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우 칼럼] 구광모 회장 향한 '세 모녀'의 반란...'LG家 장자'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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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우 칼럼] 구광모 회장 향한 '세 모녀'의 반란...'LG家 장자'의 고뇌
  • 박근우 기자
  • 승인 2023.03.19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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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씨 가문은 대대로 유교 전통의 집안, '장자 승계' 원칙 이어져
- 글로벌 LG의 미래 책임져야 하는 '운명'...'세 모녀 반란'은 과제

"거대한 돈 앞에 전세계 누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LG 가문의 상속 분쟁에 대해 한 기업분석 전문가는 이렇게 단언했다. 

요즘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은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일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두 여동생에게 상속회복청구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에 아픈 가족사가 스칠 수 밖에 없다. 

세 모녀는 친어머니, 친여동생이 아니다. 어쩌면 세 모녀는 구광모 회장을 상속자로 인정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상속회복소송은 참칭상속인(일종의 가짜 상속인)에게서 상속 권리를 돌려받겠다는 최고 수준의 법적 대응이다. 

'세 모녀의 반란'이란 말이 나오는 지점이다. 1947년 LG그룹 창립 이래 가족 간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재벌가에선 재산을 두고 가족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LG는 75년간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LG 이미지는 삼성 등 주요 그룹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LG 임직원들은 물론 일반 대중이 '세 모녀의 소송'에 놀랄 수 밖에 없던 이유다. 

LG가(家)는 왜 '장자(長子)  승계' 후계자 전통과 원칙을 지켜야 했을까? 

고(故) 구인회 창업주는 5형제의 장남이었다. 구인회 창업주는 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해 6남 4녀를 낳았다. 구자경 LG 2대 회장은 자녀가 4남 2녀였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대부분 가정에 자녀가 많았다. 

생전의 구자경 LG 2대 회장(왼쪽)과 구본무 LG 3대 회장

또 구인회 창업주의 집안은 대대로 문인들을 배출한 유교 가풍이 강했다. 가령 구인회 창업주의 할아버지 구연호 씨는 문과 급제 후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 등을 지낸 선비였다.

LG 가문이 유교 가풍에 따라 '장남 승계' 원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까닭이다. 자녀 사이에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LG는 경영철학으로 '인화(人和)'에 이어 '인간존중의 경영'을 지금까지 잇고 있기도 하다. 

구광모 회장은 왜 이런 처지가 됐을까? 

구인회 창업주 이래 고(故) 구자경 LG 2대 회장과 고(故) 구본무 LG 3대 회장도 모두 장자였다. 

구광모 회장은 당초 LG 구씨 가문의 장자도 장손(長孫)도 아니었다. 친아버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구자경 회장의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구광모 회장은 LG그룹 후계자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구본무 회장에게는 장자인 외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1994년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구본무 회장은 아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1996년 51세 나이에 딸 구연수 씨를 낳았다. 

구광모의 비애는 여기서 시작됐다.

LG 테크콘퍼런스에 후드티, 청바지 등 복장으로 참석한 구광모 LG 3대 회장

그리고 2004년 당시 구본무 회장은 조카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했다. LG 경영 후계자로 낙점된 것. 구광모의 나이 26세 때 였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장남에게 아들이 없을 경우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차남의 아들을 양자로 데려오는 경우가 흔했다. 구광모 회장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단초였다. 

그렇게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당시 1978년 1월생인 구광모와 불과 한 달 차이로 여동생이 됐다. 이미 성인이었던 구연경 입장에선 이해가 힘든 상황일 수 있다. 

구광모는 이미 친부모가 있는데 20대 나이에 양부모는 물론 새로 두 여동생과 지내야 한다는 것이 상상을 초월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이다. 양부모가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

구광모는 LG전자 과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한 중소기업의 장녀 정효정과 결혼했다. 정효정 씨는 미국 유학 시절에 그의 '정신적 아픔'을 이겨내도록 해준 여자였다. 또 LG 가문에서 드문 연애결혼이었다. 

LG그룹 오너 가족들이 지난 2012년 4월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의 미수(米壽·88세)연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앞줄 왼쪽에서부터 당시 구본무 회장 부부,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의 장녀 구연경씨. 뒷줄 왼쪽부터 구본준 LX홀딩스 회장 부부, 구광모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부부

이렇듯 시대가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 요즘은 자녀가 1~2명에 불과하다. 아들 딸 구분없이 '능력에 따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앞으로는 '장자 승계' 전통이 이어지긴 어려운 상황이다. 

구광모 회장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픈 가족사의 중심에 서야 했다. 그리고 그는 책임감으로 LG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LG의 미래를 향한 글로벌 세상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모녀의 반란'도 그에게 주어진 과제일 뿐이다. 

박근우 녹색경제신문 전문위원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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