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대한 위기설이 점차 실체화 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고 청년취업률이 감소하는 등 내수시장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분야에서 잇따라 경고음이 흘러나오면서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중국의 추격이, 자동차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과 친환경차 분야에서의 경쟁력 부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 미중간 무역전쟁이 주력 수출품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정부의 인식이 안일한다는 지적도 쏟아지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영업이익은 2조3000억원 대로 추산된다. 전년 대비 1조7000억원, 전분기 대비 1조4000여억원 가량 줄어든 수치다.
D램을 필두로 한 반도체 분야는 여전히 호실적을 기록중이지만, 낸드플레시 업황은 둔화세로 돌아섰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언제부터 영향을 미칠지도 관건이다. 수년 전부터 위기설이 흘러나왔던 디스플레이가 최근 중국에 역전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차의 경우 증권가에서는 2분기 영업이익 9581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시장 예상치를 소폭 밑도는 실적이다. 미국에서 반등 기미가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회복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높은 인센티브가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스마트폰은 수 년 전부터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가성비와 거대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은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업체들의 기술발전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가성비를 앞세워 이머징 마켓 공략부터 시작한 중국 스마트폰은 아직 프리미엄 시장 안착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인도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앞지르고 1위를 차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아직까지 상용화에 나서지 못한 지문인식 센서 내장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후면 트리플 카메라, 전면 디스플레이 비율 94% 등 중국산 스마트폰들은 최근 삼성전자의 전유뮬과도 같았던 '세계최초' 기술이 타이틀을 내세운 신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 위주의 시장인 일본, 전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도 삼성전자는 1% 대의 점유율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신작인 갤럭시S9의 경우 전작 갤럭시S8의 절반 정도의 판매량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갤럭시S3 이후 최저 판매량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며 판매량 증진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중저가형 시장에서는 중국산에,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에 밀리는 구도가 점차 굳어가고 있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의 경우에는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중이다. 북미 지역에서는 13%대의 점유율로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그 외 지역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무의미한 수준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지난 6월 올해 처음으로 월 판매 40만대를 돌파했지만 대내외적 악재가 지속되며 위기감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회복이 더디고, 내수 시장 신차 효과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이 13% 늘었지만 지난해 판매량 반토막이 났던 사드 배치 후폭풍이 기저효과 탓이 크다. 현대차의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중국 판매량은 29만3046대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판매가 10% 정도 늘었다. 하지만 사드 보복이 있기 전인 2016년 1~5월 판매량이 42만5561대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30% 이상 감소한 수치다.
국내 출시 이후 월 판매 1만대를 꾸준히 넘어섰던 그랜저와 산타페의 판매량도 유지하지 못했다. 그랜저는 8945대, 산타페는 9074대가 팔리며 체면을 지키는 수준이다. 그랜저의 경우 신차 출시 후 9000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세계 각국에서 친환경차로 전기차에 대한 지원 및 인프라 투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신기술 시장을 제 때 개척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기차 브랜드 순위에서 현대차, 기아차 모두 톱10에 진입하지 못했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순위에서는 기아차가 10위로 턱걸이 했다. 순위권에는 미국의 테슬라가 장기간 1위를 고수하는 가운데 중국의 BAIC, BYD, JAC, CHERY, 일본의 닛산, 독일의 BMW 등이 들었다. PHEV의 경우에는 도요타, 미쓰비시 등 일본차와 볼보,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등이 중국 업체들 대신 자리했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시장에서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ㅅ소차) 투트랙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수소차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수익성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과제다.
반도체의 경우는 아직 건재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를 반도체가 혼자 이끌어 나가는 모양새다. 단기적으로는 최근 미중 무역전쟁 효과로 수출이 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장기화 될 경우 국내 반도체 산업 실적 둔화가 빨리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미중 간 관세전쟁은 미국이 중국에게 첨단산업 패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분야에서 '굴기'를 선언하고 천문학적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중국 견제용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장기간 전자제품 등 반도체 수요 품목에 대한 고강도 무역 제재를 진행한다면 해당 업종 수요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낸드플래시는 이미 본격적 업황 둔화에 접어들었고 모바일과 PC용 D램 가격 하락도 4분기 이후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삼성전자 실적과 기업가치에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추자증권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본격화되며 중국산 PC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반도체 수요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우리 정부도 양국의 무역분쟁에 따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한국기술센터에서 미중 무역분쟁 관련 실물경제 점검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간 시행이 예고된 각각 340억 달러 규모의 수입에 대한 관세부과와 추가적인 160억 달러의 관세부과 시에도 단기적으로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중 무역분쟁이 우리 산업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향후 시나리오별 우리 기업의 대응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다각적인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적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에도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의 관세부과로 인해 중국산 수입이 10% 감소할 경우 한국의 대중 수출 피해규모가 약 31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해외 분석기관들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대만, 헝가리, 싱가포르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는 3%다. 국내외 경제분석기관들은 내수시장 둔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수출마저 타격을 받으면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교 채널을 풀가동하면서 철저한 대비와 함께 정부와 민간의 공동대처방안을 모색하는 등, 기업에 대한 지원책 마련이 이뤄져야 타격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백성요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