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신격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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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격호 회장
  • 조원영
  • 승인 2015.08.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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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경                       신산업경영원장

「성실‧신용‧공평」-. 이 3가지 정신으로 현해탄 양쪽 한국과 일본에 연간 매출 약 70조 원의 기업집단을 형성한 사람이 롯데의 신격호(辛格浩) 회장이다.

지난 1976년 봄 필자가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일본롯데 본사에서 만난 신격호 회장은 54세의 야망있는 중진 기업인이었다.

날렵한 몸매에 유난히 눈이 날카로웠다. 방문하기 전 관광차 들렀던 일본 신사(神社) 앞에 세워 놓은 붉은 색의 여우 조각상에서 느꼈던 눈매 같은 것이었다.

그는 두 개의 명함을 내 놓았다. 하나는 한국명「신격호」였고 다른 하나는「重光武雄(시게미스 다케오)」였다. 그 때 신 회장은 한국에 롯데호텔을 착공하고 제과 외에 전자‧기계 산업을 시작, 모국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필자는 일간 내외경제신문 기자 명함을 건넸다. 전자‧기계 산업에 관심이 있지만, 상대는 당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포춘 랭킹에 올랐을 정도로 큰 기업인이다. 그 것도 17살에 83엔을 들고 가출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을 하며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성공 스토리부터 들었다. 그는 이미 30여 년 동안 기업 활동을 하며 추잉 껌의 제왕, 제과 업계의 거성(巨星)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신 회장은 도쿄에서 우유‧신문 배달을 하며 와세대 대학 화공과를 다녔다. 대학 3학년 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 수도 도쿄는 쑥대밭이 되었다.

그는 학업을 그만두고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 포마드와 화장품을 생산해 냈다. 미군들이 버리고 간 화공 약품 드럼 통에서 피크린산 등을 회수하여 만들었는데 사업이 잘 되어 2~3년 사이에 종업원이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신 회장은 화장품 사업 자리가 잡히자 일없이 노는 두 친구를 위해 돈을 대 주고 풍선 껌을 만들어 각광을 받았다. 사업이 잘 되자 그들이 배신하여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됐다.

결국 그는 껌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10여 년 동안 씨름하는 바람에 화장품 사업은 아쉽지만 접었다.
1948년 껌 사업을 위해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청소년 시절 즐겨 읽었던 괴테의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주인공 샤르 롯데에서 이름을 따 왔다.

화장품 사업 때부터 「소비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을 목표로 했던 그는 만인의 애인이 되기에 딱 알맞은 롯데를 아이콘 삼아 레이블에 그려 넣었는데, 추잉 껌에는 더욱 어울리는 브랜드였다.

이렇게 시작한 롯데 사업이 39년 전 필자가 찾아 갔을 때엔 일본과 한국에 각각 10개 회사씩을 두었고 매출액은 일본 1,300억 엔, 한국 1,000억 원으로 일본 쪽 비중이 15배에 이르렀다.

그런데 현재는 한국 사업이 약 62조 원으로 일본 사업의 14배 정도가 되었다. 해방 70년 사이 1인당 GDP가 400배 이상 급성장한 한국과 비교가 안 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체구가 커졌으니 입고 있던 옷이 안 맞는 다. 지난 7월27일 신 회장의 두 아들 신동주‧신동빈 씨 사이에 경영권 싸움이 벌어졌다.

한국 사업으로 체중을 불린 신동빈 회장이 창업회장인 그의 부친 신격호 회장을 대표이사 자리에서 밀어 낸 것. 형 신동주 씨가 반격을 가하고 신격호 총괄회장과 친척들이 형의 편을 들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지난달 17일 신동빈 회장이 도쿄 제국호텔에서 비공개 주주총회를 열고 자신을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로 굳힘으로써 승부는 끝났다.

신동빈 회장 말마따나 『경영과 가족은 다르다』는 것이다.

법으로 따지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식민 지배를 했던 일본인들의 우월감이 거센 도쿄에서 기업을 일으켜 세계적 경영인이 된 사람이다.

그 험한 환경에서도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정체성을 지켜 온 올해 93세의 신격회 회장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무책임한 소리가 난무하던 최근, 필자는 약 40년 전 그의 사무실 벽에 걸린 한국 농촌 풍경화(후지다 화백 그림)을 바라 보며 『조국의 아침은 매우 신선했다』고 말하던 롯데 신격호 회장의 모습이 떠 올랐다.
 

조원영  jwyc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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