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그룹 사위 권영수, 1등 LG 승부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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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그룹 사위 권영수, 1등 LG 승부사됐다.
  • 박근우 기자
  • 승인 2018.07.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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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부회장의 성공 이력을 통해 본 구광모 경영체제의 미래
구광모 회장의 4세 경영체제를 맞아 권영수 LG 부회장의 역할과 미래 구상에 대해 재계는 물론 세간의 관심이 높다. 구 회장이 속전속결로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한 이유가 자신을 보좌할 최적임자로 권 부회장 낙점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은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의 COO(최고운영책임자) 대표이사로서 구 회장과 각자 대표를 맡게 된다. 따라서, 권 부회장은 40세 젊은 총수인 구 회장의 멘토 역할은 물론 LG그룹의 향후 비전과 미래 신성장 사업 등을 이끌 실질적인 리더로 재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권 부회장이 그간 보여준 1등을 향한 집념과 성공 스토리 이력은 곧 구 회장의 의중과 LG의 앞날을 어느정도 전망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전 포인트의 묘미가 있다.
 
"여러분에게 내재된 무한한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해 달라. 여러분이 만들어갈 1등의 이야기에 미리 박수를 보내며, 함께한 모든 것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한다"
권 부회장이 최근 LG유플러스를 떠나면서 사내 메일을 통해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 중 한 구절이다. 권 부회장은 작별 인사에서도 향후 5G시장에서 LG유플러스가 1등이 되라는 주문을 할 정도로 1등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 셈이다.
 
권 부회장은 왜 1등 LG에 대한 집념이 강할까? 그의 이력을 통해 살펴보자.
권영수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만 61세 나이다. 권 부회장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부도 1등, 학력도 엘리트 코스다. 
 
권 부회장은 지난 1979년 당시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LG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39년 동안 여러 계열사를 거치는 동안 정통 LG맨으로서 성공 가도를 달려왔다. 1988년에 금성사 해외투자실에서 30대 초반에 최연소 부장에 오른 뒤 1991년 미주법인 부장을 맡았다. 1999년 LG전자 금융담당 상무보로 발탁돼 1년 만에 2000년 LG전자 재경팀장 상무로 등극했다. 2002년 LG전자 재경담당 부사장에 올라, 2006년 40대 나이에 LG전자 재경부문장 사장(CFO)으로 승진했다. 2007년 LG필립스LCD로 자리를 옮겨 대표이사 사장을 맡은 후 사명을 LG디스플레이로 바꾼다. 2012년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전지사업본부 사장을 맡았다. 2015년 LG유플러스 부회장에서 올해 (주)LG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권영수 부회장은 LG의 주요 핵심 계열사의 수장으로서 부임하면 임직원들에 늘 1등을 강조해왔다.
권 부회장의 성공 가도에는 1등 DNA가 따라붙었다. 그가 맡은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전지사업은 세계 1위가 됐다. 인화와 정도경영이 전통인 LG 문화에서 보면 ‘삼성맨 같은 LG맨’이라는 평도 나온다. 물론 1995년 구본무 회장이 LG의 3세 경영체제를 이끌면서 초우량 글로벌 기업 1등 LG 비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권 부회장의 1등 DNA가 결합한 것은 필연일 수도 있다. 
 
권 부회장의 치열한 승부욕에서 가족사와 국제그룹 사위라는 이력도 간과할 수 없다. 아버지는 박정희 정권 시절에 권력 핵심인 보안사령부 실세로 알려져 있다. 한 때 재계 7위였던 국제그룹은 전두환 군부정권에 밉보여 강제로 해체된 비운의 기업이다. 2009년 작고한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에게는 슬하에 2남 11녀가 있는데 그 중 9번째 사위가 권 부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권 부회장은 1990년대 자신의 집에서 양 회장을 잠시 모시기도 했다고 한다.
 
권 부회장은 장인의 역경과 실패에서 1등만이 살아남는 냉혹한 현실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그룹과 LG는 공교롭게도 1947년, 부산에서 창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창업 시기와 지역이 똑같다. 국제그룹은 1947년 고무신 공장으로 탄생한 기업인데 LG는 같은 해 락희화학공업사를 모태로 하고 있다. 권 부회장이 국제그룹 잔혹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이 몸담은 LG를 반드시 1등으로 만들겠다는 집념을 불태운 것은 아닐까. 이제 권 부회장은 국제그룹 사위를 넘어 결국 LG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권 부회장의 메시지는 끝과 시작이 같았다. 1등이다.
“영원한 1등이 되어달라.”
2011년 12월 LG디스플레이 사장에서 물러나며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 안에는 1등 DNA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목표에 과감히 도전하고 강하게 돌파하면 결국 우리가 꿈꾸는 1등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2016년 1월 LG유플러스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핵심 내용이다.
 
1등 DNA 승부사, 권 부회장의 성공 이력을 보면 구광모 경영체제의 미래가 담겨 있다.
권 부회장은 냉혹한 승부사답게 LG그룹 안에서 '칼(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칼같은 승부 근성의 권 부회장이 구 회장을 보좌해 선대 회장의 꿈인 1등 LG를 완성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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