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그랬어야 했었다’가 아니라 ‘지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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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 ‘그랬어야 했었다’가 아니라 ‘지금 하자’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1.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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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만 명 사망과 10억 마리 야생동물의 비극
시드니 항 오페라하우스를 덮은 산불 연기. [사진=그린피스]
시드니 항 오페라하우스를 덮은 산불 연기. [사진=그린피스]

‘사망 23만 명. 난민 150만 명. 모든 인프라 파괴. 국가시스템 마비.’

2010년 1월 12일(이하 현지 시각)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 아이티(Haiti)에 규모 7의 강력한 지진이 강타했다.

‘지금까지 사망 28명. 약 1400채 가옥 파괴. 10억 마리 야생동물 떼죽음. 남한 면적보다 넓은 10만7000㎢ 잿더미.’

2020년 1월 13일, 그린피스는 지난해부터 불타고 있는 호주 대형산불 참상을 담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10년 전의 아이티 지진이나 지금의 호주 대형산불은 피할 수 없는 자연재난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다. 이 모두 기후변화에 따른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로 꼽는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만든 ‘괴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한순간 폭발하면서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인간 활동이 빚어낸 산물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개발에만 집중해 왔다. 산림을 파괴하고 화석연료를 무책임하게 사용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위한 ‘무한 개발’이었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구 최대 열대우림인 ‘아마존’은 난개발로 파괴되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400ppm을 넘어섰다. 지구는 이 때문에 계속 가열(Heating)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기후변화로 이상 기후가 휩쓸고 있다. 유럽에는 폭염이 닥쳤다. 동남아시아와 미국에는 홍수가 덮쳤다. 강력한 허리케인과 태풍은 카리브해와 일본을 강타했다. 심지어 북극권인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도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2010년 아이티에 제대로 된 기상수문 서비스만 있었더라도 23만 명 사망과 15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적 사건에 ‘만약(IF)’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아이티 지진 10주년’을 맞아 무엇보다 날씨와 기후 관련 조기 경보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아이티 국립기상수문청은 2010년 지진 당시 부서졌다. WMO 등의 지원으로 새로 만들어졌다. 새롭게 건립된 아이티 국립기상수문청은 지진이나 강력한 허리케인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기상과 수문 관련 서비스가 이어질 수 있도록 구축했다. 여기에 태양 전지판을 만들어 정전에 대비한 백업 시스템을 마련했다.

WMO가 아이티 국립기상수문청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다. 아이티는 아직 가난한 나라여서 자체적으로 날씨와 기후 관련 예보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할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티는 카리브해에 맞닿아 있어 강력한 허리케인과 홍수 등이 자주 발생한다. 조기경보 등 발전된 기상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심각한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이티는 2010년 지진을 계기로 ‘기후위험 조기경보시스템 이니셔티브(Climate Risk Early Warning Systems Initiative, CREWS)’로부터 약 150만 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2015년 설립된 CREWS는 개발도상국과 작은 도서 국가에 기상정보 시스템 구축 등을 위해 총 4200만 달러를 투자했다. WMO와 CREWS가 가난한 나라를 대상으로 이 같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기후변화를 불러일으킨 원인을 대륙별로 따져보면 북미와 유럽이 70% 이상 책임이 있다. 이 두 대륙의 국가들이 그동안 개발과 발전을 위해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구 가열화의 주요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북미와 유럽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지구 가열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심각한 피해를 보는 곳은 카리브해, 동남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들이다.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나라와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고 있는 나라가 따로 있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과 유럽이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난한 나라에 지원하는 것은 자연이치이다.  

호주의 대형산불은 예고된 재난이라고 국제 연구단체들은 지적한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도 밝혔듯이 그동안 국제 연구단체들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에게 지난 4년 동안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라고 요구한 바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이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 사이 호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했고 기후는 고온건조한 날씨로 바뀌었다. 화재에 취약한 기후로 바뀐 셈이다.

만약(IF) 호주가 국제단체의 지적대로 온실가스 감축안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방어했다면 지금과 같은 산불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 또한 어리석은 물음이다. 다만 4년 동안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줄였다면 지금과 같은 ‘28명 사망, 10억 마리 야생동물 참사, 호주 전역을 뒤덮은 연기’ 등의 표현은 언급되지 않았을 수 있다. 기후변화는 서서히,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된다. 그러다 한순간 폭발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2015년 196개 국가가 파리에 모여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합의한 바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는 ‘아이티와 호주’에만 해당하는 키워드일까. ‘남의 일’이 아니다. 조만간 ‘우리 일’이 될 수 있고 ‘우리에게’ 휘몰아치는 엄청난 재난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나라별 정책은 물론 국제적 협력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진짜 다른 길은 없다. 큰 재난을 겪은 뒤 ‘그랬어야 했어’라고 말할 게 아니다. 지금 당장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야 한다.

WMO 등 지원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아이티 국립기상수문청.[사진=WMO]
WMO 등 지원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아이티 국립기상수문청.[사진=WMO]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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