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맞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퍼스트 무버'로서 '뉴 삼성'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전 세계 임원들에게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선언과 함께 혁신을 주문했다. 이른바 '신경영 선언'이다.

삼성은 오는 7일 이건희 회장의 결단 '신경영 선언' 30주년을 맞는다. 이제 이재용 회장의 '뉴 삼성' 비전에 달렸다. 

삼성전자는 30년 기간 동안 국내 1위에서 '글로벌 1위'로 도약했다.

삼성 계열사는 올해 신경영 선언 30주년에도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사업 전략을 실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공급망 재편 가속화,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 미국과 중국 분쟁 격화 등 위기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95.5% 급감한 6402억원에 그쳤다. 반도체 부문은 4조5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다. 

이재용 회장은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작년 10월 회장에 취임해 해결해야 할 숙제가 가득하다. 

먼저 '뉴 삼성'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은 취임 당시 별도의 취임식 등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재용 회장은 취임 메시지에서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듭시다"라며 "제가 그 앞에 서겠다"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또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대형 M&A는 지난 2017년 전장(자동차 전자장치)업체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다.

이재용 회장은 취임 이후 삼성 계열사 임직원들과 수평적 소통에 나서고 있다. 지방 사업장 방문에서는 지역 사회와의 '상생' 경영에 방점이 찍혔다. 이재용 회장은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해 상생의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지역 산업 생태계 육성 차원에서 향후 10년간 총 60조원을 투자한다. 대표적인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업인 스마트공장 구축을 통해 '인구소멸 위험 지역'에 있는 중소기업을 우선 지원한다. 

이재용 회장은 '기술'에 미래를 걸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면서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과거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넘어 '퍼스트 무버(선도자)' 전략으로 체질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열린 삼성호암상에 직접 참석하는 등 '인재 제일' 경영철학을 계승하며 인재 육성·확보에도 적극적이다. 회장 취임 후 지난해 12월 처음 단행한 인사에서는 성과와 성장 잠재력을 중심으로 '젊은 리더'를 전진 배치했다. 

글로벌 경영에도 활발하다. 지난 4월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경제사절단에 동행한 후, 미국 동·서부를 횡단하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J&J) CEO 등 주요 글로벌 기업 CEO 20여명을 두루 만났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차원에서 '대통령 특사(특별사절)' 자격으로로 해외 각국 지도자와 만나기도 했다.

삼성은 미래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등 시스템반도체의 획기적 성장이 과제다. 따라서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나서는 등 경쟁자를 압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한다. 아울러 인공지능(AI), 로봇, 확장현실(XR) 등 미래 시장에서도 '초격차'로 시장 선점에 나선다. 

삼성전자, 신경영 선언 이후 시가총액 200배 급증...브랜드 가치 글로벌 5위 등극

한편, 삼성그룹은 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큰 변화를 겪은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품질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당시 500억 원 상당 규모의 불량 휴대폰과 팩스 15만 대의 '화형식'이 상징적이다.

이러한 '질 경영'은 당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삼성전자 휴대폰은 2012년 마침내 세계시장 1위에 올랐다. 반도체에서는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b(메가비트) D램을 개발한 데 이어 1996년에는 1Gb(기가비트) D램을 개발하며 세계 1위 독주 체제를 만들었다.

실적도 수직상승했다. 1993년 3조 1000억 원 수준이던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626조 6000억 원(상장 계열사 16곳, 2일 종가 기준)으로 200배 넘게 급증했다. 매출액은 41조 원에서 466조 8000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4900억 원에서 55조 6000억 원으로 각각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26만 6000명의 임직원을 보유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 11월 기준 877억 달러(약 115조 원)로 글로벌 5위에 올랐다. 

삼성은 기업문화 혁신도 선도했다. 국내 최초 대졸 여성 신입 사원 공채 실시(1993년), 공채 학력 제한 철폐(1995년), 7·4 출퇴근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등이 그것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유연하고 수평적인 기업문화 변화 과정에서 호칭 변화, 직급 단순화 등을 넘어서야 한다"며 "구성원들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연봉체계 구축 등 삼성이 선도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사회적으로 선도할 아젠다 필요성을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