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는 왜 '1004' 대신 '4001'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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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는 왜 '1004' 대신 '4001'이 되었나?
  • 정우택
  • 승인 2011.03.27 0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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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가 책을 냈다. 제목은 ‘4001’이다. 교도소에 있을 때의 수감번호다. 4001은 1004를 뒤집어 놓은 것인데 신정아의 삶을 가장 어울리는 숫자로 표시한 것 같다. 잘 나갈 때와 못 나갈 때를 숫자로 나타낸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숫자 가운데 하필이면 4001이 뭐야!

신정아가 4001이라는 괴상한 책을 냈는데 책이 잘 팔린다고 하자 한 지인이 “책은 낸 인간이나 그런 책을 사서 읽는 인간이나 그게 그거다.”라고 폄하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의 뜻은 책의 내용이 너무 자기 중심적인데다 입증할 증거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책이 분풀이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신정아는 책에서 민감한 얘기를 많이 했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 자기를 밤에 호텔로 불렀느니 뭐니 하면서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얘기,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얘기를 콜레라에 걸린 돼지가 설사하며 똥을 지리는 것처럼 늘어놨다.

필자는 신정아의 얘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 아닌지 알지 못한다. 책을 읽는 사람도 모른다. 단지 신정아 자신만 알고 있다. 모르는 것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지저분한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신정아의 과거 행동이다. 신정아는 예일대 학력을 위조해 동국대 교수직을 얻었다. 미술관 공금을 빼돌린 인물이다. 그는 구속 기소된 뒤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고, 2009년 4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 실명을 들먹이며 늘어놓는 다른 사람 얘기는 믿기지 않는다. 필자만 그럴까?

사회적으로 깨끗하고 젊잖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신정아 같은 주장을 한다면 그런대로 수긍을 하고, 책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지만 신정아는 다르다. 학력위조, 공금 빼돌리기로 형을 선고 받았던 사람이다. 그가 다른 사람을 걸고넘어지는 인상을 풍기는 내용이 많이 들어있는 책을 낸 것이다.

그럼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결론은 간단하다. 신정아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 신정아를 좋아하는 사람, 그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4001이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책이다. 체증도 뚫어준다. 속을 시원하게,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하지만 신정아 같은 삶, 다시 말해 학력을 위조하고, 공금을 빼돌리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끄집어내 주변 사람들의 발목을 채우는 것 같은 처신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은 신정아를 믿지 않는다. 그의 책에 대해서도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보낸다.

필자는 이번 책이 복수를 위한 출판으로 본다. 책에 있는 대로 어떤 유명 인사가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치자. 그럼 그때 어떻게 했나? 저녁에 왜 여자를 호텔로 불러내는 거냐며 거절했나? 아니면 으스대며 갔나? 신정아는 지금의 기분으로 책을 내지 말고, 당시의 기분으로 원고를 써야 했다.

신정아의 4001이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책의 독자들 입장에서 볼 때 “내 일이 아니기 때문” 이다. 그 일이 내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 신정아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신정아이거나 내 가족 중에 신정아 같은 일이 있다고 하면 어떨까? 집이 시끄러울 것이다.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성질 급한 사람은 이혼을 한다고 난리를 칠 지도 모른다. 나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의 나쁜 일을 즐기는 습성이 있다. TV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혼을 하고, 친구 남편을 건드리고, 한 여자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벌더둥치는 것을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본다. 드라마의 줄거리가 흥미를 끌기 때문인데 이 흥미는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일도 그런 시각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어떤 평론가가 지적했던 것처럼 신정아의 얘기 가운데 진실성이 의심되는 부분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신정아는 4001의 부메랑을 맞을지도 모른다.

신정아는 똑똑한 여자다. 마스크도 그만하면 됐다. 배우기도 제법 배웠다. 다른 사람에 비해 빠지는 게 없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잘못은 보통 사람의 것을 훨씬 넘는다. 미국 대학 학력위조, 공금 빼돌리기, 여기에 유명 인사를 골탕 먹이기에 충분한 내용이 들어있는 4001은 편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똑똑하고, 잘 난 여자도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것이다. 한 순간에 무너지고, 한 순간에 풍미했던 삶을 보내는 것이 인간의 순리고, 자연의 법칙이다. 신정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 든다.  신정아가 4001이라는 딱지를 달지 말고 1004 (천사)라는 이미지를 입고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굴이며 학식이며 모든 것들이 더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1004와 거리가 먼 4001의 멍에를 메고 말았다.

세간에는 신정아 관련 말이 많다. 어떤 사람은 신정아에게 걸리면 죽는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신정아로 인해 여러 놈이 고통받게 생겼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신정아가 얼마나 억울하고 열이 나면 책을 통해 다 까발리겠느냐고 신정아 동정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의 전개 과정은 두고 볼 일이다.

필자는 “신정아가 이저부터라도 4001의 딱지로 살지 말고 1004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4001은 구속이고, 고통이고, 사회와의 단절이다. 반대로 1004는 말 그대로 ‘천사’다. 천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교회가 크고 화려하든, 작고 초라하든 천사의 마음으로 살면 된다. 신정아가 1004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정우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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