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
상태바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
  • 편집부
  • 승인 2014.03.19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석 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21세기경영인클럽(회장 김동욱 전 국회 재경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김석동(金錫東)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초청, 2월 조찬회를 개최했다.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를 주제로 한 이 날 강연을 요약한다.

기마민족의 역사

대한민국 60년 현대 경제사와 2,500년에 걸친 유라시아 기마민족의 역사, 그리고 9,000년의 대한민국 고대 역사를 축약해서 말씀드리겠다.

대한민국은 1960년 이후 세계사에 기록될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을 실현했다. 실제로 1960년~2012년 약 50여년 동안 세계 경제가 7.1배 성장한데 반해, 같은 기간 우리 경제는 35.2배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에 79 달러에서 1970년 200 달러, 1977년 1,000 달러, 1996년 1만 달러, 그리고 2007년에 2만 달러를 돌파하고, 지난해 2만4,000 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 기준 한국의 GDP 규모는 1조1,559억 달러로 세계 15위 경제대국이 됐다. 15조 달러의 미국, 8조 달러의 중국, 그리고 약 6조 달러의 일본이 1·2·3위에 있고, 또 독일 프랑스, 영국, 브라질, 러시아, 이탈리아 등이 2~3조 달러 대, 그리고 인도, 캐나다, 호주, 스페인, 멕시코 등이 1조 달러 대로 우리 앞에 위치해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멕시코만 해도 희토류를 비롯한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인구 1억2,000만 명에 영토가 우리나라의 20배에 달한다. 호주도 77배, 캐나다는 100배, 인도 33배, 러시아는 170배의 크기다.

우리의 고성장이 실감 안 날 듯해서 그 동안 세계적인 고성장 사례를 살펴본다. 16세기 세계 GDP가 1.3배 증가하는 동안 스페인은 1.6배 성장했고, 16~17세기 세계 GDP가 1.5배 증가하는 동안 네덜란드가 5.6배, 18~19세기의 영국은 세계 GDP가 3.0배 증가하는 동안 9.4배 성장했다.

 또 19~20세기 미국은 9.5배, 일본은 14.1배였다. 지금까지 소개한 나라들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성장을 통해 강국으로 부상한 국가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960년대 대비 2012년 GDP가 35.2배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세계 GDP는 7.1배 증가했다. 또한 2014년 블룸버그 혁신지수 순위에서 우리가 부동의 1위를 지켰다. 2012년 우리나라 수출액은 5,478억 달러로 2009년 세계 9위로 10위권에 진입했고, 2010년 이후 줄곧 7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5~10위권

1950년대 이후 세계 10대 수출국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신규로 진입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중국 뿐이었다. 그 가운데 한국의 성장 추세는 독보적이다.

우리 경제의 주력 수출 품목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최상위권이다. D램(65.3%), 휴대폰(31.1%), 조선(48.1%), 디스플레이(53.8%)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5.8%) 5위, 철강(4.1%) 6위를 마크하고 있다.

세계 유수 공항에 가 보면 필립스, 소니, 파나소닉 제품이 없다. LG·삼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을 차례대로 나열해 보면 랭킹 5위 안에 3개가 우리나라 작품이다.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이 2012년 5월에 이미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8년 미국 포브스 지가 「세계를 휩쓸 20개 트렌드」 중 하나로 K팝을 선정해 대표적인 문화 상품으로 꼽았다. 그 밖에도 드라마, 영화, 게임, 캐릭터 등으로 한류 상품이 다양화되고 있다.

스포츠도 2002년 월드컵 4강,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5위, 2012년 런던올림픽 5위 등 동·하계 종목을 막론하고 강국으로 부상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5~10위 정도의 수준에 오른 것같다.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원동력을 살펴 보면 우선 근면하고 우수한 노동력과 R&D 투자로 첨단 기술 축적, 그리고 정부 주도의 내·외 자본 등 소위 인력·기술·자본의 GDP 구성 요소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력 면에서 우리나라 공교육비 80조, 사조육비 30조를 쓰고 있다. GDP 대비 교육비 지출 비율이 8%로 OECD 평균 6.2%보다 높다. 대학 졸업생 비율 역시 56%로 OECD 평균 34%보다 높다. 한국인 유학생은 13만7,000 명으로 중국, 인도에 이어 3번째이며 인구대비 유학생 비율은 0.28%로 세계 최고다.

여기에 우리 국민들의 근로 시간은 2011년 기준으로 2,090 시간으로 OECD(평균 1,765 시간)보다 많을 뿐만아니라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2번째다.

기술 부문에서도 2011년 기준 우리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4.03%로 세계 2위를 마크하고 있으며, 절대 규모에서도 미국·중국·일본·독일에 이어 5번째다. 유엔이 평가한 기술 성취도에서도 미국·일본에 이어 3번째이고, 특히 정보통신 기술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ICT지수에서는 세계 1위를 마크하고 있다.

자본은 내·외자를 총동원했고, 정부 주도로 배분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성공 요인은 수출 지향과 미래형 신산업 중심의 투자로 선택과 집중 전략, 그리고 시장·경쟁 친화적인 문화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한국인의 DNA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쟁 친화적 문화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을 채택하고, 철강, 비철금속, 전자, 화학, 일반기계, 조선 등 중화학 공업 중심의 6개 전략적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이들 기업에는 정책금융과 조세감면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2010년 기준 중화학공업 수출 비중이 91.2%에 달했다.

여기에 기적을 만들어 낸 한민족의 특성과 문화를 가진 DNA가 우리 경제 성장의 결정적인 원동력임을 강조하고 싶다.

즉, 경쟁·시장 친화적인 문화, 자립심이 강한 사회 분위기, 강한 성취 동기와 의지, 그리고 단기간에 세계 10대 수출국에 진입하고, 해외 유학 국제 이동인구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일 만큼 대외 지향적 DNA를 지니고 있다.

이는 과거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던 기마민족·초원제국 전사들의 DNA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세계사에서 그 동안 무시됐던 역사로 반드시 복원돼야할 내용이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들의 활동 무대는 유라시아 스텝 대초원 지역 고원 이외의 동서 8,000km로, 여름엔 40도까지 올라 가고, 겨울엔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전쟁 때 외에는 자립심을 갖고 살아 간다.

그 중 알타이 산맥에서 대흥안력 산맥에 이르는 동부 초원에 근거지를 둔 기마 유목민이 우리 민족의 근원이며 용감하고 영리했다.

여기서 기마군단이 등장하는데, BC 800년 경 출현해 대초원을 무대로 평시 1일 200km, 전시엔 1일 40km를 진격할 수 있을 만큼 가공할 기동력과 복합곡궁이란 활을 무기로 세력을 확장해 17~18세기까지 2,500년 간 세계사를 주도한다.

당시 활약했던 영토는 한반도 22만㎢, 만주와 연해주 100만㎢, 몽골과 내몽골 300만㎢, 신장 위구르 170만㎢, 티벳 130만㎢, 중앙아시아 5국 400만㎢, 인도 330만㎢, 터키 80만㎢, 폴란드·헝가리·우크라이나 100만㎢ 등이다.

더 실감나게 말하면, 기마군단 스키타이의 경우 몽골에서 발원했는데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기록하기를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벗어날 수 없고, 그들을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썼다.
이들이 뒤에 나타나는 나라들과 유사하다. 그들의 유물 중 왕관은 신라의 것과 유사하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는 증거다.

기마유목 민족들이 수많은 나라를 세웠다. 동쪽으로 선비, 유연, 수·당 나라, 요, 금, 원, 후금(청)을 세웠다.

흉노와 고조선

서쪽으로 진출한 나라 중 흉노를 보면 사마천의 사기에 「무서운 전투군단」, 「최초의 스텝제국」 등 상세한 기록이 있다. 또 한나라 유방이 흉노를 정벌하러 갔다가 망신을 당하고, 후일 「흉노와 대적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한무제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상고사에 「흉노가 고조선에서 자립하였고, 우리에게서 분리된 동족」이라는 기록이 있고, 신채호 선생은 우리 동포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흉노가 가야와 신라를 건국했다는 학설도 있다.

흉노는 호(胡)라고 하고, 그 중 선비를 동호라고 했다. 터키 교과서에는 흉노가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쓰여 있다.

흉노가 멸망한 후 잔존 세력이 서진해 훈 제국이 건설된다. 독일 ZDF TV에서 「비밀스런 아시아의 초기 역사에서 훈족의 실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세인의 주목을 끈 고고학적 발굴물이 그들의 원래 고향은 아시아 대륙의 최동단일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한국의 작은 도시 경주 근교의 묘에서 부장품으로 점토상이 발굴되었다」라고 방송됐다. 훈족의 유럽 침공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발생했다.

그 다음 나타난 것이 돌궐이다. 552년에 건국돼 서돌궐이 셀주크제국·오스만제국 등 유라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이들은 고구려와 동맹을 맺는다.

동쪽으로 건설한 나라를 소개하면 선비도 우리나라의 계보다. 이들이 북위, 연나라, 몽골, 요 나라로 갈라진다.
금 나라는 신라 후예인 김아골타가 만든 나라다. 1900년대 초만 해도 금나라 역사를 한국사로 가르쳤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만주 길림성은 신라의 계림을 말한다.

 그 후 몽골 제국이 나타났다. 3,300만 평방미터의 세계제국으로 이 몽골군과 싸워서 1주일을 버틴 나라가 없다. 그리고 패전국과 군신 관계를 유지했는데, 유독 고려와는 39년 간 전투를 하고 그 후에도 군신이 아닌 형제 관계를 유지했다. 놀라운 일이다.

몽골 후예들이 티무르 제국을 건설하고, 티무르 후예들이 세운 것이 무굴제국이다.

그 후 후금이 세워지는데, 이를 세운 누르하치의 성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왕 선통제의 푸위의 성도 애신각라다.

동이족의 후손들

이제 한민족의 고대역사를 살펴 보고자 한다. 한민족의 기원은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바이칼호·몽골 지방으로 추정하는 견해와, 파미르 고원으로 보는 설, 그리고 신채호 선생은 단군 자손인 부여족이 다른 5족을 정비하고 동국 역사의 주류가 됐다고 보는 설이다.

중국 기록에 동이족(東夷族)이 나온다. 황하족 동족에 거주하던 이민족으로 동방 역사의 주류로 고조선 건국시 우리 민족의 원류에 포함된다.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산동성, 하북성 발해 연안, 하남성 서북, 안휘성 중북부, 호북성 동쪽, 요동반도, 조선반도로 기록돼 있다.

동이족 활동 무대에서 BC 7000년경 유물이 나왔다. 그 중 홍산 문화, 하가점 하층 문화에 관심을 가져 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와 직결돼 있다. 하가점 하층 문화는 홍산 지역 적봉 근교에서 BC 2400년 경 중앙집권 국가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유물이 나왔다. 그것이 고조선을 의미한다.
 

또 1983~1985년 사이에 홍산지역 「우하량」에서 BC3500~BC3000년의 대규모 유물이 발견됐는데, 계급이 완전 분화돼 있고, 사회적 분업이 이뤄진 흔적이 있는 초기 문명 유물로 세계를 놀라게했다.

우하량 유역 홍산문화는 「배달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음을 입증한다. 중국이 이 때문에 놀라 그때부터 10년을 연구한 끝에 1995년 역사공정(歷史工程)을 시작한다.

고구려, 고조선 역사를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무방비다.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고조선 등 사라진 고대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

환국은 서쪽으로 천산, 북으론 바이칼, 남으로 황허강, 동으로 대흥안령 산맥을 경계로 하고 있다. 7명의 환인이 있었다고 나온다.

배달국은 환국 이후 천해 주변에서 인구 증가와 물자 부족 등으로 동방으로 이주한 환국이 건국했다. 초대 환웅천황 이후 18대 환웅이 통치했는데, 14대 치우천황은 청동기와 철기로 무기를 개발해 강력한 전투력으로 중원을 정복했다.

그리고 고조선이 있었다. 러시아 등에서 고조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역사책에는 단군에 대한 기록이 1페이지 신화 비슷한 표현으로 나온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우리의 고대사 연구 시급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보면, 고조선이 BC 4세기경 진한(진조선), 마한(마조선), 번한(번조선)으로 분리됐다고 한다. 진조선 중심으로 운영되다 너무 커서 3한으로 나누는데, 마한에 기자의 후예가 왕이 된 적이 있다. 기자 조선을 위만이 쳐 들어 와서 한4군을 설치한다. 대한민국의 국사책에 위치를 잘못 가르쳐 주고 있다.

고조선 이름이 대부여로 바뀐 후 많은 부여사가 나오는데, 우리나라가 부여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고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처사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 고대사는 기록이 없다. 돌궐 때 처음 글이 있었고, 조선조에 고대 서적을 없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동북아 최고 국가, 아시아 최강의 국가를 건설한 나라다. 진, 한, 명, 송 등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며 고생을 하다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건설했다. 이것은 교류와 협력을 통해 소수 민족을 포용함으로써 가능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고 협력함으로 짧은 역사에도 세계적인 국가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조선이란 세계적인 국가에서 국력과 문화에서 열세를 보이며 위축되었다가 최근 다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강력한 나라를 건설했다.

앞으로 2015년 스페인, 2031년 영국, 2039년 독일, 2049년 일본을 뛰어 넘어 통일한국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DNA가 살아 있어야 한다. 세계와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편집부  jwycp@hanmail.net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