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⑦] '녹색금융' 꿈꾸는 금융업계, 탄소제로에 몸을 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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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⑦] '녹색금융' 꿈꾸는 금융업계, 탄소제로에 몸을 싣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21.01.21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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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수가 되버린 미래 지속성장가능성
- 5대 금융지주 필두로 일제히 조직개편·역량집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인류를 공격할 즈음 많은 이들은 앞으로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 시대로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인류는 일개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새로운 삶을 강요받고 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생태계 전반에 ‘역경’(逆境)을 넘어 ‘생(生)과 사(死)’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생(生)의 길’, 즉 활로(活路)를 찾아야 한다. 그 활로는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 영속성과 지속성을 주는 길이어야 한다. 백신이 코로나를 잠재울지라도 이미 달라진 우리의 삶 전반을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녹색경제신문>은 2021년 새해를 맞아 우리 경제의 영속성과 지속가능성의 길을 찾고자 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활로는 ‘그린’(green)이다. 그린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케 하는 경제구조와 산업 생태계의 영속성과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산업계는 지금 ‘그린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T 바이오의 첨단산업은 물론 자동차 제철 조선 등 전통 제조업계와 유통업계, 금융업계도 ‘그린’에서 영속성과 지속성을 찾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을 길을 찾고 있다. 그 앞날의 길을 살펴보자. <편집자註>

- 글 싣는 순서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①] 주요 기업들이 뛰어든 '그린뉴딜', 신기루되지 않으려면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②] '그린경영'이 아니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없는 시대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③] '그린모빌리티'의 핵심, 전기차·수소차의 미래는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④] '그린수소' 꿈꾸는 대기업들, 사업기반 구축 '한계'도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⑤] 각광받는 '그린에너지' 영속성 확보하려면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⑥] 유통업계에 불어오는 '그린테일' 바람 
[신년특집-그린이 미래다⑦] '녹색금융' 꿈꾸는 금융업계, 탄소제로에 몸을 싣다

'녹색금융'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가 됐다. 연말과 새해 금융권은 일제히 조직을 재편하고 2021년 한해 사업을 위해 심기일전을 가다듬었다.

조직 수장들의 신년사에선 앞으로 국내 금융업계가 나아갈 방향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의 신년사에서 약속한 듯 빠지지 않았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ESG. 그중에서도 금융업계는 '환경(E)'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동안 환경관련 이슈가 경영상 고려가 필요한 요인에서 최근 글로벌 트렌드와 함께 필수적으로 감안해야 할 요인으로 의미가 커진 것이다. 여기에 사회·지배구조 이슈가 포함돼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지속가능성을 추진하기 위한 계획으로 확장된 것이다.

국내 5대 금융지주 중 ESG 이슈에 가장 발빠른 변화의 모습을 보여왔던 것은 KB금융지주다.

2020년 초부터 기존 사회공헌문화부를 ESG전략부로 조직을 개편하는 한편, 이사회 내 ESG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9월엔 국내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기도 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관련 신규 PF와 채권 인수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20년 11월 12일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삼성 금융계열사들도 석탄화력발전소 투자 중단 등 탈석탄 금융을 선포했다. 양사는 이미 2018년 6월 이후 석탄 발전에 대한 직접 신규 투자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목적의 회사채에도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신한금융지주는 11월 13일 이사회 산하 사회책임경영위원회를 열고 동아시아 금융그룹 최초로 '제로 카본 드라이브'를 선언했다.

투자자산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한 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대출·투자를 줄이고 친환경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신한금융은 이미 국내 기업 1042곳을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산출 및 관리를 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지만 탄소 배출량 측정을 더 고도화하기 위해 탄소회계금융협회(PCAF)와 파리협약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과학기반감축목표(SBTi) 가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하나금융지주도 은행 경영전략본부 안에 ESG 전담 부서인 ‘ESG기획섹션’을 만들었다. 이보다 앞서 6월 12일에는 그룹 사회책임경영 관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행복나눔위원회를 '사회가치경영위원회'로 재편하고 환경 부문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ESG 전략을 펴고 있다.

2019년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ESG 평가에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모두 A를 받으며 통합 등급도 A를 기록했다. 또한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아시아 퍼시픽에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연속 편입됐으며, 지난해 DJSI 코리아 지수에 신규 편입된 바 있다. 

또한 최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가 발표한 'CDP Climate Change 2019'에서 금융부문 '탄소경영 섹터 아너스'에 처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12월 11일 뉴딜금융지원위원회를 열고 '2050 탄소중립 금융그룹'을 선언했다. 향후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신규 PF나 채권 인수 등을 중단한다.

반면 수소연료전지,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PF 투자는 확대할 계획. 이보다 앞서 그룹 차원에선 2020년 8월 기존 혁신금융추진위원회를 '뉴딜금융지원위원회'로 확대 개편한 바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 정책에 4조7000억원 수준의 금융지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네 곳의 금융지주보다 농협금융의 행보는 조금 늦었지만 선행학습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국내외 ESG 관련 인증기관의 문을 동시에 두드리고 있다.

유엔환경계획 금융부문(UNEP FI),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J), 환경경영인증시스템(ISO14001),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블룸버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의 ESG 관련 인증을 추진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계획.

이를 지원·추진하기 위해 사업전략부 내 ESG추진팀을 신설해 힘을 보탠다. 핵심 계열사인 농협은행도 전담조직인 녹색금융사업단, ESG추진위원회를 만든다.


 

자료 = 환경부 제공
자료 = 환경부 제공

 

녹색금융 지표, 금융기관 실적에 직접적 영향


금융기관이 ESG 이슈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특히 그중에서도 환경분야와 같은 비재무적 지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의 사업추진 방식과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금융기관이 환경관련 이슈를 정책결정의 주요 요소로 여기게 만든 최초의 계기는 1980년 미국의 포괄적 환경대책·보상·책임법(CERCLA), 일명 '슈퍼펀드법'의 시행이라고 보는 견해가 업계에선 일반적이다.

기업에 의해 토양오염이 발생했을 때 ▲그 조사 및 정화는 미국 환경보호청이 담당하고 ▲오염의 책임소재가 분명해지기 전까지는 정화비용을 유류세 등으로 조성된 신탁기금(슈퍼펀드)에서 지출하며 ▲최종적인 정화비용 부담책임을 유해물질의 발생에 관여한 모든 잠재적 책임당사자에게 부과한다는 것이 이 법률의 핵심 내용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잠재적 책임당사자'라는 표현인데, 소유자·관리자는 물론, 유해물질의 발생자 및 수송업자, 대출·투자 금융기관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이후 금융기관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오염사고를 일으킬만한 기업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이어 1990년에는 미국의 사법당국이 해당 법률에 근거해 금융기관에게 책임부담을 지우는 판결을 내린 바 있으며, 이후 미국·유럽 등의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환경 적정성과 관련한 보완장치들이 널리 자리잡게 된다.

법적 처벌이나 배상 등 직접규제 대상이 아니더라도 환경리스크의 중요도는 금융기관에서 일반적으로 자리잡은지 오래.

지난 2006년 환경부가 발표한 '금융기관 환경리스크평가 가이드라인' 자료에선 선진국 주요 은행들의 환경리스크 고려 이유가 정리돼 있다.

이는 ▲채무불이행 방지 ▲좋은 평판·브랜드 이미지 유지 ▲담보가치 유지 ▲차별화·가치창출 ▲환경규제 대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타의 카테고리는 쉽게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가치창출과 관련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부연하자면, 녹색금융이 새로운 사업기회로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교토의정서 발효를 계기로 2006년 한해만 10여개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가 280억달러 규모로 이뤄졌다는 점만 봐도 역사가 깊다.

온실가스 감축시설, 신재생에너지 등에 투자한 결과로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매매해 수익을 얻는 '탄소펀드' 시장 규모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오염물질 배출권의 거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기존 사업방식처럼 다양한 파생상품들의 창출과 거래확대는 새로운 미래 수익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 금융기관들이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는 환경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싱 역시 새로운 사업기회의 일환이다.

금융기관 각자의 이러한 사업 패러다임 전환은 국가 차원의 정책지원으로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가 1995년부터 녹색금융 수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녹색투자 우대정책'을 추진한 것이 잘 알려진 대표 사례다.

이보다 더 엄중한 현실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ESG 경영, 녹색금융 이슈는 직접적인 사업기회의 제한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다양한 인증·평가기관들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공개돼 온 금융기관들의 각종 경영관련 지표들을 얽히고설킨 데이터 포인트로 엮어내 ESG 데이터로 재가공하고 있다.

기업의 ESG 관련 등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서스틴애널리틱스'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고 어떤 EGS 요소에 노출돼 있는지 평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컨플루언스 애널리틱스'의 설립자인 코너 플랫은 "기업의 측정 가능한 사회 지표에는 환경 지표를 비롯해, 직원 이직률, 다양성 비율, 급여 비율 등이 포함되는데, 이 지표들은 ESG 데이터를 집계하고 개별기업과 교환거래 펀드를 위한 예측성과 측정기준을 만들며, 산업별·동종기업 간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언제든 주식을 샀다면, 이미 수천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에게는 ESG 측정기준이 무형자산위험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인 나심 탈레프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표현한 '블랙 스완'에서 차용해, 향후 환경 이슈가 금융산업에 미칠 충격과 영향력을 가리키는 '그린 스완'이란 표현도 널리 쓰이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는 그린 스완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등을 염두에 둔 2020년의 화두로 제시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의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에 따르면, 금융권이 향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2028년 국내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최저 4.7%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은행이 리스크를 자기자금으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2019년 기준 국내 은행의 총자본비율은 15.25% 수준이다.


자료 = 금융위원회 제공
자료 = 금융위원회 제공

 

11년 전에도 거듭된 구색맞추기···'그린워싱'은 어쩌면 관치금융 때문?


금융당국은 2020년 8월 13일 기후·환경변화에 대한 금융권 선제적 대응을 위한 녹색금융 추진TF 킥오프 회의를 열었다.

정책당국의 '녹색금융'이란 워딩은 낯설지 않다. MB정권 시절인 2009년에 이미 녹색금융이 정책 차원에서 거론됐던 것. 금융유관기관과 관계부처 등으로 구성된 녹색금융협의회는 2012년 4월 7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유명무실해졌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과거 사례를 되짚어보자면, 두 가지 주요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한국 금융산업의 역사 깊은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는 관치금융의 폐해를 짚을 수 있다.

정책 아젠다가 정치적 수사로 활용되며 지속성을 갖지 못하고 사장되기 일쑤인 점이다. 정권교체 이후 녹색금융의 추진동력이 약화된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빠르다.

다른 한 지점은 이른바 '그린워싱' 현상이다. 녹색금융을 표방하는 것처럼 생색만 내는 경우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앞서 지적한 관치금융 폐해와 맞물리는 지점인데, 은행을 필두로 금융기관이 정권의 압력에 구색맞추기로 동원될 경우가 대표적 그린워싱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물론 현 정권의 녹색금융 정책의 추진은 과거와 출발지점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전에는 단순히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맞춰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점에 국한됐다면, 이번에는 금융 정책·감독 시스템에 녹색금융적 성격을 내재화하겠다는 점이 다르다.

각국 중앙은행 차원의 녹색금융협의체(NGFS)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에 당국이 가입을 추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금융기관에 할당량을 분배하는 식의 정책 추진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해명이다.

관건은 당국과 금융기관, 투자자·소비자의 자발적 참여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여부다. 솥발 같은 세 주체의 참여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적 흐름인 녹색금융에서 뒤처지는 셈.

금융위원회와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30일 '제2회 녹색금융 추진협의체(TF) 전체회의'를 열고 2020년 안으로 녹색금융 활성화 전략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이미 해를 넘겼다.

박종훈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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