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징 고도화에 ‘ASML식 생태계’ 주목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네덜란드의 ‘계약(Contract) 기반 장비 생태계’가 한국 반도체 장비업계로 확산될 전망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고도화와 함께 패키징 공정이 선단화되면서 초정밀 모듈·메카트로닉스 전문기업과의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 ‘한-네덜란드 반도체기술협력 세미나’에서 양국의 반도체 장비 기업과 연구기관 간 공동 개발 및 기술 교류 확대 방안이 논의됐다. 이번 행사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소부장기술융합포럼, 주한네덜란드대사관이 공동 주최했다.
이주원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선임 상무관은 행사 진행에 앞서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대형 장비사가 갠트리, 진공 챔버 등 핵심 모듈 개발을 전문 기업에 의뢰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라며 “ASML과 같은 장비사도 이 같은 협력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다”고 소개했다.
ASML 장비의 상당 부분을 네덜란드의 고정밀 모듈·메카트로닉스·광학·제어 전문 기업들이 ‘계약 기반’으로 설계·제작한다는 설명이다. 네덜란드는 ASML 본사가 위치한 국가로 최선단 EUV 노광장비를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생태계의 핵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날 피칭 세션에서는 이 같은 네덜란드식 협력 구조를 구성하는 ‘서브시스템·계약 기반 장비 엔지니어링(Equipment subsystem & contract engineering)’ 분야 기업들이 소개됐다.
네덜란드 고정밀 시스템 기업인 프로드라이브 테크놀러지(Prodrive Technologies)는 “우리는 하이엔드 제품 모듈과 시스템을 제조하는 기술 혁신 파트너”라며 “글로벌 주요 반도체 장비사들과 협력해 왔으며 한국 반도체 산업과도 더 많은 접점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프로드라이브는 초기 프로토타입 개발부터 대량 양산 단계까지 연결하는 역량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고정밀 모션 드라이브와 비전 시스템, RF 증폭 모듈 등을 기반으로 첨단 패키징 공정에 필요한 정밀 제어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메카트로닉스 전문기업 ‘메칼(Mecal)’은 장비 대형화·고속화에 따른 진동 및 온도 제어 기술을 소개했다. 메칼은 “최근 장비는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면서도 속도는 빨라지고 있어 진동 차폐와 열 제어가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주요 반도체 허브에서 협력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ASML 등과의 협업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엔지니어링부터 제조까지 일괄 수행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옥스 테크놀러지(Sioux Technologies)’는 “우리는 모듈과 R&D 역량을 결합해 고객의 개발 주기를 단축한다”며 “정밀 하드웨어뿐 아니라 제어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 지능까지 통합해 장비 수율과 안정성을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완성 장비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 장비사의 핵심 모듈을 사실상 설계·구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계약 기반 엔지니어링 구조가 고난도 패키징 공정으로 진화하는 HBM향 하이브리드 본딩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 미세화와 적층 고도화로 나노미터 단위 정밀도, 진동 억제, 열 안정성 확보가 필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번 세미나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업과 기관이 참여했다. 고정밀 시스템·진공·열처리·소프트웨어·투자 지원 분야 기업인 Schunk Xycarb Technology, Levitech B.V., Tempress Systems B.V., Bronkhorst, Minds.AI, GI-Ventures, Invest International B.V., High Tech NL, TNO, TU Eindhoven, Province of Noord Brabant, WorldEmp 등이 참석해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다.
주승환 인하대학교 제조혁신전문대학원 교수는 “네덜란드는 ASML을 중심으로 한 완성 장비사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서브시스템·계약 기반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촘촘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며 “이번 세미나는 그 생태계를 한국과 직접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슬예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