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칼럼]도(道) 닦아야 하는 ‘경의·중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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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 칼럼]도(道) 닦아야 하는 ‘경의·중앙선’
  • 정종오 기자
  • 승인 2019.11.12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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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월요일 오전 7시 40분 청량리역. 기차를 기다리는 이들과 지하철과 전철을 이용하려는 승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오전 7시 2분 기차를 타면 청량리에 7시 36분에 도착한다. 대부분 이 기차에서 내려 7시 44분 경의·중앙선 문산행 전철을 타고 서울 시내 일터로 향하는 이들이 많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다들 기차에서 내려 문산행 전철을 타는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월요일은 이용 승객이 많아 청량리역에서 탑승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인지 월요일은 전철이 연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래도 이용 승객이 많다 보니 내리고 타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시계는 7시 46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44분 문산행 전철은 도착하지 않았다. 3분이 더 지나 7시 49분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승객들은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모두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라는 표정들이었다.

문제는 전철에 올라탄 뒤 시작됐다. 안전문(스크린도어)이 닫히고 전철은 왕십리역으로 출발해야 했다.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서로 몸에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서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현장학습을 가는지 남녀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함께 탑승해 있었다. 전철은 출발하지 않았다. 이어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라는 음성과 함께 안전문이 다시 열렸다. 누가 탑승하다 옷이나 가방이 끼었거니 생각했다. 잠시 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는 소리에 이어 문이 닫혔다. 이제 출발하려나? 아니었다. 또다시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그때부터 승객들의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뭐지? 뭐야?”

끼리끼리 모여있던 고등학생들이 일제히 수군거렸다.

“스크린도어가 고장 났나?”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정종오 환경과학부장

웅성거림도 잠시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는 소리와 함께 전철이 마침내, 드디어 출발하겠다 싶었다. 그 기대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다시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는 음성이 들려오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그렇게 그날 안전문은 정확히 여섯 번 열렸고, 여섯 번 닫히는 경험을 했다. 49분에 도착한 전철은 52분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출발한 기미가 전혀 없었다. “스크린도어가 열, 열, 열, 열, 열, 열립니다”와 “스크린도어가 닫, 닫, 닫, 닫, 닫, 닫힙니다”를 반복한 뒤 53분에 전철은 무지못해(?) 왕십리역을 향해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44분에 도착해 운행해야 할 전철이 9분이나 늦게 출발한 것이다.

안전문은 말 그대로 안전장치이다. 문틈에 옷이나 가방 등이 끼이면 다시 열었다 닫아야 한다.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철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이나 안전문이 열렸다 닫힌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안전문에 있지 않았다. 여섯 번 닫히고 열리는 동안 어떤 문제 때문이었는지 안내 방송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전철을 타고 있는 승객들에게 정확히 지금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줘야 하는 것은 상식이자 의무이다.

경의·중앙선 연착과 이용 불편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청량리역에서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는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정기적으로 겪는다. 이런 불편사항을 코레일 고객센터에 문의하면 “문자접수가 많아 순차적으로 처리 중입니다”는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메시지만 온다. 고객센터에 민원을 접수하기 위해 노력한 내 손가락에 미안할 정도이다.

2018년 전국도시철도 승하차 인원을 보면 경의·중앙선은 2018년 한 해 동안 총 1억5380만9245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42만1395명이 타고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온실가스 저감과 친환경 교통을 위해 승용차 대신 기차와 전철을 이용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전철을 탈 때마다 이렇게 불편하고 짜증 나는 상황이라면 누가 선뜻 전철을 이용하려고 하겠는가.

바쁜 출퇴근 시간에 무려(?) 9분이나 늦게 출발하는 당시 문산행 전철 안에서 저 너머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중년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남성은 안전문이 열렸다 닫혔다는 반복하고 승객들이 웅성거리는 데도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언뜻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경의·중앙선을 이용하려면 도(道)를 닦아야 하는구나.”

인내심과 기다림, 수차례 문제가 있더라도 안내 방송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체념. 민원을 제기해도 '순차적으로 처리중'이라는 고객센터의 당당한(?) 자세. 제때 도착하는 전철을 보며 오히려 “오늘은 웬일이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하는 이 어색함. 이 모든 것은 경의·중앙선을 타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도(道)를 닦으며’ 경의·중앙선을 탄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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