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원조 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롯데家 도움 없이 서민의 벗 '농심'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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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원조 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롯데家 도움 없이 서민의 벗 '농심' 창업"
  • 정은지 기자
  • 승인 2021.03.27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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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2세 …27일 숙환으로 별세
신라면 100여개국에 수출한 '식품 외교관'
56년 간 경영하며 '농가와 상생' 원칙 지켜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노환으로 27일 오전 3시 38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신 회장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신 회장은 호적상 1932년생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65년 형 신격호 롯데회장의 도움없이 농심을 설립, "스낵은 언제나 농심"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며 평생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라면과 과자를 만들었다. 전후 쌀밥 하나도 귀한 상황에서 '새우깡', '신라면' 등은 서민들의 입맛을 달래며 오늘날 '한류'의 초석을 놨다는 평가다.

1986년에 세상에 등장한 신 회장의 대표작 '신라면'은 최근까지도 '승리호'에 탑승하는 등 영화 곳곳에 등장하며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는 국내 식품료 산업을 육성했고 그 뒤 최고가 됐다. 농심은 외국에 나가면 한국이라는 이름도 모르던 시기에 창업했다. 오늘날 BTS, 김치 등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떨치게 된 '한류'의 시초는 농심의 식품외교였다"고 말했다.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 [사진=농심]

'농심'으로 사명 변경, 국민 간식 기업의 탄생...'정직한 먹거리'와 '글로벌 실핏줄 전략'

일본 롯데에서 형인 신격호 회장과 일하다 마찰이 생긴 신 회장은 1965년 한국에서 롯데공업을 창업했다. 롯데라면을 출시한 신회장은 형의 라면출시 반대에 사명 자체를 농심으로 바꾸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업과 장사를 병행했던 신 회장은 장사를 하면서 '정직한 먹거리'에 눈을 떴다. 부산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쌀을 싸게 팔려다 실패도 했다. 이런 경험이 평생 품질 경영을 하게 된 배경이 됐다.

농심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국내산 아카시아 꿀, 완도산 다시마, 국내산 감자 등을 고집한다. 너구리에 들어가는 국내산 다시마도 국내산이다. 농심이 한 해 구매하는 다시마는 국내 식품업계 최대 규모로 완도지역 연간 건다시마 생산량의 15% 수준이다.

꿀꽈배기에 들어가는 국내 아카시아 꿀 또한 국내 생산량의 25%를 농심이 사용한다. 설탕보다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농심 관계자는 "국내산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식품산업의 근간을 지켜야 한다는 게 신 회장님의 철학이었다"며 "영면하시기 전까지 이 같은 점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1980년대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신라면이 보이게 하라"고 말했다. 그만큼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현재 신라면은 남아메리카 칠레 최남단에서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매점까지 세계 곳곳에 스며들어 판매하고 있다. 

농심의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를 넘었고, 2015년엔 5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농심은 전체 매출의 약 40%인 1조1000억원을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 달성했다. 농심의 올해 해외 매출 목표는 전년보다 15% 이상 높여 잡았다. 올해 해외 매출은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다.

1986년 당시 출시된 신라면 [사진=네이버지식백과]

신 회장의 목소리, 국민 가슴에 영원히 남다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가요' 신 회장은 '작명의 달인'이다. 중독성 있는 광고로 소비자의 의식을 사로 잡는 능력을 타고났다. '새우깡' 등 깡 시리즈 등 농심 제품 대부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특히 새우깡은 막내딸의 발음에서 착안해 아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깡을 붙여 시리즈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품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보여주는 지를 결정하는 상품포장 기술도 남달랐다. '너구리 한마리 몰고 가세요'나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같은 광고 카피가 대표적인 그의 아이디어다. 신 회장이 이런 부분까지 살뜰히 챙기다보니 농심의 광고제작을 주력으로 하는 농심기획 대표 자리는 내부에서는 가장 힘든 자리로 인식되곤 했다.

'내입의 안성맞춤',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마치 신 회장이 들려주는 것 같은 농심의 스낵 송은 앞으로 오랫동안 국민들의 마음속에 남아 그를 추억할 것이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30일이다.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정은지 기자  marke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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