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헐값'에 문화공원 추진...조원태 회장 "안 팔리면 가지고 있겠다"
상태바
서울시,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헐값'에 문화공원 추진...조원태 회장 "안 팔리면 가지고 있겠다"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0.05.29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 28일 "송현동 부지, 연내 문화공원 계획" 발표
대한항공, 자구노력으로 송현동 부지 등 매각 진행 중에 차질 예상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한진그룹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보유한 '송현동 땅'의 용도가 바뀌면 땅값은 당초 기대했던 5000억원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영 위기에 이어 송현동 부지 매각 계획 차질로 자구책도 비상이 걸렸다.

재계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28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의 장인인 고(故) 김봉환 전 국회의원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나오는 길에 취재진에게 "(송현동 부지 매수자는) 정해진 게 없다"며 "안 팔리면 가지고 있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를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부지를 '헐값'에는 팔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한진그룹 측은 "여러 조건에 맞는 적당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지 매각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자구안 중 하나인 송현동 부지 매각이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서울시가 이 부지를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서울시는 종로구 송현동에 공터로 있는 대한항공 부지를 도시계획시설상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 27일 열린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북촌 지구단위계획 내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결정안 자문을 상정했다.

서울시는 6월 중 열람공고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한 뒤 올해 안에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사진 연합뉴스]

문제는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대한항공에 1조2천억원을 지원하면서 내년 말까지 2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요구한 상태다.

이에 대한항공은 1조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로 한 데 이어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운영사인 왕산레저개발 지분 등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지난 달에는 매각 주관사로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선정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 경복궁 옆 부지 3만6642㎡(옛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숙소)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천900억원에 사들여 호텔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신축을 추진했다.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시절에도 대한항공은 이 땅에 7성급 한옥 호텔 건립을 추진했다. 한습권 침해 등 규제에 발이 묶여 호텔 건립은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조양호 전 회장이 급작스레 세상을 뜨면서 한진그룹은 위기에 봉착했다. 

2002년 6월 부지의 소유권이 국방부에서 삼성생명으로 넘어간 것부터 따지면 송현동 부지는 20년 가까이 방치됐다.

송현동 부지의 현재 가치는 5천억∼6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항공의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부지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가 부지 매입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치면서 오히려 차질이 우려된다는 것.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연합뉴스]

대한항공은 서울시의 결정으로 송현동 부지 매각에 급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실효성 있는 조기 매각을 위해 매각 대상을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서울시의 경우는 다르다.

앞서 진희선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대한항공이 이 땅을 제3자에게 팔 경우 이를 재매입해서라도 공원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는 지난 3월에도 대한항공에 "민간 매각시 발생하는 개발 요구를 용인할 의사가 없다"며 공매 절차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당시에도 유휴자산 매각은 이사회 의결 절차가 필요한 사안으로, 적정 가격을 받지 못할 경우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입장을 서울시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계획대로 송현동 부지를 도시계획 시설상 문화공원으로 지정하면 민간이 이 땅을 매입해도 다른 개발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진다.

이에 공원 지정이 '땅값 미리 낮추기' 아니냐는 의혹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대한항공이 서울시와의 수의계약이 아니라 당초 계획대로 공개경쟁 입찰을 한다고 해도 과연 누가 공원 지정을 앞둔 부지를 최소 5천억원을 주고 매입할지도 의문이다.

이에 따라 부지 매입 의사를 타진했던 일부 기업도 입찰 참여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어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를 제값 받고 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매각 계획에 재를 뿌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 매입가를 2천억원 미만으로 책정하고 있으며, 매입 대금 지급도 거래 시점이 아닌 자체 감정 평가와 예산 확보 등을 거쳐 2년가량 후를 예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자금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자구계획 마저 서울시가 장애물이 된 셈이다. 

대한항공 측은 명백한 사유지임에도 서울시가 공원화 계획을 밀어붙여 대한항공 매각 계획을 방해하고 가격을 떨어뜨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 매각 대금을 계획대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추가 자구안 마련이 불가피하다"면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나서 서울시의 무리한 계획에 대해 중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