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30년 전 구식 세탁기가 점령한 미국 가전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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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30년 전 구식 세탁기가 점령한 미국 가전 매장
  • 우연주 기자
  • 승인 2024.01.26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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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부터 거의 같은 디자인 판매
단순한 구조에서 오는 내구성 큰 장점
“한국에서는 가전으로 과시” 의견도
상단 사진은 70년대 판매하던 켄모어의 세탁기건조기 세트, 하단은 오늘날 월풀 사에사 판매 중인 세탁기건조기 세트다. 기본 다이얼과 오픈 구조 등 거의 같은 모습이다. [사진=Goodshopping과 Lowe’s 사이트 캡쳐]
상단 사진은 70년대 판매하던 켄모어의 세탁기건조기 세트, 하단은 오늘날 월풀 사에사 판매 중인 세탁기건조기 세트다. 기본 다이얼과 오픈 구조 등 거의 같은 모습이다. [사진=Goodshopping과 Lowe’s 사이트 캡쳐]

CES 2024를 관람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놀라운 신기술과 비전을 직접 봤는데, 진짜 놀라웠던 건 전시장을 떠나 지역 가전 판매점에 들렸을 때다. 

홈디포(미국의 가전 판매 체인점)와 타겟, 월마트 등에는 우직하게 생긴(무식하게 생긴)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가 그득했다. 

30년 전 할머니가 쓰시던 세탁기랑 똑 닮았더라.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진짜 똑같았다. 미국 가전 회사들은 70년대, 80년대와 거의 같은 디자인의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던 게 맞았다. 

에어컨도 비슷한 실정(?)이다. 미국에서는 시스템 에어컨이 설치된 최신 건물이 아니라면 창문 아래 벽에 70년대 방식의 에어컨을 박아넣은 곳이 대부분이다. 이 전통 방식의 에어컨들은 실외기가 내장돼 있어 매우 시끄럽고, 정속형이라 전기도 꿀꺽꿀꺽 먹는데 이를 해결하겠답시고 껐다, 켜졌다 하면서 시끄러움이 더욱 강조된다. 

물론 에어컨의 경우 냉방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서 ‘트렌디함’을 찾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 서부와 서유럽은 대륙성 기후로, 일년 내내 추위나 더위가 극심하지 않고 습도도 낮다. 오죽하면 유럽 사람들은 기후 변화로 이제서야 에어컨을 최초로 구입해 볼 정도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전통 가전’에는 큰 장점이 있다. 단순함에서 오는 내구성과 수리의 편리함이다. 

구조가 단순하니 확률적으로 고장의 경우의 수가 작다. 커다란 부품 몇 개로 이루어졌으니 전문가가 아니어도 셀프 수리를 하려면 못할 것도 아니다. 보통 모터를 소지(청소)해주면 된다. 

가격도 저렴하다. 30년째 공장에서 같은 라인을 돌리고 있다면 이보다 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도 힘들 것이다. 

반면 한국 가전은 그동안 많이 바꼈다. 외관도 트렌디해지고 디지털화 됐다. 혹자는 한국인의 선호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스탠드형 에어컨을 가리키며 “이렇게 거실에 우뚝 서 있는 형태의 에어컨을 좋아하는 건 한국인 뿐이다. 에어컨은 고가의 가전인 만큼 집에 놀러오는 누구든 볼 수 있게끔 하는 걸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스탠드형 에어컨의 내부 구조를 보면 크고 멋있게 생겨야만 할 ‘기능적 이유’는 없다. 

실내의 열을 가져가서 차갑게 바꾸는 역할은 밖에 있는 실외기가 다 하고, 실내기에는 차가워진 냉매가 지나가는 관과 그 뒤에서 공기를 밖으로 내뿜는 팬이 있는 정도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 브랜드의 에어컨 디자인에 대해 각종 밈이 생길 정도니, 한국에서 가전의 외관은 ‘말할거리’가 맞는 것 같다.

전자렌지마저도 다이얼식은 이제 잘 나오지 않는다. 선풍기도 세련되게 메인보드를 갖고 20여가지 바람을 뿜는다. 가스렌지가 인덕션으로 바뀌면서 한동안 촌놈 취급을 받았다. 버튼같은 버튼이 없는데 어떻게 켜란 말인가!

무식하게 단순해서 강인한 가전제품이 한국에서도 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잠깐 들었다. 모두가 그래야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다양성 존중의 차원에서 그런 제품도 (저렴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우연주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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