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품다]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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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품다]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린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1.09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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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연구팀, 관련 초기 원천기술 내놓아
대장암환자로부터 유래된 대장암 오가노이드(3차원으로 배양한 유사장기)에서 SETDB1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 정상 대장오가노이드의 형태를 회복했고((하단그림 D와 E), SETDB1의 발현이 높은 환자일수록 예후가 나쁨을 확인했다(하단그림 A와 B).[사진=카이스트]
대장암환자로부터 유래된 대장암 오가노이드(3차원으로 배양한 유사장기)에서 SETDB1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 정상 대장오가노이드의 형태를 회복했고((하단그림 D와 E), SETDB1의 발현이 높은 환자일수록 예후가 나쁨을 확인했다(하단그림 A와 B).[사진=카이스트]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리는 원천기술이 개발됐다. 카이스트(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조광현 교수 연구팀이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통해 대장암세포를 일반 정상 세포로 되돌리는 초기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대장암세포와 정상 대장 세포의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를 분석해 대장암세포를 정상 대장 세포로 변환하는데 필요한 핵심 인자를 규명했다. 이를 통해 암세포의 정상 세포화라는 새로운 치료 원리를 개발했다.

현재 항암치료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항암 화학요법은 빠르게 분열하는 암세포를 공격해 죽임으로써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신체 내 정상적으로 분열하고 있는 세포들까지도 함께 사멸시켜 구토, 설사, 탈모, 골수 기능장애, 무기력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

암세포들은 항암제에 본질적 내성을 갖거나 새로운 내성을 갖게 돼 약물에 높은 저항성을 가지는 암세포로 진화한다. 현재의 항암치료는 내성을 보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더 많은 정상 세포의 사멸을 감수해야만 하는 문제를 갖는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서는 정상 세포까지 함께 죽어야 하는 부작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암세포만을 특이적으로 없애는 표적 항암요법과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을 활용한 면역 항암요법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각각 효과와 적용대상이 매우 제한적이며 장기치료를 할 때 여전히 내성 발생의 문제가 보고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팀은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변환하는 새로운 방식의의 치료전략을 제안했다.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변환되는 현상은 20세기 초부터 간혹 관찰됐는데 그 원리가 연구되지 않았다. 또한 이를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기술도 연구된 바 없었다.

1907년 스위스 병리학자 막스 아스카나지(Max Askanazy)가 난소의 기형종(테라토마)이 정상 세포로 분화되는 현상을 발견한 이래로 다양한 암종에서 정상 세포로 변화되는 현상들이 산발적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보고에서는 암세포가 돌연변이를 지닌 상태에서 주변 미세환경의 변화나 특정 자극 때문에 정상 세포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현상만이 관찰됐다.

조 교수 연구팀은 시스템생물학 연구방법을 통해 대장암세포를 정상 대장 세포로 변환할 수 있는 핵심조절인자를 탐구했다. 그 결과 다섯 개의 핵심전사인자(CDX2, ELF3, HNF4G, PPARG, VDR)와 이들의 전사 활성도를 억제하고 있는 후성유전학적 조절인자인 ‘SETDB1’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SETDB1을 억제함으로써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정상 세포로 변환할 수 있음을 분자세포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대장암세포에서 SETDB1을 억제했을 때 세포가 분열을 중지하고 정상 대장 세포의 유전자 발현패턴을 회복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연구를 보면 암세포에서는 암 특이적으로 활성화된 후성유전학적 조절인자 SETDB1이 정상 세포의 핵심전사인자를 억제해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변환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SETDB1을 조절함으로써 다시 원래의 정상 세포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조 교수 연구팀은 한 대학병원과 협동 연구를 통해 SETDB1이 높게 발현되는 대장암세포를 가진 환자들에게서 더 안 좋은 예후가 나타남을 확인했다. 환자 유래 대장암 오가노이드(3차원으로 배양한 장기유사체)에서 SETDB1의 발현을 억제했을 때 다시 정상 세포와 같은 형태로 변화함을 관찰했다.

이번 연구에서 찾아낸 타깃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할 수 있는 저분자화합물은 아직 개발된 바 없다. 앞으로 신약개발과 전임상실험을 통해 암세포의 정상 세포화라는 새로운 치료 기술이 본격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새로운 개념의 치료전략이 적용된다면 현재 항암치료의 많은 부작용과 내성 발생을 모두 최소화함으로써 환자의 고통을 완화해 삶의 질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 교수는 “그동안 암은 유전자 변이 축적에 의한 현상이어서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겨졌는데 이를 되돌릴 가능성을 보여줬다”라며 “이번 연구는 암을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으로서 잘 관리하면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항암치료의 서막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카이스트 이수범 연구원, 황채영, 김동산 박사, 한영현 박사과정, 서울삼성병원의 이찬수 박사, 홍성노 교수, 김석형 교수 등이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암학회(AACR)에서 출간하는 국제저널 ‘분자암연구(Molecular Cancer Research)’ 1월 2일 자 표지논문(논문명: Network inference analysis identifies SETDB1 as a key regulator for reverting colorectal cancer cells into differentiated normal-like cells)으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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