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과학자의 조언 “韓 과학, 성장했는데 성숙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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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과학자의 조언 “韓 과학, 성장했는데 성숙은 멀었다”
  • 정종오 기자
  • 승인 2020.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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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신호전달 정립’ 서판길 원장, 2020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영예
서 원장 “과거 배우고, 현재 진단하고, 미래 창조하자” 주문

생체 신호전달 패러다임 정립으로 세계 과학기술에 크게 이바지한 서판길 한국뇌연구원 원장(68세)이 2020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에 선정됐다. 서 원장은 3억 원의 상금을 받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최기영)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우일)는 2020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서 원장을 선정했다고 1일 발표했다.

서 원장은 생명현상 이해의 기본개념인 ‘신호전달 기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관련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인 셀(Cell), 사이언스(Science), 네이처(Nature) 등에 발표했다. 전 세계적 연구 방향을 선도하는 등 우리나라 생명과학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드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서 원장은 신호전달의 핵심효소인 포스포리파아제C(PLC)를 세계 최초로 뇌에서 분리 정제하고 유전자를 클로닝하는데 성공했다. PLC를 매개로 하는 신호전달 과정을 분자, 세포와 개체수준에서 작동원리를 정립해 세계 생명과학계를 주도했다. PLC는 외부자극으로 세포막 인지질을 분해해 두 가지의 2차 신호전달물질인 IP3와 DAG를 만드는 효소를 말한다.

생체 신호 전달의 기본개념을 확장해 줄기세포 분화의 정교한 조절 과정을 규명했다. 신호전달 과정의 불균형은 세포 성장 이상을 유도하고 암이나 다양한 뇌 질환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난치병 진단·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 원장은 2020년 2월 말 기준 348편의 논문을 국제 저명학술지에 게재했다. 개별 연구자가 축적한 연구성과의 우수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논문의 피인용 수 1만4000번 이상, H-Index 62(Web of Science 기준)로 생명과학 분야에서 최고수준의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2019년 뇌과학 올림픽으로 부르는 ’제10차 세계뇌신경과학총회(IBRO 2019)‘를 대구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직전 대회의 2배에 가까운 100개국 4500여 명의 참석을 유치하는 등 다양한 국제학술대회를 우리나라에 유치‧개최해 국가 과학기술의 국제 경쟁력과 위상을 높였다.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업적이 뛰어난 과학기술인을 발굴해 명예와 자긍심을 높이고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03년부터 시상해 온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기술인을 위한 상이다.

그동안 이 상을 받은 과학기술인은 총 43명(2020년 수상자 포함)으로 자연 분야(이학) 15명(35%), 생명 분야(의약학, 농수산) 15명(35%), 공학 분야 13명(30%) 등이다.

올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은 지난해 말부터 후보자 공모와 추천에 착수해 총 21명의 후보를 접수하고 3단계 심사과정(전공자심사–분야심사–통합심사)을 거쳐 최종 1명을 선정했다.

오는 3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는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 개회식에서 수상자에게 대통령 상장과 상금 3억 원을 수여할 계획이다.

서 원장은 수상 인터뷰에서 “연구원의 핵심가치로 ‘성장’과 ‘성숙’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는데 아직 성숙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서 원장은 “성숙은 간단하다”며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이고 내 연구 분야가 세포 간의 소통을 핵심으로 삼듯 항상 이해하고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판길 원장.
서판길 원장.

[인터뷰] 서판길 원장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창조하자”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 부탁드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화학을 전공한 이후, 연구자로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국민이 주는 과학기술계 최고의 상을 받게 돼 이 길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말씀으로 알고,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는 변함없는 자세로 꾸준한 연구를 통한 혁신 인재 양성과 국가 과학기술 성과 창출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다.”

-생명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각종 질병 원인을 규명하고 나아가 치료법까지 개발할 수 있기에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특히 생체신호전달 연구에 도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분자 수준에서 생명과학 연구는 195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왓슨(Watson)과 크릭(Crick)의 DNA 구조 발견으로 본격화됐다. 흑사병, 결핵, 암 등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공격에 인류는 바이러스 발견, 아스피린 발명, 항암 유전자 발견 등 과학사의 한 획을 긋는 연구로 대응해 왔다. 최근 코로나19(COVID-19)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병이 새롭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데, 인류는 다시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이는 생명과학 연구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구환경 집적화, 학제 간 연구, 데이터의 과학화 등을 통해 이제는 생명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생명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생체신호전달 연구는 어떤 분야인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개념인 신호전달 기작은 최근 생명과학에서 핵심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생명체는 시스템, 세포, 분자, 시스템 간에 소통(Communication) 언어의 촉발자인 호르몬, 성장인자, 스트레스, 사이토카인 등과 같은 많은 세포 외부자극을 받아 생체 안에서 일련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을 신호전달(signal transduction)이라고 한다.

신호전달은 분자, 세포 네트워크를 따라서 형성되는 소통과 기능 조절 중심의 기작이다. 세포 외부의 특이적 신호나 변화를 세포막 수용체가 인지하면 세포 내 단백질들이 체계적이고 역동적인 변화를 일으켜 생리활성 분자의 합성과 활성화, 유전자 발현, 세포 성장과 분열 등 다양한 생체반응을 일으킨다.

대표적 예로 뇌에서 흥분성 시냅스와 억제성 시냅스가 서로 협력해 신호전달의 균형을 이루는 데 두 기작이 불균형할 경우 조현병을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이 일어난다. 이처럼 신호전달 기작은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도전하게 될 연구 분야를 알고 싶다.

“그동안 축적된 첨단 과학기술 기법과 장비, 연구 고도화 플랫폼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데이터화해 이를 분석해서 세포나 동물에서 드러난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하는지 확인하는 연구방식, 즉 데이터 기반 연구가 될 것이다. 많은 의학 정보의 근거가 통계에 기반을 두거나, 분자나 세포 수준의 연구와 동물 실험에서 나온 정보가 대부분이다. 이는 여러 가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실제 인체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세포, 동물, 인체의 모든 데이터에 기반을 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하는 연구가 아닌 함께하는 연구’, ‘학제 간 연구’ ‘테이터 분석을 통한 선순환 중개연구’에 집중하고 싶다.”

-연구자이자 스승으로서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연구원의 핵심가치로 ‘성장’과 ‘성숙’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성장했는데 아직 성숙은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 성숙은 간단하다.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제 연구 분야가 세포 간의 소통을 핵심으로 삼듯 항상 이해하고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가까운 친구이자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팀 헌트 교수가 “과학자에게 즐거운 시간은 짧고, 좌절의 시간이 더 많은 법이다. 과학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과학으로 성공하려면 수도사처럼 일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연구현장에서 늘 좌절하고 어려움을 겪는데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지식을 축적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과학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라 열정을 가지고 즐기면서 노력하기를 거듭 당부드린다.”

-그동안 삼아온 좌우명이 있는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융통성 없이 한길만 고집하는 외골수 사람이라는 안 좋은 뜻도 있는데 저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반드시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운이라는 것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정성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에디슨이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려는 목표가 없는 데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도 참 좋아하다.”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 말씀 부탁드린다.

“20세기까지 생명과학은 생명현상을 관찰하는 것에 그치고 있었다. 최근 사람의 유전자 염기서열이 밝혀지면서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나 결과를 분자 수준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해석이 가능하게 됐다. 생명현상에 관해 연구하는 것을 생물학이라고 하지 않고 생명과학이라고 한다. 최근 추세는 다양한 분자들로 구성된 생명체의 해석이나 건강한 삶을 갈구하는 사람의 무한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수학,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적 접근과 생명원리 기반에서 공학적 활용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현재 과학은 과거와 달리 학제 간 연구를 기본으로 한다.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learn the past, diagnose the present, create the future(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창조하자)’라는 3가지를 준수한다면 과학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정종오 기자  science@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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