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최중경, '벼랑끝' 전술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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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최중경, '벼랑끝' 전술 속내는?
  • 녹색경제
  • 승인 2011.03.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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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치열한 감정 싸움이 급기야 두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관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전직 총리와 현직 장관의 대결구도는 잦은 이견 노출과 잡음을 일으켰고, 마치 두 사람의 '벼랑 끝 전술'을 보는 듯하다.

최중경 장관은 정운찬 위원장의 첫 번째 야심작이나 다름없는 초과이익공유제를 정면 비판하면서 비생산적인 논의를 중단할 것을 주문했다. 이익공유제를 정 위원장 스스로 철회하라는 뜻이다.

이에 정운찬 위원장은 최중경 장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사퇴론을 들고 나오는 초강수를 뒀다. 정 위원장 역시 한 치의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정 위원장이나 최 장관 모두 더 이상 물러서기 힘든 상황이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데는 두 사람간 보이지 않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정운찬 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동반성장위원회의 향후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일종의 척도로 삼는 듯 한 모습이다.

동반성장위는 지난해 9월말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대책으로 내놓은 정책과제에 포함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당시 정부는 대·중기 상생대책으로 ▲공정거래 질서확립 ▲중소기업 사업영역의 보호 및 동반성장 전략 확산 ▲중소기업 자생력 강화지원 ▲지속적인 추진·점검 체계구축 등 4대 전략을 제시했다.

정부는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 노력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산업생태계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민간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동반성장 추진·점검 시스템구축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는 '사후관리'를 목적으로 동반성장위를 출범시킨 것이다. 다른 민간기구와는 달리 정부의 측면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민간위원회인 셈이다.

정 위원장은 이런 특성을 감안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동반성장대책을 추진하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실천이 이뤄지도록 이행점검평가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선 주무부처인 지경부가 동반성장위에 힘을 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실 정 위원장의 이런 생각은 최경환 전 지경부 장관의 재임시절까지만 해도 충분히 수용할 만 한 요구였다. 동반성장위는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단장(전 삼성전자 CEO)의 효과를 톡톡히 본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에 이은 지경부의 두 번째 히트상품이었다. 민간위원회에 전직 총리를 위원장으로 영입한 점에서 지경부가 바라는 기대치를 짐작할 수 있다.

동반성장위를 내놓은 최경환 전 장관도 "정부차원에서 국정 어젠다에 최우선 순위에 동반성장을 두고,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시스템화해 나갈 예정"이라며 "민간중심의 동반성장 추진체의 구심점이 될 동반성장위원회를 발족시키겠다"고 강조, 위원회 출범 전부터 힘을 실어줬다.

정운찬 위원장은 이런 점을 감안해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를 흔쾌히 수락했고, 정부의 측면지원을 통해 위원회 입지를 다지고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경환 전 장관이 여의도 국회로 복귀하면서 최중경 장관이 새로운 수장으로 지경부에 입성했고, 이후 동반성장위를 바라보는 지경부의 시각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정 위원장과 최 장관의 서로 다른 시각은 얼마 후 설전으로 표면화됐다.

정 위원장이 지난 2월말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오자 최 장관은 열흘 후 "기업마다 이익공유제를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정부 관료 중 가장 먼저 제동을 걸었다.

이어 최 장관은 이달 중순께 "초과이익공유제는 현실에 맞지 않다.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종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자, 같은 날 정 위원장은 "장관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이 정부에 동반성장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동반성장 위원장의 의지를 꺾는 것 같다"며 발언수위를 높였다.

다시 이틀 만에 최 장관이 "동반성장은 무리하게 추진해선 안 된다"며 정 위원장을 사면초가로 몰자, 불과 몇 시간 후 정 위원장은 "지경부 장관이 동반성장위 활동에 부정적이다. 둘 중 한명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며 반격했다.

논란이 가열되면서 급기야 정 위원장은 동반성장의 주무부처인 지경부 장관이 비판한 점을 이유로 "최 장관이 그 자리에 있는 한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다"며 사퇴카드를 들고 나왔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지 3개월여만에 조직 존폐가 거론될 만큼 위기에 몰리자 최 장관을 궁지로 몰고 결단을 요구한 셈이다.

관가 주변에서는 정 위원장의 이 같은 초강수에 대해 단지 동반성장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 위원장 본인은 강하게 손사래를 치지만 머잖아 여의도 정치무대에 발을 딛기 전 자신의 주요 성과로 초과이익공유제에 공을 들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끊이지 않는다. 초과이익공유제가 재계에 앞서 정치권에서 먼저 불거진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정 위원장이 다음달 재보선(분당 을)에는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소 여운을 남긴 건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 여지를 주고 있다. 결국 정 위원장 입장에서 초과이익공유제 좌초는 향후 정계에서 활동시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나쁜 재료가 될 수 있다.

이런 정 위원장에 맞서 최중경 장관은 겉으로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초과이익공유제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최 장관 역시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그는 "초과이익공유제는 현실적으로 정형화하기 어렵다"며 "초과이익공유제를 정의하는 것 자체도 어렵고 누가 어떻게 기여했는지 협력기업을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며 일관되게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었다.

이 뿐만 아니다. 이례적으로 재계의 반발이 거센 초과이익공유제를 정부가 동반성장위를 통해 강행할 경우 최 장관의 입장에선 적잖은 부담을 떠안게 된다.

대·중소기업 상생대책은 경기회복의 온기를 중소기업에 미치도록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의지가 담긴 정책으로 사실상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한 내용이 골자다.

이를 대기업이 순순히 수긍할리 없었다. 대통령이 주요 대기업 총수를 모아놓고 직접 동반성장을 주문하고, 장관들이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면서 분위기를 조성할 만큼 정부나 재계 모두 민감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를 통해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입김을 통한 인위적인 동반성장은 장기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나 부작용을 초래할 경우 자칫 동반성장 제도자체에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동반성장이 엄연히 기업간 문제인 만큼 정부가 전면에 나서 강요하기 보다는 민간기구를 통해 기업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동반성장을 이룬다는 게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만약 정부가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를 거들고 나서 시행을 강행할 경우 민간 주도의 동반성장의 취지를 정부 스스로 부정하고 기업과의 약속을 깬 셈이 된다. 이럴 경우 동반성장 주무부처인 지경부는 상당부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최중경 장관이 "사회 구성원 간 합의되지 않은 걸 얘기하는 건 지극히 비생산적이다…동반성장은 무리하게 추진하면 안 된다"며 초과이익공유제를 꺼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최 장관의 입장에선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이견이 노출된 이상 정 위원장과의 신경전에서 밀릴 경우 동반성장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은 8·15 광복절 축사에서 현 정부 집권 후반기 주요 정책기조로 서민경제 살리기와 공정사회를 제시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은 서민경제 살리기와 공정사회가 모두 맞물린 것으로 현 정부의 최우선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반성장을 추진하는 주무부처의 수장으로서 최 장관이 방향타를 잡지 않고 초과이익공유제를 수용한다면 동반성장 추진의 무게중심이 지경부가 아닌 동반성장위원회로 옮겨갈 수 있다. 향후 동반성장 정책의 주무부처인 지경부의 입지가 줄어들고 영향력이 저하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 때문에 최 장관은 정 위원장의 초과이익공유제에 퇴짜를 놓으면서도 정부가 공을 들인 하도급법 개정안 통과에 대해선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최 장관은 "불공정거래 때문에 이걸 시정하는 제도(하도급법 개정)가 나오지 않았나. 그러면 이걸 차근차근 실천하는 게 동반성장 하는 거지, 맞지도 않은 개념을 얘기 하냐"며 기존 제도의 틀 안에서 동반성장을 유도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운찬 위원장과 최중경 장관은 같은 고교와 대학을 다닌 9년 선후배 사이지만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기싸움에선 어느 누구도 좀처럼 쉽게 양보할 태세는 안 보인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더욱 꼬여만 가고 있다. 이들 대결구도의 결말에 따라 둘 중 한 사람은 예비 정치인 혹은 현직 관료로서의 생명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어서 관가는 이들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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