가와 애플 애호가들 사이 애플을 둘러싸고 제일 많이 거론된 루머는 차세대 애플 맥OS 관련 업데이트 소식, 그 중에서도 애플 맥 제품군에 자체 개발한 ARM 칩으로 대체할 것이란 추측이었다. ARM 칩으로의 전환은 이제까지 탑재해 온 인텔(Intel) 프로세서와의 고별을 뜻한다. 그같은 대폭적인 엔지니어링 개혁으로 우선 민첩한 기술적 대응책에 임해야 하는 집단은 이 행사의 주요 관심자층인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앱 제공업체들이다.
애플이 언젠가는 ARM 기반 칩으로 전환할 것임은 예상된 일이었다. 애플이 인텔 기반 칩과의 고별을 고려하기 시작한 때는 벌써 2012년 경, 인텔의 프로세서 기술 혁신이 둔화세를 보이면서 부터다. 이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텔 칩 대신 ARM 칩 기반(32-bit ARM)의 하드웨어를 고려한 윈도 RT 운영체제를 설계・발표했고 그 후 서피스 터치스크린 랩탑과 차세대 윈도 10 운영체제기부터 퀄컴(Qualcomm)과의 협력으로 ARM 칩 기반으로 전환했다. 인텔 프로세서는 하나의 칩에 여러 코어를 동시 작동하기 때문에 고성능을 요하는 데스크탑과 랩탑의 작업 수행시 전력 소모가 많고 발열이 높다는게 제일 큰 단점이었다.
이미 아이폰, 아이패드프로(IPad Pro), 애플워치 등 모바일 제품군에는 애플 자체 개발 ARM 칩이 중추적 두뇌로 사용중이다. ARM 기반 칩이 과연 소형 모바일폰이나 태블릿 보다 강력한 데이터 처리능력을 요구하는 맥 시리즈(데크스탑 및 랩탑 컴퓨터)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인가? 애플이 개발중인 ARM 기반 칩은 처리 성능은 더 우수하면서도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배터리 전력 소모가 낮고 발열도 적어서 더 작고 융통성 있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 기약한다.
그동안 경험지향의 소비자 IT 제품과 서비스 기업을 지향해 오던 애플이 이번 WWDC 행사에서 ARM 칩 전환을 선언하고 엔지니어링 기업으로써 재포지셔닝하려는 이유는 뭘까? 애플은 보안 이슈를 내세운다. 테크놀러지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밀레니얼과 Z세대 소비자는 애플의 주 고객층이다. 그들은 매사 모바일 인터넷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윗 세대 보다 사이버 보안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술적 대안을 IT 기업들이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가 입증하듯 ARM 기반 칩은 해커의 사이버 위협 방어에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예컨대, 애플이 2017년부터 아이맥프로 제품군에 보안관리 장치로 탑재하기 시작한 자체 개발된 T2 프로세서는 지난 수 년 동안의 거듭된 개발・개선 결과 애플의 ARM 아키텍쳐 기반의 64-비트 단일 칩 체제(SoC)중 한 시리즈다. 2018년 이후 출시된 맥북 랩탑, 맥프로/맥미니/아이맥프로 데스트탑에도 현재 T2 보안 칩이 탑재돼있다.
ARM 칩 전환과 아이폰/아이패드에서 랩탑과 데스트탑의 운영체제를 가로지르는 엔지니어링 및 운영체제 일괄화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애플 온오프라인 매출 통로를 앱스토어로 일원화시키고 모든 유저의 소프트웨어 및 앱 구매를 완전통제하기 위해 앱 스토어를 지금 보다 더 닫힌(closed) 체제로 독점해 나갈 의도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만하다. 애플은 최근 모바일 기기 및 PC의 매출 둔화에도 불구하고 앱스토어로 사상 최대 매출을 거듭하고 있다. 애플이 구축한 앱스토어 생태계(물리적・디지털 제품 및 서비스, 인앱 광고 포함)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2016년부터 해마다 20% 대로 증가하며 2019년 기준 글로벌 총매출액 5천 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을 만큼 앱 스토어는 애플의 주 수익원이다.
2년 후 본격화될 ARM 칩 기반 '애플 실리콘' 시대, 애플 기기에 설치될 모든 앱은 반드시 애플의 검증을 통과한 후 앱 스토어에서만 판매될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 일부 맥 사용자들이 앱 스토어를 거치지 않고 소포트웨어 개발자 사이트에서 직접 소프트웨어나 앱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던 관행은 금지된다. ARM 칩 장착 신형 애플 컴퓨터에서 과거 애용하던 소프트웨어의 사용 및 호환성 여부와 업데이트 지원 여부에 대한 공식적 대책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약 2년 후 열리게 될 애플 ARM 칩 시대가 되면 모든 애플 디바이스로 iOS, iPad, MacOS 등 운영체제 사이 구분과 경계 없이 모든 앱은 거대한 통합 애플 에코시스템 안에서 유려하게 작동하게 될 것이다.
IT 기기의 새 프로세서로의 개편은 칩 제조업체를 비롯한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모두에게 동요스러운 사건이다. 예컨대, 2005년 스티브 잡스 지휘 하 모토롤라 Power PC 프로세서에서 인텔 x86 아키텍쳐로 전환할 때도 그랬다. 새 ‘애플 실리콘’ 환경에 하루 빨리 적응해야 할 개발자들을 위해서 애플은 맥미니 외장 디자인을 한 ‘디벨로퍼 트랜시션 키트(Developer Transition Kit)를 제공한다. 애플 앱 스토어에서 앱을 다운로드 받은 후 Universal App Quick Start Program에 유로 가입(미화 500달러)해야 하며, 이 키트의 사용이 끝나면 애플 본사로 환수하는 것이 조건이다. 올 WWDC는 6월 22일~26일까지 5일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박진아 IT칼럼니스트 gogree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