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부족이 불러온 나비효과 … “재생에너지 전환 연기, 전력난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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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부족이 불러온 나비효과 … “재생에너지 전환 연기, 전력난 심화”
  • 이준용 기자
  • 승인 2022.06.1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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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재생에너지 전환 프로젝트 속속 연기 … “전기 저장할 배터리 부족”
- 전기차 보급 확대·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 겹쳐 …“캘리포니아, 하와이 등 상황 심각”
- 올여름 무더위로 전력 수요 급증하며 전력난 예상되는 것도 문제 … “영국·유럽 등도 비슷”
- 한국도 올여름 폭염으로 전력난 예상 … 재생에너지 정책 논의 없어 ‘우려’
- “재생에너지 전환 탓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아” 지적도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의 토파즈 솔라팜 태양광 발전소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 시설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의 토파즈 솔라팜 태양광 발전소 [사진 제공=위키피디아]

재생에너지 전환 발목 잡은 ‘배터리 부족’ … 전기 저장에 차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의 여파가 거세다. 이번엔 이미 세계 각국의 정책 기조로 자리 잡은 탄소중립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역설적이게도 제일 먼저 타격을 입게 된 건 재생에너지 전환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미국이다. 로이터(Reuters)는 미국의 에너지 개발사들이 최근 몇 달 동안 배터리 부족을 겪으며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속속 연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배터리가 부족해 전기 저장이 어려워지자 재생에너지로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흐름이 중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태양열과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의 경우 전기를 저장하는 설비가 필수적이다. 국내 한 업계 관계자는 “(태양열이나 풍력 발전은) 날씨나 시간에 따라 발전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충전이 이루어질 때 전기를 저장해뒀다가 밤이나 비가 오는 날, 혹은 바람이 없는 날 등 발전율이 낮은 때 저장한 전기를 사용하는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한국처럼 계절 변화가 크고 인구 밀집도가 높아 전기 사용량이 많은 지역권에서는 당연히 이런 변동이 더 크다”고 짚었다.

때문에 미국의 상황은 배터리가 부족해지며 전기 저장에 차질을 빚자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 역시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떨어지게 되면 203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바이든 미 행정부의 계획도 실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이미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한껏 높아진 지역은 더욱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하와이, 조지아 등의 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기차 보급 확대·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 겹쳐 … 공급망 대란의 종착역은 배터리?
배터리 업체들 안정성 탓에 ‘전기차 업체 선호’

이같은 배터리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는 러시아나 중국의 상황 등 국제정치적 이슈부터 전기차 수요 확대와 원자재 값 상승 등 다양한 경제적·정책적 요인이 꼽힌다.

먼저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배터리 수요가 급증한 점이 수요 측면에서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배터리 생산 업체들은 정부 정책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재생에너지 전환 부문보다 비교적 예측 가능한 전기차 생산 부문에 납품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배터리 수요가 늘면서 재생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배터리 공급이 부족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생산업체들 입장에서는 정치적 요인이나 글로벌 이슈 등으로 순식간에 큰 변화를 보일 수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과의 협력보다 계약을 통해 미리 주문량을 확정하고 향후 변동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전기차 업체와의 계약이 더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며 “가격 변동에 대한 대응도 전기차 업체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격이 오를 때 ‘값을 더 쳐줄 수 있는’ 쪽도 전기차 제조업체라는 얘기다.

물론 결정적인 요인은 역시 세계 공급망 대란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중국 내 생산 및 운송이 중단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값이 상승하면서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테슬라와 플루언스(Fluence) 등 미국의 배터리 ‘큰 손’들은 공급망 이슈로 배터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산 활동이 어렵다는 진단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올여름 무더위로 전력 수요 급증하면 ‘전력 대란’ 올 것”
미국 전력난으로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이 타격입는 ‘이중고’도 우려

올여름 전 세계적인 폭염이 예상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미 전력 생산이 차질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 그야말로 전력 대란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미 미국 미시간주 등에서는 전력난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시간 당국과 지역 전력회사 등의 분석에 따르면, 미시간주에 현재 공급되는 최대 전력은 119GW(기가와트) 수준인데 올여름 전력 수요는 최고 124GW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캘리포니아, 하와이, 조지아 등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미시간주 역시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높은 편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이 지역들에 배터리 생산 공장이 다수 입지해있어 전력난이 다시 배터리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마저 예상된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미시간주 배터리 공장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미시간주 배터리 공장 [사진 제공=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주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운영하며 대규모 증설 투자까지 계획하고 있는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해 배터리 공장을 신설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에 26억 달러(약 3조3천억 원)를 들여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짓기로 했고,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에 운영하던 배터리공장 생산 능력도 현재의 5배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하지만 정전사태가 장기화된다면 당장 LG에너지솔루션이 기존에 운영 중인 미시간 배터리 공장부터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멈추거나 축소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당연히 LG에너지솔루션이 새로 건설하거나 증설하는 배터리 공장 투자 계획도 이를 고려해 속도를 늦추거나 투자 규모를 축소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가뜩이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배터리 공급이 더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이 경우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가 더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전력난 자체가 심화되리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영국과 유럽 지역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 지역은 미국만큼 재생에너지 전환 및 에너지 저장 규모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적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한국도 상황 비슷한데 재생에너지 논의 없는 점 우려”
“전력난 원인으로 재생에너지 전환 탓하는 것 바람직하지 않아”

한국도 올여름 폭염이 예상되고 있고, 도심이 발달한 데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제조업체도 다수 운영되고 있어 전력난을 겪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이웃인 일본에서는 전력난이 현실화되며 정부가 “가정 내에서 TV와 에어컨 등을 (1대만 켜고) 가족들이 모여 사용해달라”고 읍소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전력난이나 ‘블랙 아웃(대규모 정전)’에 대한 우려만 있을 뿐 에너지 정책 전반이나 재생에너지 전환 등에 대한 거시적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언론에서 ‘블랙 아웃’ 등의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불안감을 높이고만 있지 이렇다 할 대책은 없다”며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결국 ‘전기를 아껴쓰자’는 식의 유치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탄소중립이 레토릭(정치적 수사)화되면서 실질적인 정책이 실종되고 있는 데다, 원전 문제 등이 정치적 쟁점이 되면서 에너지 문제가 수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일부 언론과 이익집단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전력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이들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성급하게 진행돼 전력난이 초래됐으며, 재생에너지 전환을 연기하거나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전력난이 현실화될 경우 이 같은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전환이 문제가 아니라 국내외 이슈로 인한 배터리 부족 사태나 (석유 등) 에너지 수급 불안정이 원인”이라고 짚으며 “이런 사태까지 예견하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해야 한다는 건 영원히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태양열과 풍력 발전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태양열이 전체 발전량의 3% 미만에 그친다고 하지만, 햇볕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장 전력 사용량이 높은 한여름 오후에는 전력 대체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며 “여름철 정전 방지 등에는 효과가 크다고 본다”고 밝혔다.

결국 탄소중립이 세계적인 트렌드이자 ‘가야 할 길’임이 분명한 상황에서 국내외 이슈로 인한 일시적 전력난을 이유로 재생에너지를 공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에너지 불안정과 공급망 대란이 재생에너지 전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정부가 재생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을 전제로 한 종합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름철 정전 우려’ 등의 구호만 내세울 경우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이준용 기자  lycao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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