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 두산중공업의 행복과 정의
상태바
[정종오 칼럼] 두산중공업의 행복과 정의
  •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 승인 2020.03.31 0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산중공업이 창원에 국내 첫 수소액화플랜트 실증 사업에 나선다. 하루 0.5톤 규모의 액화수소를 생산해 수소충전소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의 에른스트 페르(Ernst Fehr) 경제학자가 어느 날 신문을 보고 있었다. 뉴스를 보는 내내 붉으락푸르락 얼굴에 잔뜩 화가 묻어났다. 인터뷰를 위해 곁에 앉아 있던 과학 칼럼니스트 슈테판 클라인이 그런 모습을 보고 물었다.

“왜 그렇게 분노하는 거예요?”

페르 교수는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답했다.

“경영자 상여금 논란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자기 회사를 망쳐놓은 사장들이 상여금으로 수배만 유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식적이지 않아요.”

그렇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회사를 망쳐놓은 사람도 수십억 원의 상여금을 받을 수 있다. 경영을 잘못해 회사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가더라도 정부가 앞장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준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페르 교수는 이를 두고 지금은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 ‘도덕적 위기’라고 지적했다.

두산중공업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 원의 대출 등 지원을 약속받았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몇 년 동안 수주 실적이 매우 나빴다. 세계 경쟁력을 상실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정부 탓으로 돌린다. 두산중공업은 석탄과 원전 발전설비를 중심으로 한 기업이다. 은근히 문재인정부의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으로 두산중공업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정부 정책의 큰 변화로 ‘선의의 피해자’가 됐다는 표정까지 짓기도 한다. 두산중공업 위기는 문재인정부 이전부터 조금씩 진행돼왔다는 게 일반적 견해이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는 두산중공업 사태는 이미 예견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9년 세계 석탄발전 가동률은 5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발전소 착공량은 2015년과 비교했을 때 66% 급감했다. 2018년 전 세계에서 투자가 결정된 석탄발전 설비 규모는 2015년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한땐 석탄발전이 잘 나갔는데 이젠 ‘아! 옛날이여’가 돼 버렸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세계 전력 설비 투자의 40%를 차지한다.

두산중공업은 눈에 보이는 이익만 좇았다. 해외 석탄발전소 건설 수주에 집중했다. 재무 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경영 체질 개선은 없었다. 현재 두산중공업의 전체 사업 부문에서 석탄발전 건설은 70% 비중을 차지한다. 석탄에 매몰된 사업 구조는 그 실패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5년 동안 2조60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주가는 10년 동안 무려 96%나 하락했다고 그린피스 측은 분석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라는 말도 어불성설이라고 그린피스 측은 주장한다. 두산중공업은 2017년 탈원전을 내용으로 한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발표하기 이전인 2014년부터 이미 마이너스 순이익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두산중공업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원전사업 비중은 10%대에 머물렀다고 진단했다. 즉 원전사업이 두산중공업 경영 악화의 주요 원인도, 해결책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린피스는 2017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예로 들었다. GE는 전력시장에 대한 평가가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석탄발전 사업을 접었다. 대신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며 대대적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독일 지멘스는 사회·정치적 측면을 고려해 원전사업을 포기했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더 강화했다.

두산중공업의 첫 번째 위기는 전 세계 에너지 시장 흐름과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데 있다. 두 번째는 현실에만 안주하고 미래는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두산중공업 위기의 핵심이다. 이런 두산중공업에 산업은행은 자그마치 1조 원에 이르는 지원책을 내놓았다. 회사를 망쳐놓은 사장들이 수백만 유로의 상여금을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물론 1조 원의 지원을 받는 대신 두산중공업은 자구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린피스 측도 두산중공업은 GE와 지멘스 등의 사례를 거울삼아 지탱할 수 있고 성장이 높은 에너지 설비 부문으로 사업 전환을 즉각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산중공업은 1조 원의 지원으로 당장 급한 불은 껐다. 자구책 마련과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또다시 위기는 찾아올 수밖에 없다. 당장 1조 원의 지원금이 통장으로 들어오니 행복한 표정을 남몰래 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산중공업 직원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6800명 정도. 1조 원은 직원 1인당 1억4705만8823원에 이르는 지원 규모이다.

페르 교수는 행복이 ‘사적 재화’라면 정의는 ‘공적 재화’라고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은 행복이라는 사적 재화를 넘어 이제 정의라는 공적 재화를 생각할 때이다.

두산중공업은 30일 주주총회를 열고 1조 원의 빚을 빨리 갚겠다고 다짐했다. 최형희 두산중공업 대표(부사장)는 주주총회에서 “안정적 사업구조와 신사업을 50%까지 확대해 1조 원의 빚을 빨리 갚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영진 보수 한도 80억 원은 유지됐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연봉 15억 원도 주주총회에서 무사 통과됐다. 어려운 형편에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대한 빨리 갚겠다고 천명하면서도 챙길 것은 다 챙기는 모습이다. 고통 분담이란 상식적 태도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자기 회사를 망쳐놓은 사장들이 상여금으로 수배만 유로를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science@greened.kr

▶ 기사제보 : pol@greened.kr(기사화될 경우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 녹색경제신문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