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렌탈 정수기’…약관은 무용지물, 손해배상 고사하고 업체는 ‘위약금’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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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렌탈 정수기’…약관은 무용지물, 손해배상 고사하고 업체는 ‘위약금’ 타령
  • 우연주 기자
  • 승인 2023.11.24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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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은 ‘계약 당일’에만…공지 의무 없어
약관 외 내용도 ‘개인적 협상’으로 가능
‘법’이 아닌 ‘계약’…개인간의 자율 기반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엉덩이를 깊숙이 닦은 물티슈로 정수기를 세척한 정수기 관리원이 화제다.

해당 소비자는 대기업 계열인 이 회사에 정수기 렌탈 해지를 요구했지만, 업체는 오히려 ‘위약금’을 요구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 결과, 해당 사건은 업체가 손해배상을 해야할 정도의 사안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정신동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에 “해당 사안은 위약금이 언급될 성질이 아니다”며 “화제가 된 관리원은 본사 직원이거나 외부에 위탁한 ‘이행 보조자’다. 업체에 귀책사유가 있고, 해당 행위를 과실이라고 볼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손해배상 중 재산적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에 대한 위자료까지 줘도 모자랄 판국이다. 업체가 위약금을 주장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라고 말했다.

정수기를 비롯한 렌탈에서 잦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약관을 미리 확인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업체들이 ‘약관은 계약 당일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렌탈 중개자와 접촉한 소비자 A씨는 “(중개자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당일에만 약관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믿고 계약해라’는 식이었다”라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미리 약관을 보여줄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약관은 기업이 먼저 작성하기 때문에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여러 개 있다. 소비자에게 미리 약관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그 예”라면서도 “제3자에게 보여줘야 할 의무나, 미리 공지해야 할 의무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는 렌탈 계약이 개인과 개인 간의 계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약관은 ‘법’이 아니고 ‘계약’이다. 상대방이 천 만원을 주겠다고 해도 안 받고 싶으면 안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개인들 사이의 자율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가 ‘예외 조항’을 언급해 약관과 다른 내용이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뉴스에 제보하겠다”라고 하자 업체는 “예외 조항을 적용해 제 권한으로”라며 위약금 없이 해지해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약관이 법이 아닌 개인 간의 계약이라고 봤을 때, 한 개인이 말을 잘해서 상품의 가격을 깎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협상 능력의 차이인 셈”이라고 말했다.

우연주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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