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이중 설계’로 새로운 해법 제시
[녹색경제신문 = 이현성 기자] 전자식 도어 손잡이를 둘러싼 규제와 논란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최근 볼보가 EX60에서 제시한 새로운 해법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볼보는 차세대 전기 SUV EX60에서 전자식 도어를 포기하기보단, 안전을 고려한 설계와 이중 작동 구조로 돌파구를 찾았다. 사고와 전력 상실 상황까지 전제로 한 구조 설계를 통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전기차 확산과 함께 매립형·전자식 도어 손잡이는 하나의 디자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차체 측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공력 성능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주행거리를 늘리겠다는 목적에서다. 테슬라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매립형 도어 손잡이로 인한 공력계수(Cd) 개선 폭은 0.005~0.01 수준에 불과하다. 100km당 약 0.6kWh 절감, 주행거리로 환산하면 5~10km 증가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안전이다. 전자식 도어는 충돌 사고로 차량 전력이 차단될 경우 외부에서 문을 열기 어려워 구조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실제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일리노이주 로빈 켈리 하원의원이 ‘SAFE Exit’ 법안을 발의했다.
전력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도 차량 문을 빠르고 직관적으로 열 수 있는 기계식 수동 개폐 장치의 의무화가 핵심이다. 소비자 단체인 컨슈머리포트 역시 해당 법안을 공개 지지하며 제조사들의 설계 변경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의 기조는 더욱 직접적이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는 지난해 9월 매립형 전자식 도어 핸들을 사실상 제한하는 국가 표준 초안을 공개했다. 모든 도어에 외부 손잡이를 갖추고, 손으로 직접 조작 가능한 최소 공간(60×20×25mm)을 확보하도록 했다.
또한 차량이 잠겨 있거나 배터리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도구 없이 외부 개방이 가능해야 하며, 2027년부터는 전력 없이 작동하는 외부 기계식 손잡이를 모든 승용차에 의무화하겠다는 방침도 제시됐다.
그럼에도 볼보는 EX60에 전자식 버튼형 도어 손잡이를 적용했다. 미미하지만 주행거리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전자식 개폐 방식의 깔끔한 디자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볼보는 전자식 개폐 방식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사고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 가능한 설계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일단 외부 도어 손잡이의 디자인부터 새롭다. 도어 상단에 상어 지느러미 모양의 손잡이를 달았다. 덕분에 위급 상황 시 매립형보다 외부에서 손잡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동 개폐 장치는 없다. 손잡이 안쪽 버튼을 누르면 전자식으로 문이 열린다.
다만 볼보는 ‘이중 전력 공급 설계’로 사고 시 전기가 끊기는 문제를 해결했다. 만약 충돌 사고로 자동차의 전장 부품을 구동하는 12V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전기차의 DC-DC 컨버터를 활용해 고전압 배터리의 전기를 끌어와 문을 연다.
내부 도어 손잡이는 전자식과 기계식 개폐 방식을 하나로 통합했다. 레버를 당겨 문을 여는 방법은 내연기관차와 다르지 않다. 다만 평소에 가볍게 당기면 전자식으로 열리고, 한 번 더 강하게 당기면 기계식으로 잠금 장치가 해제된다. 기계식으로 문을 열 수 있는 수동 개폐 장치를 안쪽 깊숙이 숨겨둔 테슬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테슬라는 오너가 아니면 수동 개폐 장치를 찾기 어려워 위급 상황 시 빠른 탈출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볼보는 보다 직관적인 설계로 위험을 줄였다. 사고 직후처럼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울 때에도 본능적으로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겨 문이 열리도록 배려했다. 결국 인간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느냐가 차이를 만든 셈이다.
전자식 도어 손잡이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공력 성능을 넘어 안전 철학을 묻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각국 정부가 규제를 통해 위험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볼보는 ‘설계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볼보의 처방이 강화되는 규제 환경 속에서도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EX60은 전자식 도어 논쟁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현성 기자 lycaon@greened.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