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습적 개발' 관행에 스스로 몰락중인 韓 MMO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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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관습적 개발' 관행에 스스로 몰락중인 韓 MMORPG
  • 이지웅 기자
  • 승인 2024.02.24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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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리니지W, (우)롬. [이미지=엔씨소프트]
(좌)리니지W, (우)롬. [이미지=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이하 엔씨)가 카카오게임즈와 레드랩게임즈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레드랩게임즈가 개발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롬(ROM)이 ▲게임 콘셉트 ▲주요 콘텐츠 ▲아트 ▲UI ▲연출 등 많은 부분에서 ‘리니지W’의 요소들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입장이다. 

비단 ‘리니지W’만 법적 공방에 휩쓸린 것은 아니다. 엔씨는 웹젠 ‘R2M’과 엑스엘게임즈 ‘아키에이지 워’가 각각 ‘리니지M’, ‘리니지2M’을 지나치게 ‘베꼈다’는 이유로 해당 게임들을 법원으로 끌고 들어왔다. 

최근 이와 같은 법적 분쟁이 잦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주류 게임 장르 중 하나인 MMORPG의 개발이 관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MMORPG로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시도들이 도리어 MMORPG의 쇠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콘텐츠 영역에서 어떠한 장르가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작자들의 ‘창의적 모방’이 필수적이다. 기준점이 될 만한 창작물의 핵심 요소를 차용하면서도 새로운 특징이 될 만한 무언가가 곁들여 진 결과물을 통해 또 하나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게임 영역에서는 ‘소울라이크’ 장르가 정석적인 발전 과정을 겪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장르 게임의 모태가 된 프롬소프트웨어(이하 프롬) ‘데몬즈 소울’은 고전 RPG 게임인 ‘위저드리’의 핵심 재미 요소를 현대화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롬은 이를 시작으로 ‘다크 소울’ 시리즈, ‘블러드 본’,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엘든 링’과 같은 게임들을 제작하며 하나의 장르를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그 비결은 위에서 언급한 ‘창의적 모방’에서 찾을 수 있다. 프롬은 ‘블러드 본’과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를 제작하면서 기존 ‘다크 소울’의 ‘색깔’은 가져오되 게임 내 전투 시스템에 큰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프롬은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한 데 모으는 동시에, 스테이지 구성에서 탈피한 후 오픈월드 시스템을 도입한 ‘엘든 링’을 시장에 내놨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소울라이크’ 장르의 대중성도 확보됐다. 

우리나라의 ‘K-MMORPG’가 걷고 있는 행보와 대조된다. 지금껏 엔씨가 ‘리니지’ 시리즈를 통해 제시한 공식을 근간으로 특기할 만한 요소를 더한 게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그래픽 수준을 끌어 올리고, 과금의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는 게 현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장르가 고일대로 고여 버렸다. 신규 유저는 즐기기 어렵고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됐다. ’리니지’ 시리즈의 핵심 재미를 공유하는 게임들이 즐비하게 나온 후 추락한 엔씨의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엔씨는 지난 한 해 동안 매출 1조7798억원, 영업이익 1373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1%, 75% 줄어든 수치다. 4분기에는 3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치며 이름값에 비해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K-MMORPG 시장의 ‘본가’격인 엔씨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과거 엔씨가 내놓은 ‘트릭스터M’, ‘블레이드&소울2’과 같은 게임들에는 스킨만 바꾼 리니지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현 상황이 아쉬운 이유는 이 장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확고한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후 MMORPG에 대한 인식을 바꿀 만한 게임이 등장해 게이머들이 두루두루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웅 기자  gam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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