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에서 벗어난 제주자연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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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에서 벗어난 제주자연총회
  • 편집부
  • 승인 2012.09.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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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제주 세계자연보전총회(World Conservation Congress)가 지난주 개막되어 오는 15일까지 이어집니다. 이홍구 조직위원장의 개회사 표현처럼 지구촌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각국 정부기구와 전문가,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회의입니다. ‘자연의 회복력(Resilient Nature)’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리는 이번 총회에는 세계 180여 국가에서 1만여명 이상이 참가함으로써 역대 규모에서도 최대로 꼽히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에 쏠리는 관심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올해 여름만 해도 우리는 섭씨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폭염이 끝나는가 싶더니 곧바로 초대형 태풍이 몰아치기도 했지요. 미국에서도 폭풍과 폭우가 몰아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입니다. 그 결과 곳곳에서 흉작이 초래됨으로써 세계적인 식량난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번 총회 의제에 기후변화 대응전략과 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 개발문제 등이 폭넓게 올라 있는 것은 그런 때문입니다. 비무장지대(DMZ) 활용방안이 토론 테이블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불참으로 의제에서 제외한 것이 유감이기는 하지만 밀도 높은 많은 주제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엊그제 열린 워크숍에서는 참치 남획 문제가 다뤄져 어린 참치를 마구 잡아들이는 한국 어선들의 행태가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내놓은 환경 의제들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최대 규모인 마르(maar) 형태의 화산 분화구로서 서귀포시 근처에 위치한 하논 분화구의 복원 방안이 발표된 데 이어 제주 생태계의 허파라고 불리는 곶자왈 원시림의 보존 방안도 논의됩니다. 총회가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면서 채택하게 될 ‘제주 선언’의 내용에 미리 눈길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회의에 국제적인 인물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총회의 비중을 확인시켜 줍니다. 총회를 주최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아쇼크 코슬라 총재와 줄리아 마르통 르페브르 사무총장은 물론 아킴 슈타이너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럭 낙가자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사무총장, 브라리오 페레아 드수자 디아스 생물다양성협약(CBD) 사무총장 등이 그러합니다.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의 피터 바커 사무총장과 유럽환경보전재단의 안드레 호프만 회장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이번 총회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무척 저조한 것 같습니다. WCC 총회가 4년마다 열리기 때문에 환경올림픽으로 불린다는 찬사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더욱이 1948년 프랑스 퐁텐블루에서 첫 총회가 열린 이래 60여년 만에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회의라고 하지만 총회가 개막된 지 사나흘이 지나가는 상황에서도 여론의 눈길은 물에 물 탄 듯이 심드렁하기만 합니다.

참가한 인원 규모가 크고 의제도 풍성하지만 각각의 논의에 대한 집중도는 어딘가 맥이 빠진 듯한 분위기입니다. 특히 올해는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가 열린 지 20년이 지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환경협약의 방향성이 요구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 않습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자연 파괴와 그로 인한 재앙 앞에서 말로만 오가는 환경회의의 잔치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국내 환경단체들이 총회 진행과정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점도 그렇게 탐탁스럽지 않습니다. 환경단체들이 제주해군기지 문제와 4대강 사업을 의제에 포함시켜 주도록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못한 것이 단적인 증거입니다. 사안 자체로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만큼 찬반 여부를 떠나 의제에 포함시킬 만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현재 총회 회원단체들의 협조를 받아 안건 발의를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이번 WCC 총회가 관제 행사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기 위해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이지요. WCC 총회를 위해서도, 우리 정부를 위해서도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단체들도 스스로 돌아볼 점이 적지 않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농성과 시위를 벌이는 식이라면 상대방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은 이번 총회를 계기로 제주도가 세계의 환경 문제를 주도하는 위치로 발돋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8일의 회의에서 제주도가 유네스코와 세계 섬·연안 생물권보전지역 지원사업 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사실에서 확인되듯이 그러한 기대를 가져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가 한라산과 청정 해역 등 자연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 가치를 대내외적으로 확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행사가 진행되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태양광발전 시스템이 갖춰졌으며 친환경 하이브리드 차량이 동원되는 등 일정이 자연 친화적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이번 행사에 맞추어 한라산과 성산 일출봉 등 유네스코 자연유산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정식으로 개관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세미나와 전시회, 체험학습 등의 프로그램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번 WCC 총회를 치른다고 해서 제주도의 국제적인 인식이나 위치가 한꺼번에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우근민 지사의 지적대로 세계적인 선진 환경지역으로 인정받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번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제주도가 ‘세계의 보물섬’으로 인정받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허영섭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편집부  ggal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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