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왜 내 옆에서 매연을 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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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왜 내 옆에서 매연을 뿜어!"
  • 정재헌
  • 승인 2011.04.0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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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 중에도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 자전거 타는 것을 너무 좋아해 부모와 누나 네 식구가 1년간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계획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자전거 연습을 하다 안양천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일단 꿈은 접은 상태다. 그렇지만 자전거 여행에 대한 꿈은 항상 머리를 채우고 있다.

   어딘지 잘 알지도 못하는 유럽 벌판을 달리고 있다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한 것은 최악의 상황에서 나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1년간 자전거에 의지해서 지구를 돈다는 것은 위험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낯설고, 배고프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것도 여럿이 몰려다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여행을 하니 더 그랬다. 난 이런 싸움 속으로 내 자신을 내던지고 싶었다.

부모님은 나의 여행을 절대 반대하셨지만 난 일을 저지르고 봤다. 남대문 시장에서 “혼자라 걱정되니 정말 몸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장면을 시켜 주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자전거 여행을 한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가장 멋진 일이었다. 영국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를 끌고 왔다면 얼마나 많은 휘발유를 소모했을까? 모르면 몰라도 3천리터는 더 썼을 것이다. 기름 3천리터는 돈도 돈이지만 매연을 얼마나 뿜어낼지 따지기도 힘들다.

당시 나는 어떻게 든지 자전거에 의지해서 내가 태어난 곳, 나를 기다려 주시는 부모님이 계신 곳, 경기도 부천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를 타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고,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자고 나면 달리고, 해 떨어지면 침낭 속에 들어가 잠자는 게 일이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영국의 런던, 스페인의 마드리드, 스위스의 쭈리히, 폴란드의 바그다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등 수많은 도시를 달렸다. 도시만 달린 게 아니라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국도를 달렸다. 달리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동차 매연이었다. 유럽은 우리나라에 비해 배출가스 규제가 강해 매연이 적지만 그래도 오래 달리면 콧구멍이 까맣게 되었다.

       리투아니아에서 사귄 나이든 친구, 나를 재워주고 밥도 주었다
특히 언덕을 오를 때는 대단했다. 난 자전거를 끌고 가는 데 자동차, 특히 트럭들이 짐을 싣고 매연을 뿜어대면서 오를 때는 숨이 콱콱 막혔다. 어떤 때는 트럭보다 먼저 가려고 자전거를 끌고 뛰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야, 이 놈들아. 하필이면 왜 내 앞에서 매연을 뿜는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트럭은 제 갈 길을 갔다.

매연이 심할 때는 나는 시골 길을 택했다. 큰 길로 자동차와 같이 달리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매연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시골 길은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지만 길을 찾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길을 잘 못 들면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트럭과의 언덕 오르기 게임이 끝나면 산 정상이 된다. 난 자전거를 그대로 내 팽개치고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한다. “내가 태어난 한국 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할까? 오늘 저녁은 또 어디서 자고, 뭘 먹나?” 이런 생각을 하며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쳐다 본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출애굽할 때 구름이 가다 섰다를 반복하듯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구름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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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2004년 8월 15일 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오는 배를 타고 속초 동명항에 들어왔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설악산은 정말 멋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보았던 그 어떤 산과 견주어도 산의 생김새나 아름다움이 빠지지 않았다. “아, 저기가 나의 조국이구나. 아름다운 조국....”

 녹색경제 (www.greened.kr)에서 ‘정재헌의 에코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맨 먼저 쓴 게 자전거 이야기다. 자전거는 지구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기자동차가 나오고, 수소 자동차가 나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이른 상태다. 설령 전기자동차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는 덩치가 커서 지구를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는 “자전거가 최고야. 건강에 좋고, 환경을 더럽히지 않아 좋고...”라는 말이었다. 여행 당신 난 이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서울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만 있지, 길도 잘 모르고, 잠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걱정이고, 자전거는 툭하면 펑크가 나는 데 ‘자전거 예찬’ 같은 사치스런 말이 귀에 들어 올 수가 없었다.

내가 만일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을 다 뒤지고, 러시아를 거쳐 서울까지 차를 끌고 왔다면 기름값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모르면 몰라도 2천만원 어치는 들어갔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뿜어낸 매연을 또 얼마나 만을까? 나로 인해 사람들의 입으로 얼마마 많은 매연이 들어갔을까? 새삼 스럽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로 달렸다. 매연도 뿜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면서 달렸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세워놓고 얘기도 나눴다.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 사람도 많이 만났다. 차를 타고 그냥 달려 왔다면 나에게 도움을 준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힘이 든 만큼 환경에 기여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전거는 정말 좋다. 열심히 운동해서 좋고, 건강을 지켜주니 좋고, 환경을 깨끗하게 하니 더 좋다. 자전거 타기가 활성화되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크게 감소하고,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공기는 얼마나 깨끗할까? 

하지만  환경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나닌다. 출근도 자동차로 하고 퇴근도 자동차로 한다. 매연을 내뿜으면서 다닌다. 그리고 환경 관련 행사가 있으면 나타나 자동차 매연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먼 길을 자전거로 갈 수는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자동차 이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동차 이용을 줄이는 만큼 지구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정 재 헌  순회특파원

**** 정재헌은 누구인가? ****

2003년 미국 버클리음대 재학 중 휴학을 하고 340일 동안 영국에서부터 한국까지 자전거로 혼자서 달려왔다. 영국을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독일 스위스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를 거쳐 서울까지 왔다. 일본 동경에서 가고시마 땅끝까지, 미국과 캐나다를 자전거로 건너다녔다. 여행을 마치고 ‘젊은 날의 발견’을 썼으며 신앙서적 ‘야 이놈아 성경에 다 쓰여 있다’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음대생이 신앙서적을 낸 것이다. 지금은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정재헌  chaehun.chung@gbs.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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