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칼럼] 6일 만에 백기 든 ‘배달의민족’... 무엇이 문제였나?
상태바
[양현석 칼럼] 6일 만에 백기 든 ‘배달의민족’... 무엇이 문제였나?
  • 양현석 기자
  • 승인 2020.04.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깃발 꽂기’ 해결 위해 수수료 체계 변경... ‘울고 싶던 자영업자 뺨 때린 격’
“정률제 변경하면 53% 혜택 본다” 발표... 시기·효과 부적절한 졸속 정책
양현석 녹색경제신문 유통부장.
양현석 녹색경제신문 유통부장.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수수료 정책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꿨다가 호된 여론의 질타에 결국 6일 만에 사과하고, 보완조치를 약속했다.

일개 배달 앱일 뿐인 배민의 수수료 문제에 여론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및 정치권이 이를 강하게 비판하리라고는 아마 배민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기에 김범준 대표의 사과 표명이 나오기 하루 전인 5일까지도 배민은 새로 개편한 수수료 정책인 ‘오픈서비스’ 제도에 대해 그 정당성을 언론에 설명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김범준 대표의 공식 사과와 개선책 마련 약속과 함께 이번 사태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7일로 예정됐던 정의당의 ‘배민 규탄 기자회견’도 배민의 조치를 지켜보겠다며 취소됐다.

그러나 상처는 남는다. 그리고 이 상처는 배민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배민의 당면 과제이자 가장 큰 이슈는 딜리버리히어로(요기요·배달통 운영사. 이하 오)와의 기업결합이다. 현재 심사 중인 이 사항은 해당 기업결합이 독과점인지, 4차 산업으로의 효율 증대인지를 두고 공정위가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여론은 배민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6일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도 및 전국 6개 광역시에서 배달 앱을 써본 적 있는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2월 25일~3월 10일)한 결과 배민과 요기요(DH), 두 업체의 합병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86.4%에 달했다.

합병의 주요 반대이유(복수응답)는 ‘독점시장 형성으로 인한 음식 가격 및 배달료 가격 인상(82.9%)’, ‘사업 혁신이나 서비스 향상 동기 저하(46.3%)’, ‘쿠폰, 이벤트 등 소비자 혜택 감소(40.5%)’ 순이었다. 또 두 업체의 합병이 이뤄지면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한 응답자가 8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승인의 주요 판단 기준이 시장의 독과점화, 가격 상승, 서비스 품질 하락 여부 등인 것에 비춰볼 때, 배민과 DH의 기업결합 승인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소시모의 설문조사는 배민 수수료 체계 변경 전에 이뤄진 것으로 4월 여론은 더 악화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듯 배민의 수수료 정책 변경은 큰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배민은 왜 이런 결정을 하필 코로나19로 자영업이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리는 식으로, 그리고 공정위가 기업결합 승인여부를 심사 중일 때 했는지 궁금해진다.

배민의 수수료 체계 변경은 지난 해 문제가 됐던 자본력이 있는 음식점들이 수십~수백개의 ‘울트라콜(정액 광고)를 이용해 배민 앱을 장악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의 소산인 것만은 분명하다.

배민은 이 문제 해결책을 4월 1일 내놓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일정을 맞추고자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의 위기상황과 국회의원 선거라는 예민한 시기라는 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체계 변경으로 인해 혜택을 받는 자영업자의 비율도 애매하다. 배민의 예측에 따르면, 수수료를 정률제로 변경했을 때 전체 입점 업소의 52.8%가 월 부담이 낮아진다고 한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머지 47.2%의 부담은 그대로이거나 높아진다는 뜻이다. 음식점 절반가량에만 이득이 되는 제도를 개선된 제도라고 내놓은 배민의 자신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배민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배민이 제시한 수수료율 5.8%는 최저 수준인 것이 맞다. 요기요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 그렇지만 이미 합병을 선언한 요기요에 비해 저렴하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배민은 더 이상 실수가 용납되는 소규모 스타트업이 아니다. DH가 인수 금액에서 증명했듯이 기업가치 5조원이 넘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배민이 이번 논란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