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의 유럽이야기] 세계 갑부들 ‘제발 세금 좀 더 걷어가줘요’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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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의 유럽이야기] 세계 갑부들 ‘제발 세금 좀 더 걷어가줘요’ 호소
  •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 승인 2024.01.20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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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다보스 참가 억만장자들, 부자 증세 원해
- 빈부격차 최소화가 민주주의 유지에 기여한다는 불변의 상식에 기초

[스위스 다보스] ‘아홉 섬 추수한 자가 한 섬 추수한 자더러 그 한 섬을 채워 열 섬으로 달라 한다’ ‘돈 주머니가 크다고 인심도 후하랴‘ ‘재떨이와 부자는 모일수록 더럽다’ · · ·

흔히 소설과 드라마 속에서 부자는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천성 고약하고 욕심 많은 악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런데, 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고 싶다는 ‘의외’의 공개 성명을 발표해 화재다. 

2024년 세계경제포럼 연례 행사 중 글로벌 보안 회의를 경청하는 관중 모습. 1월18일 스위스 다보스 수도원 콩그레스 센터 아스펜 2. Copyright: World Economic Forum/Ciaran McCrickard
2024년 세계경제포럼 연례 행사 중 글로벌 보안 회의를 경청하는 관중 모습. 1월18일 스위스 다보스 수도원 콩그레스 센터 아스펜 2. Copyright: World Economic Forum/Ciaran McCrickard

올해인 1월 17일 수요일, 연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이하 WEF) 행사에 참가한 백만장자 및 억만장자 슈퍼리치 인사 250명은 비즈니스 인맥 관리 소셜네트워크 링크드인(Linkedin)과 프라우드 투 페이 모어(ProudtoPayMore.org) 사이트를 빌어 자발적으로 세금을 더 내고 싶다고 호소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전 세계 17개국서 모인 초고소득 초갑부층 인사들로 구성된 캠페인 단체인 프라우드 투 페이 모어는 이 성명서에서 올 다보스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참가 정치인들을 향해 슈퍼리치들은 세계적으로 양극화 추세에 있는 극도의 빈부 격차는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환경적 해악을 끼친다고 말하고, 고소득자 슈퍼리치의 부를 사회 인프라 구축과 복지에 활용할 수 있는 납세제도와 자선제도 개선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자와 일반인들 사이의 소득 격차가 더 심해졌다. 

특히 2022년부터 더 큰 부를 누리게 된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일부 백만장자들은 사회 최고 부유층의 재산에 대한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해 가달라고 자발적으로 촉구하는 일이 잦아졌다. 

원래 고소득인데다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나 채권의 투자 가치액 증가와 배당금 수익으로 더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2년 사이 급증하면서 자산보유성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급격히 늘었다. 투자 수익을 통해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의 대열에 올라선 이들 고소득 부자들이 협회를 구성했는데, 이 단체가 바로 프라우드 투 페이 모어다. 

이 단체에는 디즈니 컴퍼니의 상속녀인 애비게일 디즈니, 영국 출신 배우 브라이언 콕스와 사이먼 펙, 오스트리아 제약회사 BASF의 상속녀 마를레네 엔겔호른, 로커펠러 가문의 재산 상속녀인 발레리 로커펠러도 속해있다. 옥스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전 세계 톱5 최고 부자의 재산은 그 전 보다 두 배인 총 7,930억유로(우리 돈 약 1,160조원)로 불었다(자료: Oxfam, 2022년).

英 설문조사 기업 서베이션(Survation)이 부자 증세를 지지하는 백만장자들의 모임 패트리어틱 밀리어네어(Patriotic Millionaires)를 상대로 실시한 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억만장자 부의 2% 징세 도입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74%는 부자 증세로 빈민 생계 지원과 공공 설비 개선에 활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소수의 인구에게 과도하게 부가 집중되는 것은 악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패트리어틱 밀리어네어 회원들도 정치적으로 볼 때 극단적인 부의 쏠림과 빈부 격차는 사회 구조를 좀먹는 위협이라고 본다. 그들은 억만장자들이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사서 권력 행사에 사용한다고 여기며, 이는 궁극적으로 민주적 사회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54%).

'바니타스' 인생은 짧고 덧없는 순간. 기독교 사상 영향권의 유럽의 중산층들은 부와 성공을 이루어도 늘 근면성실하고 겸소하라는 금욕의 교훈을 암암리에 간직하고 있다.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에드바트 콜리에(Edwaert Collier)의 작품 '바니타스 정물화', 1662년 작. 소장: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opyright: Public Domain
'바니타스' 인생은 짧고 덧없는 순간. 기독교 사상 영향권의 유럽의 중산층들은 부와 성공을 이루어도 늘 근면성실하고 겸소하라는 금욕의 교훈을 암암리에 간직하고 있다.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에드바트 콜리에(Edwaert Collier)의 작품 '바니타스 정물화', 1662년 작. 소장: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Copyright: Public Domain

유사한 정치적 의도는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미(美) 전(前) 대통령 집권 시절(2008~2016년)에도 있었다. 워런 버핏은 나라 빚을 부자에게 세금 징수액을 올려 받아 충당하려는 당시 민주당의 ‘부자 증세’ 정책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 후 2022년 봄, 역시 민주당 출신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부자 증세 도입 추진에 나섰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다.

우리나라 옛 속담에 ‘인색한 부자가 손쓰는 가난뱅이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진정 남을 도우려면 선한 마음만 아니라 돈이 있어야 하는게 현실. 인색해 보인다한들 남과 나눌 물적 여유가 있는 부자가 도움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글로벌 슈퍼리치들은 유럽 17세기 번성한 중상주의 시대 교훈 삼았던 ‘삶의 덧없음(vanitas)’과 ‘죽음의 필연성(memento mori)’의 가치를 21세기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극심한 경제난, 빈부 격차, 민심 붕괴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과 기득권층을 대거 처형시킨 단두대에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2024년 연초, 돈이라는 상업적 거래 수단이자 통화 심벌에 담긴 영혼적 의미와 실리주의적 용도 사이에 담긴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가운데, 세금을 더 내고 싶다고 호소하는 부자들의 호소에 앞으로 정치가들은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예의주시된다.

박진아 유럽 주재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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