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이야기] 화가를 꿈꾸던 소년 김봉진, 한국 넘어 아시아 배달 황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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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이야기] 화가를 꿈꾸던 소년 김봉진, 한국 넘어 아시아 배달 황제 되다
  • 양현석 기자
  • 승인 2021.09.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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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비전CEO, 글로벌 기부 클럽 ‘The Giving Pledge’ 한국인 최초 가입
전단지 배달 시장을 IT 산업으로 변신시킨 5조원 가치 기업 창출... 혁신 스타트업의 상징
급성장 배달 플랫폼 생태계 ‘명’과 ‘암’ 공존... ‘배달의민족’ 매각 후 ‘DH’와의 행보 주목

‘별의 순간’이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선대의 말 한마디가 웅장한 울림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책에서 읽은 한 구절 또는 사소한 이벤트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별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기업인에게도 별의 순간이 있다. 이 별의 순간은 기업인 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가미래까지 변화시키는 ‘터닝 포인트’다. 산업을 재편하고, 일반인의 일상과 사회의 미래까지 바꾸는 거대한 수레바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별의 순간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애플의 아이폰을 보고는 스마트폰 시대에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카카오톡을 창업한다. 단순한 생각이 그에게는 카카오를 국민 메신저로 자리잡게 하는 터닝 포인트였다.

<녹색경제신문>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움직이고, 결정하는 주요 기업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오늘 그들의 성공을 가져온 터닝 포인트와 위기에 임하는 그들의 자세 등을 다루는 ‘CEO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註(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VCEO.[사진=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VCEO.[사진=우아한형제들]

화가를 꿈꾸던 소년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전문적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공고에 진학했으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소년은 뒤늦게라도 디자인을 공부해 서울예전에 진학해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30대가 된 소년은 당시 아이폰의 등장으로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자, 전단지를 대체할 앱 개발에 착수했고, 그 결과물이 국내 배달시장을 석권한 ‘배달의민족’이었다. 2010년 전직 디자이너 김봉진은 배달앱 스타트업 창업자로 변신했다.

우아DH아시아 조인트벤처 경영구조 다이어그램.
우아DH아시아 조인트벤처 경영구조 다이어그램.

◆ 터닝 포인트- 경쟁자였던 ‘DH’로의 인수... “배민이 아니라 김봉진을 샀다”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초창기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출시 초기에는 소비자가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직원들이 일일이 해당 가게로 다시 전화를 걸어 실제 주문을 넣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경쟁 앱에서 통화 없이도 실제 앱 화면 터치만으로 주문까지 가능한 기능을 내놓으면서 김봉진을 당황케 했다. 경쟁 앱의 새로운 기능에 이용자가 이탈할 것을 염려한 김봉진은 임시방편으로 앱 상에서는 일단 이용자가 화면 터치로 주문을 끝내는 것처럼 보이게 해 놓고 실제로는 여전히 배민 직원들이 음식점에 전화해 주문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2~3개월을 보냈다고 한다.

2010년대 초반 배달 앱 시장은 배민과 요기요, 배달통 3파전이었다. 요기요의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 코리아가 배달통을 인수하면서 배민과 DH의 치열한 전면전이 발발했다.

두 배달 앱은 치열한 홍보와 마케팅 경쟁을 펼쳤다. 요기요가 연예인 빅모델을 활용한 광고로 물량공세를 펼쳤다면, 배민은 김봉진의 디자인 능력을 활용해 만든 캐릭터로 맞대응했다. 광고전의 승자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카피를 유행시킨 배민의 승리로 돌아갔다.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배달앱 시장은 배민, 요기요, 배달통 순서로 6:3:1 구도로 고착화되고 있었다. 전면전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국지전은 계속됐다. 일례로 2019년 여름, 배민이 배민장부를 론칭하면서 식당 점주들에게 요기요의 ID와 비밀번호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두고 두 배달 앱은 수 개월간 신경전을 펼쳤다.

요기요의 운영사인 DH는 아예 배민을 인수하기로 했다. 김봉진 등 경영진의 지분 13%를 포함한 배민 총 지분 중 87%를 40억 달러(약 4조7500억원)에 인수한 것. 이중 김봉진 등 경영진의 지분은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김봉진은 DH 경영진 가운데 개인 최대 주주(9.9%)가 됐으며, DH 본사에 구성된 3인 글로벌 자문위원회의 멤버가 됐다.

이런 특이한 형태의 M&A로 인해 세간에서는 “DH가 산 것은 배민이 아니라 김봉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DH가 진출한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1위를 하지 못한 한국에서 김봉진이라는 개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거금을 들여 ‘같은 편’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 김봉진 우아DH아시아 의장.[사진=김봉진 페이스북]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 김봉진 우아DH아시아 의장.[사진=김봉진 페이스북]

◆ 성공과 위기- 수수료 폐지 후 직원들 월급 걱정... 1년 후 첫 흑자로 ‘전화위복’

김봉진의 배민은 창사 이후 줄곧 시장 1위를 달렸다. 배달 앱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배민은 새로운 산업이자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 만큼 그 ‘명과 암’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배달 앱, 즉 배달 플랫폼의 주 수익원은 수수료 수입이다. 배민도 건당 수수료와 정액 광고비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중 수수료 수입이 약 30%에 달했다. 그러나 배달 앱이 과도한 수수료를 받는다는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배달 앱 1위 배민에게도 비난이 쇄도했다.

김봉진의 결정은 수수료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2015년 8월 배민이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배민 주요 주주 중에서도 큰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거의 이뤄졌던 대규모 투자도 수수료 폐지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다. 실제 수수료 폐지 이후 약 반년간 배민은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할 정도로 위기에 처했으나, 이듬해부터는 오히려 이 정책이 호재로 작용해 매출이 2015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고, 첫 흑자를 기록하면서 전화위복이 됐다.

영상을 통해 송필호 희망브리지 의장(오른쪽)과 함께 한 노트북 1만대 전달식.[사진=우아한형제들]
영상을 통해 송필호 희망브리지 의장(오른쪽)과 함께 한 노트북 1만대 전달식.[사진=우아한형제들]

◆ 향후 과제- 배민 비전CEO와 우아DH아시아 의장, 기부자로서의 삶 이어갈 듯

DH와 배민(우아한형제들) 인수합병 합의에는 양사가 50:50으로 출자해 싱가포르에 '우아 DH 아시아'(Woowa DH Asia)라는 이름의 합작회사(joint venture)를 설립하는 내용의 글로벌 진출 파트너십도 포함됐다.

김봉진은 신설 우아DH아시아의 의장 자격으로 한국, 베트남, 베트남을 비롯해 대만, 라오스,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홍콩 등 양사가 이미 진출해 있는 아시아 11개국 비즈니스 전반을 이끌고 있다. ‘아시아 배달 왕’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위치에까지 올랐다.

김봉진은 배민 지분 매각으로 엄청난 현금을 챙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봉진은 DH 본사 주식을 획득하는 것을 택해 여전히 싱가포르에 주로 머무르며, 배달 산업을 이끌고 있다.

김봉진의 기부도 화제다. 2017년 김봉진은 100억원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지켰다. 올해 2월에는 더 나아가 10억 달러 이상의 자산가면서 그중 절반 이상의 기부를 약속해야 가입할 수 있는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한국인 최초로 가입했다.

김봉진의 기부는 올해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재산 절반 이상 사회 환원 약속’의 첫 이행 방안으로 저소득층 학생 1만명에게 고성능 노트북을 지원하고, 외식업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치료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장님들께 의료비와 생계비 지원으로 1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5000억원 이상의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김봉진의 약속은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배민 매각 이후 ‘배민 비전CEO’와 ‘우아DH아시아 의장’, ‘거액의 기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봉진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아마 이 답은 김봉진이 자신을 소개하는 ‘경영하는 디자이너 / 과시적 독서가 / 푸드테크 창시자’라는 문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양현석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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