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이웃들이 외계인이라면...영화 '바디 스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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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이웃들이 외계인이라면...영화 '바디 스내처'
  • 한익재 기자
  • 승인 2017.04.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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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우리가 사는 세계로 쳐들어온다면 어떨까. 여러 SF 영화에서 본 것처럼, 인간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외계인들이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막강한 무기로 도시를 파괴하는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은밀하게 침입하는 외계 생명체를 그린 작품이 있다. 돈 시겔 감독의 1956년작 '우주의 침입자(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는 인간의 외모와 목소리, 기억까지 모두 복제해 감쪽같이 인간을 대체하는 외계 생명체를 그려낸 작품이다.

황성연 IBS RNA 연구단 연구원은 이 영화가 보이지 않는 적의 침입에 대한 여러 메타포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영화가 제작된 냉전시대 초기에 미국인들이 느꼈던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반영된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황 연구원은 면역학학자의 눈으로 영화를 새롭게 풀어냈다. 영화 속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모습은 우리 몸을 외부로부터 지키려는 면역 시스템과 면역 시스템에 들키지 않기 위해 은밀하게 잠입해오는 병원균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내 것과 외부의 것을 구분하려는 치열한 싸움

주인공인 베넬 박사는 한 마을의 의사다. 어느 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며 베넬 박사를 찾기 시작한다. 외모와 목소리, 기억까지 모두 동일하게 갖고 있음에도 한사코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 

그러던 중, 베넬 박사는 자신의 집 뒤뜰에 커다란 씨앗들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씨앗이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는데, 그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한 몸체들이 거품으로 둘러싸여 튀어나온다. 그 중 하나가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외계 생명체의 정체를 알게 된다. 

씨앗 형태로 퍼지면서 인간을 복제해, 진짜 인간이 잠들면 그는 사라지고, 복제된 외계인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주변 인물들마저 하나 둘씩 외계인으로 바뀌어가자, 베넬 박사와 그의 연인 베키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저항한다. 결국 베넬 박사는 베키마저 잃고 외계인들에게 둘러싸여 위기를 맞지만, 다른 마을로 피신해 가까스로 외계인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한다.

이 영화가 그려낸 외계 생명체의 잠입 행태는 인간의 몸에 침입하려는 병원균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황 연구원은 실제로 바이러스나 세균이 숙주 세포에 침입할 때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면역을 회피하거나 면역 억제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면역 시스템은 자신의 세포와 외부에서 유입된 것들을 철저하게 구분하며, 우리 몸에서 유래한 물질이 아닌 외부 병원체에는 공격 시스템을 가동한다. 

영화 속 주인공과 일행들은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한 외계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구분하려 노력하고, 외계인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구분해내지 못하도록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위장해 인간들에게 접근한다. 인간과 외계인의 싸움은 숙주와 병원균의 전쟁과 꽤나 비슷한 형국을 띤다.

"주인공 베넬 박사와 연인 베키가 숨어 있다가 외계인들이 많은 바깥으로 나갈 때, 마치 자신들도 외계인인 것처럼 감정이 없는 그들의 모습을 흉내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외계인만 위장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살아남기 위해 그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간과 외계인에게 감정이 없다는 것의 의미

황 연구원은 영화 후반부에 베넬 박사가 베키에게 입을 맞추고 난 후, 진짜 베키가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채는 장면을 가장 무서운 장면으로 꼽았다. 여자의 감정 없는 서늘한 눈빛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에서 사랑했던 사람이 감정을 잃고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면서도 오싹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장면은 무시무시한 괴물보다도 인간의 탈을 썼지만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존재가 무시무시한 괴물보다도 더 끔찍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는 인간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번식에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씨앗으로 퍼지고, 발아해 인간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는데, 이들은 오로지 효율적인 자가 증식과 복제만을 목적으로 해서인지 전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빛 같은, 주관적이고 고차원적인 기준으로도 타인을 식별합니다. 때문에 감정은 종족 구별과 유지, 번식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요. 그런데, 영화 속 외계인에게는 감정이 중요한 요소가 아닐 것입니다. 형체가 없기 때문에 외계인을 일종의 바이러스라고 가정해보죠. 많은 숙주들에게 자신의 유전체를 효과적으로 퍼뜨리는 목적은 생물과 같겠지만, 더 많은 숙주들을 빠른 속도로 감염시켜 자가 증식과 복제를 계속해나가야 하는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감정이 없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겠죠."

외계인의 생존 전략: 씨앗과 잠복기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는 열대식물의 잎사귀로 둘러싸인 것 같은 모양의 거대한 씨앗을 통해 인간 세계에 퍼져 나간다. 황 연구원은 퍼뜨리기 쉽고, 떨어진 자리에서 생명력을 갖는 씨앗의 이미지가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입해 증식하는 모습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말했다.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자손을 퍼뜨리는 것처럼, 영화 속 외계 생명체는 씨앗을 통해 번식하면서 더 많은 자기 종족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외계 생명체가 인간 몸에 직접 침입한다면, 인간의 몸으로는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증식이 어려울 수 있다.

영화 속 외계 생명체는 씨앗이 발아해 인간을 복제하며 발육이 완성될 때까지 인간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잠복기를 갖는다. 발육 시기에는 공격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왜 잠복기를 갖는 걸까.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는 감염 속도가 매우 빠르고, 순식간에 세포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바이러스들은 침입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있다가 시간이 지나 숙주의 면역계가 약해졌을 때를 틈타 폭발적으로 증식합니다. 저는 잠복기를 갖는 후자의 경우가 더 똑똑한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증식하지 못하니까요. 영화 속 외계 생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잠복기는 외계 생명체가 자신의 유전체를 더 많은 숙주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좀 더 유리한 때를 기다리는 시간인 셈입니다."

면역계와 병원체 간 전쟁의 역사가 바로 생명 진화의 역사

대학생 때 바이러스학을 공부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는 황 연구원. 그는 바이러스의 한 두 개의 유전 정보에만 돌연변이가 발생해도 인간이 그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절망적이면서도 신기했다고 한다. 

"면역계와 병원체의 싸움은 늘 치열합니다. 병원체는 진화적으로 돌연변이들을 만들거나 면역을 회피하거나 면역 억제를 유도하는 속임수를 쓰는 등 세포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전략을 써 왔고, 우리 면역계는 이런 침입자들을 골라내기 위해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을 구축해왔어요. 서로 살아남기 위한 면역계와 병원체의 싸움이 곧 생명 진화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황 연구원은 현재 IBS RNA 연구단에서 우리 몸의 세포가 바이러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그들의 유전체인 RNA를 어떻게 제거하는지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그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를 유발하는 HIV-1 바이러스에 대한 초기 면역 현상을 관찰한다. 

자료협조 ; IBS(기초과학연구원)

한익재 기자  gogreen@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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